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노 다차에 머무는 동안 시간은 즐겁게 흘러갔다.

 

과거의 우울한 기억들에 늘 시달리던 나도 이때만은 그것들을 모두 잊고 가벼운 기분으로 즐겁게 지냈다.

 

가족들은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을까? 나와 단짝처럼 늘 붙어 지내던 강아지는 여전히 건강하게 뛰놀고 있을까?

 

문득문득 이런 걱정이 스쳐갔으나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내 신상 문제와 관련된 무거운 주제들은 되도록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날이 새면 잇달아 흥미로운 일들이 발생했기 때문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런 골치 아픈 생각들은 출몰하지 않았다.

 

내가 즐겁게 지낼 수 있던 것은 물론 전적으로 A의 거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 하루의 모든 일정은 손님인 나를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A의 신부인 엘레오노라도 손님이 식사에 불편을 겪거나 부족함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갖은 정성을 다 기울였다.

 

우즈벡 출신인 엘레오노라 덕에 나는 우즈벡 식의 스프와 크고 딱딱한 빵도 처음 맛볼 수 있었다. 가장 즐겁고 상쾌한 일과는 숲으로 가서 버섯 따는 일이었다. 일대의 숲에는 각종 버섯들이 널려있다. 버섯들이 겉모양은 비슷하지만 어떤 것은 식용이 가능하고 어떤 것은 독성이 강해서 잘 못 채취했다가는 크게 낭패 볼 수가 있다. A가 몇 차례나 그 식별법을 가르쳐줬지만 모양이 서로 너무 비슷해서 나는 독버섯을 A에게 내밀다가 몇 차례나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날 채취한 작고 깨끗한 흰 버섯은 스프의 재료가 되어 식탁에 올랐는데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요리로 쳐줘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모스크바와 가브리노 사이를 오가는 길목에는 산에서 채취한 흰 버섯을 쌓아놓고 파는 인근 마을의 여인들을 쉽게 볼 수가 있다. 그 버섯들은 품질이 뛰어난 것들이 있는데 값도 만만치가 않았다.

 

A는 버섯을 따는 동안 자주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소리는 신통치 않았지만 본인은 매우 흥에 겨워 노래를 불렀다. 그가 부른 노래 가운데 <레비니슈까>란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는 강을 사이에 두고 서있는 레비냐 나무와 참나무가 서로 사랑하지만 강이 가로막고 있어서 두 나무는 영원히 이별상태로 지낸다는 그런 내용이다.

 

레비냐는 앵두 같은 빨간 열매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로 러시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몇 해 전 모스크바 외곽지역인 꾼쩨바에서 며칠 묵을 때 큰 레비냐 나무의 가지가 아파트 창에 스칠 듯이 가까이 뻗어있는 걸 봤기 때문에 나도 이 나무를 잘 알고 있었다. 이 노래 외에 A는 <하늘은 매우 넓어요>라는 러시아 동요도 흥얼거렸다. 다차의 뒷뜰에서 바라보면 확실히 러시아 하늘이 한국 하늘보다 넓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광활한 평야지대인 이곳에는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차의 형태도 주인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전위작가이자, 한때 화가 지망생이던 A의 다차는 그의 취향대로 호수를 바라보는 전망 위주로 지어졌고 이웃 마을에 다차를 가진 작가 리추찐은 평범한 농부 같은 그 사람의 인상 그대로 전형적인 농가식 다차이다.

 

햇빛이 아주 밝은 날 정오쯤에 A와 나는 버섯을 따러 숲으로 갔다. 우리는 이 날 따라 벌에 쏘이는 걸 막기 위해 얼굴에 방충망을 썼다. 날씨가 화창하면 숲에 벌들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그런데 희고 깨끗한 버섯들이 전날 내린 비로 모두 망가져서 수확이 신통치 않았다. A가 혀를 끌끌 차더니 갑자기 버섯 따기를 중단하고 이웃 마을 누구네 집에 마실을 간다고 예고했다.

