만종은 초행이신가요?

 

네. 처음이죠.

 

어쩐지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만일 선생께서 초행이 아니시고 자주 이 기차를 이용하신 분이라면 틀림없이 이미 자릴 잡았을 겁니다. 초행이니깐 그다지 서투르죠.

 

이렇게 만원인데 그런 게 통합니까? 도무지 설 자리도 없는데 말이죠.

 

환오는 청년에게 항의조로 말했다.

 

자리가 왜 없습니까? 저 여자처럼 사기라도 친다면 자리는 얼마든지 있어요. 자릴 못 잡는 사람들은 대개 초행이거나 아주 아둔한 사람뿐이라구요. 선생께서 이 기차의 풍속에 서투르니까 자릴 얻기가 힘들다는 거죠.

 

여기 단골 승객들은 의외에도 아주 약빨라요. 말하자면 최소한도의 요령은 갖춘 셈이죠. 선생께서 앉을까말까 하고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단골들이 재빨리 앞질러가서 자리란 자리는 죄다 차지해버리거든요. 일단 점령이 끝난 뒤에 어슬렁어슬렁 다가서봐야 때는 이미 늦은 거죠. 스피드의 시대 아닙니까?

 

느림보 기차에 약삭빠른 승객이라 이렇게 되면 스피드의 시대라는 것은 누굴 두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군요. 난 좌석은 고사하고 이 객차 속으로 들어오는데도 천신만고를 겪었죠. 승강대 난간에서 꼼짝없이 얼어죽는 줄 알았어요. 도무지 빠져나갈 틈조차 없었으니까. 이제 겨우 동태 팔자를 면했지요.

 

정말 동태가 되실 뻔했군.

 

환오의 표현을 흉내낸 작업복 청년은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었고 환오는 난간의 장면이 눈앞에 떠올라 겁먹은 눈초리로 그가 떠나온 난간 쪽을 다시한번 뒤돌아봤다.

 

열차가 지평역을 떠나면서부터 승객들은 조금씩 침묵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떠들기에도 싫증나고 지쳤는지 그만 입을 닫고 눈을 감은 채 등받이에 기대고 잠시 동안 잠자는 시늉들을 했다. 통로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으로 옆 의자 모서리나 다른 사람에게 염치없이 기대고 슬그머니 조는 척했다.

 

마치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객차 속의 모든 입들이 한동안 침묵에 잠겼지만 그 시간은 그닥 길지 않았다. 불과 오분도 채 못되어 그들은 하나씩 하나씩 다시 눈을 뜨기 시작했고 몸을 부스럭거리며 모기떼들처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눈을 감고 침묵을 지키는 사이에 갑자기 부풀어버린 차바퀴 소리와 차창을 두드리는 들바람 소리가 그들의 안면을 오분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 침묵의 순간에 그들이 비상구조차 마련되지 않은, 따라서 탈출이 거의 불가능한 객차 속에 갇혔다는 불안이 그들을 엄습했을 것은 틀림없었다.

 

아까부터 객차 한쪽 구석에서 화투판을 벌여왔던 칠팔 명의 부녀들이 다시 화투짝을 꺼내들고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한쪽 좌석을 모조리 차지하고 있는 그녀들은 마치 자기네들 집 안방에서 모여 노는 양 멋대로 깔깔거렸고 기성을 올렸고 요란하게 손뼉을 치고 있었다.

 

참말 좋은 세상이라구요. 돈만 있으면.

 

화투판의 부녀들을 몹시 부러운 눈초리로 건너다보던 뚱보여자가 자기도 지지 않을세라 포수를 향해 말했다.

 

그렇구말구요. 돈만 있다면 참으로 살기 편한 세상이지.

 

너무나도 지당한 말씀이라는 듯 포수가 금방 맞장구를 쳤다.

 

뚱보여자는 그 참말 좋은 세상의 요모조모에 관해서 자기 나름으로 궁리해 보는 듯 잠깐 눈을 끔벅거리고 있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집안에서 헌다 허는 배우다 가수다 뭐 못 볼 게 있나요. 음식도 마음만 내키면 사시사철 신선한 걸루 먹을 수 있으니깐. 참 불과 몇년 전까지도 어디 상상이나 하던 일이냐구요. 글쎄.

 

아주머니. 그게 다 이십세기 과학의 진보 덕택 아닙니까? 시방 과학은 이십세기는 옛말이고 이십일세기까지 나가고 있다구. 내일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구요, 글쎄.

 

포수도 자기 채신을 세우겠다는 듯 한층 거드름을 빼면서 말했다.

 

봤어요. 나두 봤다구요. 아폴로가 달에 착륙하는 걸 봤다구요.

 

뚱보여자가 매우 성급하게 말했다.

 

저희 텔레비에 똑똑하게 비치던데요. 원주에도 작년에 수신 안테나가 섰다구요. 그런데 우리집 텔레비는 실은 아들이 월남서 보내준 거라구요. 우리집 아들놈은 애가 외톨로 어리광만 피우고 자라서 영 철이 없었는데 글쎄 걔가 지금 군대로 월남가서 매달 꼬박꼬박 한푼도 쓰지 않고 제 월급을 부쳐오지 뭡니까? 나 원 하두나 기특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