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모든 승객들이 비명을 올리고 낄낄거리며 우왕좌왕하고 있을때 여태까지 포수 옆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내리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던 그 창백한 여인이 별안간 눈을 뜨고 벌떡 일어섰다. 살빛이 유독 창백한 그 여인은 흡사 신들린 사람처럼 눈을 흡뜨고 주위의 혼란을 한바퀴 살펴본 뒤에 이제는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결연한 표정으로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걸음씩 늘 인도하소서.

 

삼절까지 계속된 여인의 노랫소리는 약간 목이 쉬긴 했지만 뜻밖에도 찌렁찌렁하게 울려서 객차 속을 가득 채웠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녀는 박자를 맞춰서 계속 손바닥이 부르틀 정도로 힘껏 손뼉을 쳐댔고 끝판에 가서는 전신을 흔들어대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시끄러워요. 이게 뭐 예배당이요?

 

옆자리의 포수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짜증을 부렸고 마담이 맞장구를 쳤다.

 

아유, 난 골치가 다 지근거려요. 아유, 골치.

 

아줌마, 이 좀 봐요.

 

건너편에서 소주를 마시던 사내들이 좋은 일 났다고 이쪽을 넘겨다봤다. 거의 곤죽이 된 한 사내가 두 홉들이 소주병을 든 채 이쪽을 보면서 자꾸 여인을 불렀으나 여인은 미처 듣지 못했는지 계속 손뼉을 치면서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

 

아줌마, 이 좀 봐요.

 

노래를 끝낸 여인이 힐끗 뒤를 돌아봤다.

 

왜 그러우?

 

여인은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미소마저 흘리며 취객을 바라보았다.

 

아줌마, 내게도 진실은 있다 이거요. 나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 못지않게 진실해진다 이거요. 난 하나님을 믿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한번도 잊어버린 일은 없다구요. 그러니까 말인데 난 아줌마가 두 홉들이 소주 한 병만 사준다면 믿겠어. 맹세코 믿겠어.

 

그바람에 이 시온성의 여인에게 짜증부렸던 사람들은 까르르까르르 웃어젖쳤다.

 

이새꺄. 믿긴 뭘 믿는다고 그래. 술맛 떨어지게.

 

뒤에서 사내의 패거리가 핀잔을 주자 소주병을 든 사내는 스르르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지만 여인을 야유하는 패거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를 짧게 깎은 한 건장한 사내가 꽤 먼 거리에서 사람을 헤치면서 열심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기를 쓰고 여인 앞으로 다가온 사내는 대뜸 노오란 오렌지주스병을 여인에게 내밀었다.

 

아니, 이게 뭡니까?

 

마시셔요. 제가 전도하는 셈이 되니까요.

 

사내는 잠깐 눈을 감았다 뜨더니 다시 말했다.

 

아주머니, 저는 오늘 많은 감격 받았어요. 목이 쉬셨군요. 좀 쉬어가며 하세요.

 

목이 쉬었지만 주님이 같이하시니까 괜찮죠. 예수님은 사십 일 금식 기도까지 하셨는데 뭘. 직함이 뭡니까?

 

평신도예요.

 

은혜받으러 오신 일 있어요?

 

전 농사로 바빠서 그런 기횔 못 가졌죠.

 

이번에 원주 전도관에서 대심령부흥회가 있어요. 저도 지금 거기 가는 길이죠. 오세요. 함께 은혜 받으시게. 자 찬송가 191장 함께 부릅시다. 내 사명만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죠. 참사명을 하시느라고.

 

두 사람은 금방 의기 투합해서 이번에는 혼성 이중창이 시작되었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사뭇 경청을 강요해오는 이토록 간절한 억양의 후렴이 손뼉 박자에 맞춰 네 번씩이나 되풀이되는 동안 승객들은 그만 넋이 달아나고 만사가 귀찮아서 될 대로 되라는 듯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들은 이제 이 차간에서 누가 무슨 짓을 하건 그걸 제지할 권리도 없다는 것. 그걸 제지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만사가 귀찮아졌던 것이다.

 

거기다 노래의 옥타브가 높아졌을 때 객차 속의 분위기는 꼭 피란민을 만재한 객차처럼 유독 살벌하고 각박하게 느껴졌고, 그 분위기에 억눌린 승객들의 기분은 그 노래 가사처럼 자기들이 마치 죄를 짓고 어디엔가 유형지로 호송되어가는 죄수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노래의 네번째 소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차는 거짓말처럼 다시 미끄러져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승객들의 기분은 금방 돌변해버렸다. 그들은 혼수 상태에서 갓 깨어난 맹수들처럼 방금 지나간 불유쾌한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렸고 무엇보다 잃어버렸던 좌석의 질서를 되찾기 위해 맹렬하게 다투고 욕지거리를 퍼부어대고 상대방을 사정없이 밀어부치곤 했다. 주저하고 망설이던 환오조차 이제 그 다툼에 한몫 거들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