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친절에 환오는 도리어 당황해서 다만 네네 소리만 간신히 흘리고 있었다.

 

이따가 양평에 가면 사람이 좀 내려요. 자릴 잡으려면 그때밖에 없으니까 아무튼 양평에 닿기 전에 손님은 어떻게든 이쪽 입구를 뚫고 들어가야 한다구.

 

저 통로를 막고 있는 사람 벽을 보노라면 도무지 뚫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환오는 단골손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같아서는 객차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쪽 난간에서 오래오래 배겨낼 재간 또한 없을 것 같아 환오는 통로의 그 완강한 사람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럴까 저럴까 한동안 망설였다. 그러다가 결국 그는 단골손님의 조언을 따르기로 작정했다.

 

어떻게든 자리를 잡자. 조금 때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굴면 자릴 잡지 못한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

 

환오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면서 마치 전쟁터에라도 나가는 무사처럼 마음을 단단히 다져먹고 통로의 사람벽을 향해 조금씩 발돋움을 하기 시작했다.

 

스팀이 들어오는 객차 속은 난간을 휩쓸던 돌바람 대신 후덥지근하고 탁한 공기로 가득차 있었고 서로 밀착되어 있는 사람들의 살갗에서 풍기는 땀 냄새는 호흡을 더욱 곤란하게 해줬다. 더구나 객차의 창이란 창은 모두 완전 밀폐 상태이고 이쪽 통로마저 행여 침입자가 들어올세라 사람벽으로 겹겹이 막혀 있기 때문에 환기가 될 데라곤 한군데도 없었다.

 

말하자면 객차 속은 외부의 기류마저 완전히 거부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토록 혼탁한 공기속에서 수많은 입들이 귀청이 터지도록 요란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객차 속도 머물러 있기에 그닥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환오의 몸도 어느덧 땀에 흠뻑 젖어버렸다. 그는 앞이 꽉 막혀버릴 때마다 더욱 맹렬한 투지를 불태우며 그 사람벽을 향해 돌진했다. 앞으로 나가려고 그가 한 발을 들어올렸다가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해 되돌아오면 그 자리는 벌써 다른 사람의 발이 차지한 뒤였다.

 

그는 발 디딜 곳을 찾으려고 이쪽저쪽을 디뎌보다가 자주 남의 발을 밟고는 질겁해서 물러났다. 모든 땅이란 땅은 마치 사람의 발로 죄다 메워져버린 느낌이었다. 혹은 상체에 비해서 발만 유난히 비대해진 것이나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발 디딜 만한 빈자리가 없을 리가 없을 때는 땅을 먹어버리는 도둑놈의 발처럼 갑자기 비대해져버린 발들이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럴 때 환오에게는 또 그친구의 익살섞인 주석이 떠올랐다. 어느날 콩나물 시루처럼 만원된 버스 속에서 환오는 곁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원 버스를 탈 때마다 나는 이상한 의문에 사로잡힌단 말야. 상반신이 차지하는 평면에 견주면 발이 차지하는 지면은 퍽 여유가 있을 법한데 도리어 발붙일 자리가 더 비좁다는 건 이해할 수 없거든.

 

그러자 친구는 마치 그런 얘기를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환오의 부질없는 푸념에 즉각 주석을 붙여왔다.

 

이보게. 발이 땅을 먹어치우는 도둑놈이란 걸 모르나. 그건 언제나 자기가 차지한 지면에 만족할 줄 모르는 짐승이야. 늘 본능적으로 다른 땅을 넘보거든. 좁은 델수록 더 욕심을 내지. 좌우간 차간에서 두발을 마주 붙이고 서 있는 경우란 쉽게 상상도 안된단 말야.

 

환오는 그때 그의 지론이 다소 비약한 느낌이어서 쉽사리 수긍하지 못하고 피식 웃으며 넘겨버렸지만 이런 때는 그 지론이 한층 그럴싸하게 여겨졌다. 왜냐하면 자기는 엄연히 객차 속에 들어와 있건만 발붙일 곳이 없어서 비록 잠시라도 몸이 허공에 뜨는 현상은 그런 식의 풀이로밖에는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수역에 도착했을 때 환오는 어느덧 객차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팔당에서 내렸을 단골손님의 말대로 양수역에서는 객차 속의 승객들에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환오는 열차가 정차하고 있는 이분 동안에도 두 사람을 밀쳐내고 중앙 쪽으로 더 이동했다.

 

이때 그의 진로 한가운데 육중한 장애물이 가로막고 나섰다. 마치 드럼통을 세워놓은 것처럼 비대한 여인의 등이 그의 코앞에 떡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은 서 있기가 남들보다 갑절은 더 피로하다는 듯이 옆 의자의 등받이에 그 비대한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있었는데 그꼴이 그녀의 체중을 더 육중하게 보이도록 했고 환오는 그를 정면에서 가로막고 서 있는 여인의 등이나 엉덩이를 도무지 밀쳐낼 엄두가 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그는 비로소 뒤를 돌아보고 입구 난간에서 그가 움직여온 거리가 고작 삼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데 깜짝 놀랐다. 그의 몸은 흡사 몇킬로미터나 기어온 사람처럼 잔뜩 지쳐 있었던 것이다.

 

지금 굴을 지나고 있죠?

 

자리에 앉아 있던 행상 차림의 여인이 옆자리의 청년에게 겁먹은 소리로 물었다. 청년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여인은 다시,

 

몇 번째 굴이죠? 이게 몇 번째죠?

 

하고 역시 겁먹은 소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