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앙선 차간은 유난히 떠들썩하거든요. 영락없는 도떼기시장입니다. 보세요. 저 사람들 떠들어대는 소리 가운데 한마디라도 쓸 만한 게 있나. 큰소리로 떠들어봐야 죄다 하나마나한 소리들뿐이라구요. 게다가 저 얼굴하며 표정들 좀 보라구요. 남자, 여자, 늙은이, 처녀애들까지 모두 얼간이 표정이 아닌가요? 기껏 약다고 하는 게 저따위 표정이죠.

 

형씨는 왜 그렇게 생각하죠? 피곤해서들 그러는 게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구요. 그쪽 지방에는 먹을 게 없다 이겁니다. 먹지 못하니까 광대모양 비쩍 마르구 생각도 자연 얕아지지 뭡니까.

 

그건 생각 나름이겠죠. 난 이 사람들 아주 활기 있고 재미있게 보이는데요.

 

글쎄 그거라니까요. 바루 그거라구요. 처음 타셨으니까 그게 재미있을 수밖에 없지요.

 

작업복 청년은 그런 무리 속에 지금 자기가 끼어앉아 있고 그리고 자신도 어쩔수 없이 그 무리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몹시 불쾌하다는 듯 일그러진 표정으로 주위를 노려봤다. 그러고는 눈을 내리감고 한참동안 깊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눈을 떴다.

 

선생, 나도 이젠 싫증났어요. 이 느림보 기차에 타고서 무한정 기다린다는 게 말이죠. 정말 지쳤어요. 매양 이꼴 이 모양이니깐 정말 미칠 것 같다구요. 어떤 때는 이놈의 기차에서 그만 뛰어내려 죽어버릴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죠. 제가 별안간 이렇게 말하면 무슨 얘긴지 잘 모르실 테죠.

 

저는 요즘 기로에 서 있는 셈이죠. 마음 둘 데가 없고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겠어요. 시골에서 자극도 못 받고 젊은 나이에 무의미한 세월 보내는 데 싫증나서요. 그래 도시로 나갈까보다 했죠. 하지만 막상 도시로 나가보면 도시는 더 나를 실망시켜요. 허탕치고 그냥 돌아오죠.

 

돌아올 땐 하는 수 없이 배나무나 사과나무를 친구삼고 살자 이렇게 맘먹죠. 하지만 얼마 지나면 못 견디겠어요. 그러니까 이 기차를 타고 있을 때 제일 견디기 힘들다구요. 이렇게 느리게느리게 기어가는 기차를 타고 드디어 동화역에 내려봐야 뾰족한 수가 없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방황하는 동안 당신의 마음은 이 기차에 매달려 있다는 얘긴가요. 그래서 벗어나고 싶어도 도무지 이 기차를 탈출할 수가 없다는.

 

그런 거죠. 바루 그겁니다. 지긋지긋해도 하는 수 없이 이렇게 앉아 기다리는 겁니다. 갈 데가 따루 없으니까. 지금 제 눈에 과일나무가 보여요. 캄캄한 데 우두커니 서 있는 과일나무가요. 그옆에 가서 또 몇달이고 서성거릴 겁니다.

 

그게 싫어서 도시로 가보면, 이건 거기서는 날마다 밤마다 축제가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죠. 첨엔 그랬어요. 자세히 보노라면 참 우스운 일이 매일 벌어지고 있더군요. 요란하게 되풀이되는 드럼소리. 그건 마치 모든 도시 사람들이 지옥으로 바쁘게 걸어가는 행진에 맞춰 두드리는 소리 같죠.

 

그리고 무대와 화면에는 매양 같은 얼굴들이 나타나서 매양 같은 복장으로 매양 같은 표정으로 세리프를 반복하고, 수도물로 잘 씻은 어떤 새하얀 손가락은 전화의 같은 다이알을 자꾸 되풀이 돌려대고, 어두운 살롱 구석에 처박힌 젊은 남녀는 드럼과 기타소리에 맞추어 머리와 팔다리를 같은 모양으로 자꾸 흔들어대고,

 

노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사말은 늘 그게 그거고, 술집에서는 남마다 대폿잔이 부딪히고. 뮤직 박스 속에서는 흡사 디스크가 바늘에 걸려 제자리걸음이나 하는 듯이 자꾸 비슷한 소절이 되풀이되고, 사랑하고 있어요, 사랑해요, 사랑한다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입니다. 말하자면 이게 현대의 리듬이란 것일까요? 통 모를 일이라구요. 난 그래서 그만 실망하고 말았어요.

 

그렇지만 하나하나 행동에 의미를 붙인다는 것처럼 피곤한 고역도 없겠지요. 그들은 약아서 그걸 깨닫고 있어요.

 

그건 나도 알지요. 실상 그들이 어떻게 하건 말건 나하고 무슨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선생, 내 말은 그게 아니라구요, 내 말은.

 

그러나 작업복 청년이 그의 말을 하려고 했을 때 저쪽 객차 모퉁이에서 화투판을 벌이고 있던 여인들 사이에서 요란한 아우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환오와 작업복 청년은 물론 모든 승객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함성이 터진 쪽으로 쏠렸다.

 

하나같이 요란한 빛깔의 나들이옷으로 곱게 단장한 칠팔 명의 여인들이 화투짝을 팽개치고 드디어 좌석에서 몸을 일으켜 둥실둥실 춤을 추면서 아우성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놀자, 놀자, 하고 선동하면서 손뼉을 치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 공연히 혼자 좋은지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고 낄낄거리는 여인도 있었고, 자기 흥에 취해서 스르르 눈을 감고 흘러간 옛노래를 읊조리는 여인도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들의 손뼉치기는 서서히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선창하기 시작하자 드디어 손뼉에 맞추어 합창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