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지나갑니다. 뜨끈뜨끈한 우유가 지나갑니다. 뜨끈뜨끈한.

 

이때 처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판매원의 소리를 가로막았다.

 

뜨끈뜨끈하고 자시고 할 거 없이 좀 안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가뜩이나 사람 틈에서 부대끼던 바지차림의 처녀가 판매원을 가로막고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죄송하구요. 그저 쪼끔쬐끔만, 그 아가씨 궁둥이를 살짝 십오도 각도로만 비틀어주시면 지나가겠습니다.

 

못 지나가요. 도대체 이렇게 화물짝처럼 잔뜩 집어처넣고 그렇게 밟고 다니면 어떡허라는 거죠?

 

제가 뭐 철도청장이신 줄 아나베, 그러지 말고 아가씨 시집 잘 가려거던 십오도만.

 

흥, 누가 시집간대나. 하여튼 못 가요.

 

그럼 제가 가지요.

 

못 간다니까!

 

자, 그러지 마시고 살짝 이렇게 이렇게 지나가야만 저도 먹구살지요.

 

판매원은 능청스럽게 장단을 치면서 뱀이 미끄러져 빠지듯이 악착같이 버티는 바지처녀를 제치고 빠져나갔다. 주위 사람들은 처녀를 향해 낄낄거리며 웃어댔고 바지처녀는 판매원의 뒤통수에 대고 악담을 퍼붓고 있었다.

 

이건 말이 여행이지. 어디 비행기루 갈 건데. 춘천서는 평창까지 찻길이 없어서 매양 이고생이거든.

 

작업복 청년의 맞은편 좌석에 앉아 있는 사나이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러자 양쪽 좌석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그 사내 쪽으로 쏠렸다. 가죽으로 만든 포수자켓을 입고 머리에는 차양이 긴 붉은 캡을 쓴 사십줄의 사나이가 이토록 너저분한 삼등객차의 풍경이 자기로서는 심히 지겹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서울서 원주로 직행하는 민간 항로가 아직 개설되지 않은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다시 말했다. 그의 얼굴은 과연 비행기만 타고 다니는 사람답게 유들유들 기름기가 흘렀고 허여멀쑥했다.

 

평창으로 사냥 가시는군요.

 

이때 사내의 맞은편에서 뚱보여자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말씨는 자리를 다툴 때와는 딴판으로 부드럽고 몹시 여자다왔다. 말상대가 없어서 다시 말하면 자기를 알아주는 상대가 없어서 곤혹을 느끼던 포수는 눈이 번쩍 뜨이는지 얼른 여자 쪽을 쳐다봤다.

 

예. 예. 그렇죠. 그걸 어떻게 아시고?

 

뚱보여자는 머리 위의 선반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라이플 케이스와 베이지 빛깔의 슬리핑 백을 힐끗 쳐다본 뒤에 살짝 눈웃음을 쳐보이면서 말했다.

 

평창이 바루 제 고향이죠. 산돼지와 노루가 많으니까 사냥들을 많이 오거든요.

 

하, 그러십니까? 그런데 이쪽 양평, 여주 일대에도 꿩이 많다지요?

 

모르는 일인데요 그건. 토끼가 많다는 얘긴 더러 들었지만.

 

그러자 사내는 토끼라는 말에 금방 모욕을 느꼈는지 목줄기까지 붉어지면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까짓 토낄 잡아서 무엇합니까? 그런 걸 잡아가지구 들고 다니는 사람들 보면 쳐다보기가 쑥스러울 정도예요.

 

그의 어조가 어찌나 단호했던가 사람들은 몹시 의아스런 눈초리로 포수를 주목했고 그 낌새를 알고 있는 사내는 잠시 뜸을 들인 뒤에,

 

토끼 같은 것은 나는 잡았다가도 놓아줘요. 난 그따위 직업적인 포수들과는 근본적으로.

 

여기까지 말하다가 문득 자기 말이 너무 지나쳤다고 느꼈는지 얼른 말머릴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