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열차는 쇠바퀴의 무거운 신음소릴 토하면서 벌써 정차하고 있었다. 환오와 작업복 청년은 얘기를 하느라고 미처 열차가 정차를 위해 속도를 줄여가고 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차창 옆에 앉은 승객들은 기차가 멈춘 곳이 어떤 곳인가 알려고 재빨리 차창 밖을 들여다봤다.

 

하나 시야에는 아무것도 드러나는 것이 없었다. 플랫폼을 오가는 승무원이나 역직원의 모습도, 그리고 역사 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 눈이 믿어지지 않아 다시 차창에 바싹 다가가 들여다보았지만 시야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사고다!

 

누군가 경솔하게 소리치는 바람에 승객들은 멋모르고 겁에 질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차창을 열어젖히는 소리가 들렸고 난데없이 살을 에는 듯한 매운 들바람이 한꺼번에 객차 속으로 밀어닥쳤다. 이제 열차가 정차한 지점이 정거장의 구내가 아닌 것을 명백해졌다.

 

어떻게 된 거야? 장애물이 나타났나?

 

사람을 치웠는지 알우?

 

누가 뛰어내렸나? 죽으려고.

 

알 게 뭐야. 그런데 승무원은 왜 얼씬도 않지? 아까 석불역에서는 봤는데. 이 새끼들, 이렇게 손님들을 방치해놓고 종적을 감추고 소식이 없다니.

 

이렇게 제각기 떠들었지만 막상 승무원이나 열차원의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이 나타난대도 지금 형편으로는 이 객차 속에 뚫고 들어올 틈도 없었다.

 

승객들은 자기들이 완전히 방치되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열차는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칠흑 같은 어둠속을 배회하고 있는 셈이었다. 마치 겨울 추위에 동태가 되고 오래 주려 허기진 나머지 제 길을 찾아갈 기력조차 없을이만큼 지친 망아지 새끼 모양으로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있었다.

 

승객을 화물짝처럼 가득 실은 채로, 대관절 손님들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일까. 달나라로 끌고 가는 것일까. 아니 갑자기 엄청난 열차 충돌을 일으켜 천당에라도 데려다주려는 것일까. 혹은 그 이름조차 모르는 전혀 자유스럽고 개방되었고 풍족해서 굶주린 개떼들이나 늑대들이 으르렁거리지 않는, 말하자면 흉포스런 짐승이라곤 없는 전혀 새로운 오색의 별천지에라도 인도하려는 것일까. 그러나 지금 기차가 멈춘 곳은 그렇게 별난 장소는 아니었다.

 

승무원이 보이지 않자, 승객들은 갖가지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투신 자살이 발생할 수도 있고 뜻밖의 장애물이 열차의 진로를 막고 있는지도 몰랐다. 또 정비 불량으로 이쪽 객차만 도중 분리되었을 가능성도 있었고, 누가 장난삼아 비상변의 로프를 잡아당겨버린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승객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열차 충돌이었다. 이렇게 무작정 오래 정차하고 있을 경우 서로 통신이 두절되어 열차 왕래의 통할에 차질이 생긴다면 갑자기 엄청난 충돌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더구나 요즘은 석탄 화물차의 왕래가 매우 빈번하지 않은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좌석의 승객들조차 하나둘씩 통로로 밀려나와 무작정 통로의 사람물결에 휩쓸려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팔 하나조차 움직이기 힘들었던 통로의 혼잡은 형편이 아니었다.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렸고 사람의 상반신은 밀고 밀리면서 물결처럼 자꾸 휩쓸렸다.

 

이 격심한 동요 속에서도 그들은 막상 비상구를 찾거나 승강대 쪽으로 나가보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장님들처럼 어떤 쪽으로 움직여야 할 줄도 모르면서 단지 객차 속에서만 몸부림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비록 위험이 목전에 다가왔을지라도 일단 밖으로 나간 다음에 다시 승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설마 여기서 내려서 모두들 걸어가라는 건 아니겠지.

 

걸어가래면 걸어갑시다. 까짓것 원주까지 이틀이면 갈 테니깐.

 

제법 태평스런 태도로 이렇게 지껄이는 패들도 있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포심을 은폐하는 허세에 불과했다.

 

야, 술이나 마셔. 까짓거 잊어버리구.

 

아까부터 소주를 대작하면 건너편 좌석의 사내들은 까짓거 눈 하나 까딱 않겠다는 듯는 듯이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서 연거푸 잔을 비우고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이미 만취해서 실상 자기들이 지금 기차를 타고 있는 것도 잊고 있는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