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누가 세어보고 있는 줄 아우? 왜 그러는 거요?

 

청년이 퉁명스럽게 반문하자 여인은 몸을 반쯤 일으키며 황급히 말했다.

 

양수에서 두번째 굴이라면 난 일어나야지. 난 양평서 내려요.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선반 위에서 빈 광주리를 끌어내렸다.

 

아줌마, 이젠 늦었다구요. 저거 보쇼. 기적소리 안 들려요? 양평에 다 왔다는 소리라구요. 지금 어떻게 이속을 빠져나가겠수?

 

청년이 딱하다는 듯이 말하자 광주리를 끌어안은 여인은 울상을 지으며 엉거주춤 서 있었다. 열차는 마치 여인을 곯려주기나 하듯이 두번째 기적을 길게 뽑아올리면서 더욱 빨리 달리고 있었다. 그러자 여인은 어찌된 셈인지 도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환오는 바로 이때라고 생각했다. 양평에 가서 여인이 내리게 되건 말건 어쨌든 그녀는 일단 그자리를 떠나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청년과 여인이 앉아 있는 의자 쪽으로 바싹 다가서서 여인이 앉아 있는 가운데 좌석을 호시탐탐 넘보면서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쇠바퀴의 무거운 신음소리를 내면서 열차가 양평역에 닿자 과연 그 여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먼저 내릴 테니 광주리를 넘겨줘요.

 

곁의 청년에게 이렇게 말한 그녀는 놀랍게도 굳게 닫혀 있는 객차의 창을 드르륵 열어젖히더니 서슴지 않고 한쪽 다리를 창턱에 걸쳤다. 그녀의 하반신은 곧 창밖으로 빠져나갔고 잠깐 창턱에 매달렸던 여인은 미끄러지듯 플랫폼으로 사뿐히 뛰어내렸다. 그녀의 동작이 어찌나 민활했던지 그녀가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좁다란 창구를 빠져나갈 수 있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여인이 자리를 뜨자마자 환오는 부리나케 가운데 좌석을 향해 돌진했다. 바로 이때 통나무처럼 굵은 팔뚝이 그의 가슴패기를 가로막고 나섰다.

 

이러지 말라구요. 이건 누구 자린데.

 

기름지고 우렁찬 소리로 말하면서 그의 앞에 나선 그 팔뚝의 주인공은 아까 그의 진로를 가로막고 서 있던 뚱보여자였다. 그녀는 여태 이쪽 좌석에 등을 돌리고 모르는 척 서 있었으므로 환오는 사뭇 의아스러웠다. 그는 뚱보여자의 두꺼운 눈두덩을 겁먹은 눈으로 보면서 간신히

 

누구 자리라뇨? 제가 먼저 여기 왔지 않습니까?

 

하고 말했다.

 

먼저 왔다고? 사람 꽤 웃기시는군. 내가 이걸 맞춰놓은 걸 모르오? 그녀는 대뜸 고함을 꽥 질렀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여인의 단호한 태도와 기름지고 우렁찬 목소리는 어떻든 상대방을 제압하는 위력이 있었다.

 

환오는 뚱보 여자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벌써 한풀 꺾인 데다 그녀가 주장하는 예약자의 우선권을 부정할 만한 증거도 없으므로 일단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기야 행상녀가 떠나버린 지금 뚱보여자도 자기의 우선권을 확인해볼 만한 증거는 없었다.

 

옆자리의 청년이 증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처음부터 입을 떼지 않고 두 사람의 승강이를 묵묵히 보고만 있었다. 여인은 더 지체할 것도 없다는 듯이 황금빛깔의 원피스 자락을 펄럭이며 좌석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줌마, 말씨나 좀 점잖게 쓰시우.

 

그녀가 앉자마자 옆자리의 청년이 갑자기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자 뚱보 여인은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노기를 가득 띤 얼굴로 청년을 노려보며 꽥 고함을 쳤다.

 

뭐요? 당신 뭔데 콩나물처럼 나서는 거야?

 

듣기에 좀 거북하다 이겁니다.

 

흥, 별꼴이군. 점잖은 것 꽤 좋아하시는 모양인데, 너무 좋아하시지 말라구. 지금이 어느땐데.

 

지금이 어느때건 아무튼 아줌마는 이분이 당연히 앉아야 할 자리에 지금 앉아 있는 거요. 그거나 알구 있어요. 이분이 아줌마보다 이 자릴 먼저 발견했다는 건 내가 보증하니까.

 

자기 옆에 엉거주춤 서 있는 환오를 가리키며 청년이 말하자, 뚱보여인은 얼굴이 금방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숨이 막히는지 헉헉거리면서,

 

하, 이양반 보게. 이런 엉터리 같은, 내가 이자릴 맞춰놨대두.

 

하고 간신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