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여인은 살기 좋은 세상 얘기에서 갑자기 아들 자랑으로 돌변했는데 그녀가 어찌나 크게 떠드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은 이 주점의 마담이 지극한 효자를 두었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다. 마담의 말이 끝나자마자 포수의 뒷자리에서 얼굴에 술기운이 벌겋게 오른 청년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자기 단짝과 나란히 앉아서 양평서부터 소주잔을 권커니받거니 하고 있었다.
월남요? 아줌마, 월남에 댁의 아드님이 갔다고? 그렇담 내 좋은 수 알켜드릴까, 그 녀석 전사하라고 빌어요, 빌어. 어서 죽어달라고 말요. 그럼 목돈이 나온다구요, 아줌마.
청년은 뚱보여자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소리쳤다. 그러자 마담은 금방 얼굴빛이 노기로 시뻘개졌다.
저런 육시럴 양반 보게, 뭣이 어쩌고 어쩐다구?
하, 내 진정으로 허는 말인데 화내실 건 없다구. 내가 철모 쓰고 월남 갈 적에 우리 자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발 돈벌어서 너도 효도 좀 하래무나.
이러셨다구요. 그런데 아무래도 크게 효도하려면 죽어야겠다구 생각하고선 일부러 죽으려고 파열되는 송유관 곁으로 뛰어들었다구요. 빌어먹을 효자가 못될 팔자니깐 죽지 않고 경상만 입었지 뭐유? 그런데 죽으면 말요. 일단 죽으면 전사금 백 이십만 원, 소대 조위금, 중대 조위금, 하사관 단위 조위금 이렇게 목돈이 나온다구요. 하하하.
술이 취한 청년은 한바탕 떠들고 나서 도루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이없게 봉변을 당한 뚱보여인은 돌부처처럼 꽁꽁 얼어 있더니 돌연 단호한 어조로,
그런 에미가 있을 턱이 없어.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가기로서니 제자식을 돈과 바꿀 에미란 없다구.
하고 내뱉었다.
좌석 주변이 이렇게 소란한 동안에도 내내 감았던 눈을 뜨지 않고 꿈쩍도 하지 않는 여인이 있었다. 마흔을 갓 넘었을까말까 한 그녀는 포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죽 눈을 내리감고 아주 초연한 자세로 침묵속에 빠져 있었다. 여인은 길은 보랏빛 통치마와 하얀 저고리를 단정히 입었고 가지런히 세운 무릎 위에는 자그맣고 검은 가죽가방이 놓여 있었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는 그녀의 초연한 자세도 그러하지만 무언가 못마땅한 찌꺼기들이 있다는 듯이 약간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여인의 창백하다 못해 푸르둥둥한 살갗의 강파른 인상이 뭇사람들 가운데서 그녀를 더 돋보이게 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이따금 힐끗힐끗 곁눈질로 쳐다봤지만 그녀가 내리 돌부처 모양으로 있었기에 더이상 주목하지는 않았다.
이때 건너편 좌석에서는 자리다툼이 한바탕 벌어지고 있었다. 빠이로 외투를 입은 몸집 좋은 장년의 사내가 방금 좌석으로 다가와서 자리에 앉아 있는 잠바차림의 청년에게 아주 당당한 태도로 자리를 내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잠바가 빨끈하고 대들었다.
아니, 이거 보쇼. 이게 당신 개인 자립니까?
내가 변소에 소변보러 갔지 아주 내린 줄 아우? 비켜주쇼.
변소에 간 건 당신 일이구.
하여튼 비켜주쇼.
이보쇼 당신이 이 자릴 전세냈수?
순 엉터리로 말하지 마슈. 그럼 자릴 지키려구 변소에도 가지 말란 말이군그래.
당신이 잠자코 일어섰지 언제 변소에 가겠다고 말했수? 난 다리 아파 못 일어나요,
글쎄, 그건 댁의 사정 아뇨? 비켜주쇼.
빠이로 외투는 아주 추근추근하게 얼러댔고 잠바 역시 호락호락 자리를 내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쪽 자리다툼은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들이 다투는 장면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작업복 청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중앙선의 승객들 가운데 제대로 생겨먹은 놈은 한놈도 없다구.
환오는 그의 어조가 너무 노골적이고 격한 데에 불안을 느끼면서 행여 누가 들을까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청년은 주위의 귀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듯이 계속 격한 목소리로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