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차의 승강대 위에 가까스로 발을 올려놓은 김환오는 입구부터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 때문에 통로가 꽉 막힌 것을 발견했다. 그는 방금 지하도를 황급히 빠져나온 뒤라서 몹시 숨을 헐떡였지만 그렇다고 승강대의 문턱에 그대로 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여행용 손가방을 두손으로 높이 받쳐들고 무작정 사람들 틈을 비집고 층계를 올라갔다. 이때 열차는 두번째로 발차의 경적을 울렸고 환오가 난간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는 열차는 스르르 미끄러져가기 시작했다.
일단 열차가 움직이자 입석객들의 불편은 더욱 심해졌다. 더구나 열차가 역 구내의 교차선을 빠져나갈 때는 열차의 심한 동요 때문에 난간에 서 있던 사람들은 서로 이마를 부딪치거나 팔로 남의 가슴패기를 치곤 했다. 남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준 사람은 그렇다고 변명할 계제도 못되었다. 그들은 서로 너무 가까이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실상 피해를 준 쪽이 누군지조차 분별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들은 다만 꿀먹은 벙어리처럼 숨을 씩씩거리며 상대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그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환오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그는 두손을 교대해 가며 가방을 어깨 위로 치켜든 채 한 무리의 휩쓸림에 그대로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제기랄 기차가 정각에만 와주었대도 자릴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연착할 바에야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오기 전에 개찰만 끝내줬던들 공평하게 자리다툼을 했을 것 아닌가.
중앙선에서는 연착이 상식으로 돼 있다는 것을, 특히 요였 겨울철에 들어와서는 수도의 연료를 공급하는 화물열차의 왕래가 한층 빈번해진 까닭에 일반 여객차가 한두 시간 늦는 것은 예사라는 사실을 환오는 미처 몰랐다. 그는 19시 30분발 열차 시각에 알맞게 대어서 역 대합실에 나왔다가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았다.
안내양의 말인즉 기차가 언제 플랫폼에 들어올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근처의 다방에서 삼십 분 가량 기다린 뒤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대합실은 여전히 한산했고 안내양의 대답은 역시 기차가 언제 플랫폼에 나타날는지는 아직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그 다방으로 가서 삼십 분 가량 더 기다린 뒤 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사람들이 매표구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기차는 너무 빨리 오게 된 셈이고 환오는 그 임의의 시간을 불행히도 맞추지 못했던 것이다.
역원들은 또 무슨 이유에선지 열차가 홈에 들어올 때가 임박해서야 개찰을 시작했다. 장사진의 꼬리에 처져 있던 사람들이 개출구를 빠져나왔을 때 기차는 벌써 플랫폼에 들어와서 첫번째 발차의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그들은 흡사 장애물 경주에 나선 사람들처럼 부리나케 지하도의 계단을 뛰어내려갔지만 자리를 잡기에는 때가 너무 늦어 있었다.
하지만 열차의 연착이나 역원의 불공평한 처사 때문에 자릴 잡지 못했다는 불평은 한낱 잠꼬대나 다름없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그들의 변덕스런 관례에 잘 적응하고 있었을 뿐더러 어떤 경우에나 승객이 기차를 기다리는 법이지 기차가 승객을 기다려주는 법은 없었던 것이다.
난간은 서로 얼굴조차 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웠다. 그들은 이따금 환등 시설과 스팀 시설이 되어 있을 객차 속을 흘끔흘끔 기웃거렸지만 객차 속으로 통하는 통로에도 사람들이 잔뜩 막아서 있기 때문에 객차 속이 보일 턱이 없었다. 환오는 비록 작은 손가방이지만 그걸 높이 치켜든 채 좁은 틈바구니에서 오래 버티고 서 있기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그는 혹시 객차 속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나 보려고 입구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면서 발돋움을 했다.
뭐야? 이건, 남의 발을 밟지 말라구.
이때 귓전에서 버럭 고함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그는 미처 통로 쪽을 기웃거릴 틈도 없이 뒤로 주춤 물러서고 말았다.
당신 뭣 땜에 남의 발을 밟는 거요?
얼굴도 보이지 않는 곁의 사내는 역시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 발을 밟힌 게 몹시 불쾌한 듯 연거푸 신경질적으로 윽박질러왔다. 환오는 무슨 물건 훔치다 들킨 사람처럼 그의 질문에 대답할 바를 모르고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저속으로 들어갔으면 하구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금방 허허 하고 헛웃음을 웃었다. 그러고는 역시 신경질적인 어조로 쏘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