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이 사람들이 눈에 안 보여서 그런 말 하는 거요? 발붙일 곳이나 겨우겨우 차지한 판에 차 속으로 들어가다니, 천하 장사라도 이 사람벽을 뚫고 거기까지 가겠나 생각 좀 해보슈.

 

그의 말이 너무 지당했으므로 환오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난간은 잠시 쥐죽은 듯한 침묵에 빠졌는데 그 사내가 다시 그 침묵을 깨뜨렸다.

 

난 좀처럼 자릴 못 잡는 일은 없는데 오늘은  그만 실수했수다. 그놈의 딸네미집에서 저녁을 먹고 가라고 붙드는 바람에 그만.

 

그 사내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소리로 혼자서 떠들어댔다. 어쨌든 그의 말투로 미뤄봐서 그는 중앙선의 단골 고객임에 틀림없었고 이 삼등 열차와는 이미 친분이 두터워져서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떠드는 것 같았다.

 

아무튼 오늘 우리들은 되게 잘못 걸렸시다. 저놈의 유리창들이 죄다 부서져서 이따가 차가 들로 나가면 바람이 굉장할 거요. 여기 뒷구석 사람들은 꼼짝없이 동태 팔자가 되겠는데. 더구나 날씨가 싸아헌 게 눈도 오실 것 같고.

 

사내가 말하는 승강대의 양쪽 도어는 처음부터 굳게 닫혀 있기는 했지만 윗부분의 유리가 깡그리 빠져 있어 이쪽 난간은 외풍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아직 열차가 도시의 외각을 벗어나지 않았으므로 외풍이 그닥 심하지는 않았지만 이 단골손님의 한마디는 난간의 어두운 구석에 묵묵히 서 있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공포심을 안겨줬다. 그들은 정말 걸렸구나 하고 비로소 깨달았고 금방 그 들바람이 불어닥치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열차가 중랑천을 지난 뒤부터 아니나다를까 양쪽 승강대 쪽에서는 뼈를 삭이는 듯한 외풍이 쉬익쉬익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열차의 속도로 더욱 가속된 정월 찬바람은 흡사 칼날처럼 에누리없이 그들의 살갗을 맵게 때렸다. 졸지에 놀란 난 사람들은 바람길에서 자기 몸을 피해보려고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보고 움츠려도 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이보라구.

 

자기 예언이 금방 맞아떨어진 걸 뽐내듯이 어둠속에서 그사내가 말했는데 바람소리에 흩어져서 이젠 잘 들리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매운 바람에 쫓기듯이 그리고 바람막이가 되지 않으려는 본능에 따라 자꾸 안쪽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바람에 난간에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났다.

 

비록 난간에서나마 좀더 안전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쪽과 일단 차지한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는 쪽 사이에 서로 밀고 밀리는 힘겨루기가 벌어진 것이다. 손가방을 쳐든 채 그 틈바구니에 끼여 있던 환오는 몸의 중심을 잡을 수가 없어서 휩쓸리는 대로 몸을 내맡긴 채 그나마 발붙일 곳을 잃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바둥거렸다.

 

그는 이때 자기가 난간의 층계 입구로 밀려나 이윽고는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이 기차 밖으로 굴러떨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 다음 역에서 난간의 승객이 줄지 않고 더 늘기만 한다면 꼭 자기가 아니라도 누군가에게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게 되어도 역시 기차는 추락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를 밝히느라고 무한정 정차할 것이고 그는 언제 목적지에 닿게 될지 까마득해지는 것이다.

 

열차가 망우 역에 도착했을 때 환오의 불길한 상상은 더 굳어져갔다. 입구가 막혀 있는 객차 속에서는 숫제 한 사람도 내리지 않았고 난간의 계단에 서 있던 승객 한 사람이 내린 대신 갑자기 플랫폼으로부터 세 사람이 밀어닥친 것이다.

 

빨리 문을 닫아버려! 빨리!

 

승강대의 도어가 열린 순간 머리에 허옇게 눈을 뒤집어쓴 세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자 안에서 누가 소리쳤지만 그들은 벌써 열린 문을 억척스럽게 붙잡고 계단에 기어오르고 있었다.

 

같이 갑시다. 우린 밖에서 얼어죽으라는 거요?

 

다같이 타고 가자구. 나도 차표는 끊었으니까.

 

승강대에 발을 디밀려고 숨을 씩씩거리면서 그들은 제각기 한마디씩 지껏였다.

 

얼어죽긴 여기도 마찬가지야. 밀어내요. 밀어내. 거 왜 좀 못 밀어내고 야단이야.

 

아까 혼자서 떠들던 단골손님의 거쉰 고함소리가 안에서 들렸고 이어서 승강대 입구에서,

 

이 새끼가. 이 손 못 비켜? 이 새끼가 누굴 죽이려고 환장했나?

 

하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입구에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기차는 발차의 기적을 울렸고 바퀴가 스르르 미끄러지기 시작하자 계단 입구에서도 도어의 손잡이에 매달려 질질 끌려오는 세 사람의 침입자들을 더이상 배척하는 걸 단념했다.

 

기차 좀 타느라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당신네들 인심이 이래가지고야 세상 살겠수?

 

새로 탄 사람이 이제 한고비 넘겼다는 듯이 큰소리로 떠들었다. 그러자 단골손님이 참지 못하고 맞받았다.

 

이거 보쇼. 말을 하려거든 똑바루 하쇼. 그게 다 당신네들 위해서 하는 짓이요. 들어와봤으니까 이제 여기서 누가 떨어져 죽건 말건 책임질 놈은 없으니깐 그걸 명심하고 계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