 

나는 찾아가는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다. 숲에서 벗어나 샛길을 한참 걷다 보니 무릎까지 자란 갈대밭이 나타났고 갈대밭을 지나자, 십여 호의 농가들이 사이좋게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그제서야 우리는 그때까지 얼굴에 쓰고 있던 방충망을 벗겨내 각자 손에 들었다.

 

하얀 머리에 얼굴에도 흰 수염이 더부룩이 자란 평범한 농부 같은 인상의 남자가 울타리 안에서 우리에게 손짓했다. 나는 그가 진짜 농부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모스크바에서 역사를 소재로 삼은 작품으로 명성이 높은 작가 리추찐이었다. 그는 휴가철에 아내와 아이 둘을 데리고 다차로 와서 잠시 지내고 있는 것이다. 리추찐의 다차는 에덴이었다. 마당 입구의 사과나무에는 맛이 좋은 푸른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마당의 밭에서는 각종 채소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몸집이 큰 개 한마리가 집을 지키고 있고 마당 끝에는 작은 찜질방 비슷한 목욕시설도 설치되어 있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리추찐의 아내가 즉시 보드카와 검은 빵과 스마로지나(불루베리) 열매로 만든 잼을 탁자 위에 늘어놓고 손님을 청했다. 나는 첫 만남이라 집주인이 권하는 보드카도 한잔 마셨다. 

 

“참, 이곳은 진짜 낙원이네요. 여기에 이런 낙원이 있을 줄이야.”

 

내가 집주인 내외에게 진심으로 했던 말이다. 리추찐 내외가 무슨 말인지 몰라 궁금한 표정으로 A의 해명을 기다렸다. A가 자신은 마치 내가 한 말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러시아 말로 뭐라고 짦게 말했다. 그러자, 리추찐과 여주인이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A의 한국말이 유아 수준이지만 그는 내가 하는 말을 용케도 잘 이해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 밖에 없다는 걸 A는 직감으로 알았을 것이다.

 

리추찐은 다차에 와서 머무는 동안에도 노트북을 앞에 놓고 쉬지 않고 작품을 쓰고 있었다. A와 비슷한 연배인데도 여전히 왕성하게 글을 쓰는 그의 근면성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내게 서가에 진열된 자기의 저서들과 사진첩을 보여줬고 그의 매력 있는 아내는 거실과 현관에 걸려있는 자기의 그림 몇 점을 자랑 삼아 보여주기도 했다. 취미삼아 그린 그림인지 풍경을 사실적으로 옮겨놓은 그림들은 그다지 기억에 남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리추찐의 아내, 세 번째일 걸.”

 

돌아오는 길에 A가 묻지도 않은 말을 흉보듯 중얼거렸다. 자기의 세 번째 결혼이 뭐 특별할 건 없다는 말로 내겐 들렸다.

 

다차에서 차를 타고 삼십분 정도 달려가면 아까 강을 끼고 있는 유서 깊은 소도시 카시모프에 이른다. 별다른 산업체가 없어서 지금은 잠자는 도시처럼 조용한 곳이지만 여기에는 타타르와 몽골의 침공이 남긴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터키식 회교사원과 터키풍의 오래된 건물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이며 오래된 정교회 건물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아리따운 자매 둘이 시중드는 러시아식당도 있어서 그곳에 갈 때마다 그 식당을 찾았다. 아까 강은 강폭은 그다지 넓지 않으나 수량이 많고 강 양안에 우거진 숲들이 늘어서 있어서 경관이 좋은 편이었다. 가끔 낚시꾼도 잉어를 낚기 위해 아까 강을 찾는다고 한다. <아까 강을 지나며>라는 솔제니친의 엽편소설, 사회주의 몰락기의 농촌 풍경을 적절하게 그려낸 그 작품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카시모프에서는 그 지방의 작가 시인들을 몇 사람 만나고 그들과 조촐한 보드카 잔치도 가졌다. 무엇보다 사냥꾼 이바노프가 재미있는 인물이었다. 체격이 건장하고 성격이 활달한 남성인데 그는 카시모프의 명물 같은 존재라고 A가 내게 귀띔해줬다. 이바노프는 사회주의 당시에 당의 고위층이 곰 사냥을 나올 때 전문사냥꾼 자격으로 그들을 자주 안내해준 인연으로 한때는 카시모프의 세도가로 행세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이바노프는 놀기 좋아하고 처음 보는 이방의 손님에게 친절을 베풀 줄도 아는 멋진 사내였다. 그는 자청해서 카시모프 도시 안내를 내게 해주었고 몇 가지 짓궂은 농담-이를테면 카시모프가 맘에 들고 여기 오래 머물기를 원한다면 상냥하고 건강한 카시모프 여인을 내게 짝지어줄 수도 있다는-으로 내게 친밀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헤어질 때도 이바노프는 ‘우리는 이곳에서 반드시 재회해야 한다’는 말을 강조했다. 그는 카시모프를 사랑하는 사내였다.

