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나는 사냥 같은 것 취미 없었다구요. 사업에 쫓기다보니까 시간도 없었지만. 그런데 고혈압에 좋다는 의사의 권유로 시작한 게 그 재밀 붙이게 됐죠.

 

그러실 것 같앴어. 내 아무리 봐도 마구 살상하고 다니는 직업적 포수로는 안 봤어요. 어쩐지.

 

뚱보여자의 비윗살 좋은 대꾸에 포수는 가려운 데가 긁어진 듯 아주 만족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아까부터 혼자 맥주를 따라 마시던 종이컵을 여인에게 냉큼 내밀었다.

 

싫어요. 전 못해요.

 

여인은 살찐 두손을 마구 내저으며 몇차례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컵을 받아들고 포수는 컵이 넘치도록 맥주를 가득 따라부었다. 뚱보여인은 갈증 난 사람처럼 컵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그러고는 자기 행동이 스스로도 민망했던지 얼른 포수에게 빈컵을 건네면서 한 손으론 입을 가리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제가 따라 드리죠.

 

허허허. 이거 황송하게 됐군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포수는 허다한 주석에서 익힌 버릇으로 냉큼 잔을 여인의 가슴 앞에 내밀었다. 그런데 이때 병을 잡고 맥주를 따르는 뚱보여자의 솜씨 또한 허다한 주석을 거쳐온 솜씨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제가 대접을 해드려야 하는 건데. 되려 대접을 받았군요. 제가 꼭 한번 모셔야겠어요.

 

무슨 의미에선지 여인이 이렇게 말했고 포수는 그녀의 너무 지나친 비약에 적이 당황한 눈초리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인이 한층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주에 자주 들르시겠는데요. 평창을 내왕하시자면.

 

그렇구말구요. 오면가면 원주서 반드시 일박씩은 하게 되죠. 때론 사나흘씩 머물 때도 있고.

 

그러시담 저의 집에도 한번 들려주시겠어요? 제가 손수 모시고 싶은걸요.

 

그녀는 주위의 시선 따위는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댁이 어딥니까? 어디라고 말씀해주시면 제가.

 

사내는 약간 열쩍은 듯 얼굴을 붉히면서 더듬더듬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꼬리에는 야릇한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찾기 쉽다구요. 도청 뒷골목으로 빠져서 ‘일심’만 찾으시면 돼요.

 

자기가 초대받은 장소가 술집이라는 게 판명되자, 포수는 자못 실망한 듯 손바닥으로 자기 볼따귀를 몇차례 문지르더니 가까스로 표정을 꾸미면서 말했다.

 

가죠. 가구말구요. 일심 내 꼭 기억해뒀다 가리다.

 

그거 보쇼. 내 그럴 것 같았어요.

 

이때 작업복 청년이 환오 쪽으로 얼굴을 돌리면서 속삭였다.

 

저 여잔 술집 마담이라구요. 그런데 선생은 왜 양평서 자릴 양보하셨죠? 저는 이해가 안되던데.

 

제가 양보했다구? 그건 오햅니다. 저건 그 여자가 마춰놓았기 때문에.

 

하. 딱하신 분, 마춰놨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구요. 그렇게 남의 말을 죄다 믿습니까? 지금 같은 시대에. 저거 보쇼. 뻔뻔하고 주접스런 게 내가 언제 거짓말 했느냐 하는 얼굴이죠.

 

청년은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그쪽을 잔뜩 흘겨봤다.

 

이젠 자리 나기 좀처럼 힘들 거요. 양평 이후에는 힘들다구요. 아무튼 잘 지켜보쇼. 일어서는 사람 있으면 다짜고짜 가서 앉는 겁니다.

 

이때 열차의 기적소리가 길게 두 번 울렸다. 환오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자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주위는 빽빽이 들어찬 사람벽으로 완전히 막혀 있기 때문에 사람 외의 어떤 다른 풍경이 눈에 보일 턱이 없었다. 만종은 아직 멀었나요?

 

그는 갑자기 생각난 듯 작업복 청년에게 물었다.

 

지금 겨우 지평 에 들어가고 있어요. 지루하죠? 그럴 거예요. 이 기차는 영락없이 굼벵이처럼 기어가니깐. 다른 곳은 죄다 디젤로 바꾼 지 오랜데 이쪽 중앙선만 아직까지 유독 늙어빠진 증기 기관차를 굴리는 까닭을 모르겠어요. 저기 보쇼. 평지를 달리는데도 늙어빠진 개처럼 거리며 헐떡거리고 있죠. 좌우간 만종까지는 한참 걸립니다.

 

피로와 짜증이 겹친 환오는 그 소리에 몹시 실망했다. 그는 지금 좌석은 고사하고 객차 안의 탁한 공기라도 환기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기대도 헛된 망상인 것이다. 그는 만약 만종서 차를 내린다면 맨 먼저 만종의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여마시는 꿈에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환오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살핀 작업복 청년이 다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