 

니나네 집에는 틈이 나면 들르곤 했다. 어느 날 마침 집에 있는 남동생 발로자도 만났다. 그도 중년은 훌쩍 지난 사람인데 술만 마시지 않으면 색시처럼 수줍어하는, 아주 순박하고 착한 농사꾼의 전형이었다. 그런 사람이 술에 취하면 사나운 짐승처럼 돌변한다고 니나가 탄식했다. 오죽하면 아내가 집을 뛰쳐나갔으랴. 그 아내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누나의 탄식과 질책을 들으며 발로자는 부끄러운 듯 눈길을 내리깔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그러나 누나가 자리를 피하자, 금방 명랑하고 쾌활한 사나이로 변해서 A와 껄껄대며 갖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봐요. 니나가 당신 좋아하는 것 같아.”

 

거실에서 차를 마시는데 A가 눈웃음을 보이며 불쑥 내게 말했다. A는 장소 가리지 않고 농담을 잘한다. 니나도 맞은편에 앉아 차를 마시다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친구인 A의 표정을 살핀다.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앉자, A가 다시 말했다.

 

“니나 땅이 아주 많다. 여기 땅 모스크바 부자들 갖고싶어 하지. 그래도 니나 팔지 않았어. 당신이 여기 와서 살 거라면 니나 당신에게 땅을 줄 거래. 니나, 내 말이 맞았지?“

 

A가 궁금해 하는 니나에게 다시 러시아말로 방금 내게 한 말을 그대로 옮긴다. 니나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얼굴이 불그레해지면서 수긍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니나, 이 친구에게 땅 준다 했잖아.”

 

니나가 뭐라고 A에게 말해주고 A가 내게 그 말을 옮겨준다.

 

“그렇다고 했소. 당신 여기 살 거면 땅을 주겠다고 했소.”

 

니나가 스스로 어색한지 부엌으로 나가버렸다. 물론 니나 말은 다른 뜻은 아니고 잠깐 사귄 친구지만 친구로서 이곳이 정말 맘에 들면 땅을 줄 수도 있다는 단순한 친애감의 표시일 것이다.

 

상상이나 공상으론 가능하지 않은 일이 없다. 러시아 중남부 가브리노에 다차를 짓고 조용한 이국생활을 즐기는 것도 상상에선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지만 현실성은 하나도 없다. 상상 자체만으로도 잠시 즐거웠을 뿐이다. 무엇보다 니나의 우정을 얻었다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가브리노 체재를 끝내고 모스크바 툴스카야 숙소로 돌아온 나는 맨 먼저 전자상가에 가서 우랄 합창단이 부른 <레비냐의 노래> 음반을 구했다. 전자상가에는 서울에서 온 B교수도 동행했다. B 교수는 얼마 뒤 야스나야 팔리아나에서 열리는 작가 미팅에 참여할 목적으로 날짜에 맟춰 러시아에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