뚤라의 재단사무국에서 일행들은 점심을 제공받았다. 햄버거 종류의 간단한 요깃거리였다. 참가자가 목에 걸고 다니는 등록명찰도 거기서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백 여 명이 조금 넘을까? 혹은 그에 못 미칠까? 버스를 타지 않고 개인 차편으로 현지로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을 거란 말을 들었다. 그날 오후 늦게 야스나야 팔리아나 영지에 도착한 뒤 각자 숙소를 배정받았는데 나는 B 교수와 같은 방을 배정받았고 A 부부는 다른 층의 방을 배정받았다.

 

그 숲 속에 그처럼 아담한 호텔시설이 설비되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영지 바깥의 러시아 식당에서 그날 저녁을 먹었는데 아주 푸짐하고도 맛이 있는 성찬이었던 것 같다. 식사 후에 카페 같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보드카도 한잔씩 마셨는데 어디나 그렇듯 끼리끼리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A 와 B 교수가 다른 곳에 가 있어서 잠시 나는 혼자 그들 사이에 끼어있었는데 아무도 카레이에서 온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그들끼리만 대화를 나눴다. 물론 내게 말을 걸어봤자, 내가 러시아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외톨이의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을 때 A 가 이르쿠츠크에서 온 부일로프 라는 동년배 작가를 우리 방으로 데려왔다. 러시아는 땅이 넓어서 작가들의 거주 지역, 출신지역도 아주 다양했다. 참가자 가운데는 이르쿠츠크 말고 우랄 기슭의 카프카스 지역에서 혼자 외롭게 글을 쓴다는 부일로프라는 작가도 있었다. A가 유독 부일로프를 우리에게 데려온 것은 그가 흥미만점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베리아 호랑이 사냥꾼이었다. 그는 호랑이 사냥을 소재 삼은 장편소설 책을 몇 권 가져와서 우리에게 선물했고 사냥에 직접 참여한 자기의 생생한 사진도 몇 장 가져와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호랑이 사냥꾼의 작가라니!

 

아무리 드넓은 러시아 땅이고 수많은 종족들이 거주하는 땅이지만 내겐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얼굴이 길쭉하고 몸이 건장해서 매우 정력적 인물로 보이는 부일로프의 놀라운 점은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시베리아 자연보호 운동가이며 현지의 풍광을 렌즈에 담아 외부에 알리는 사진작가이며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직접 지어낸 건축기사이며 카자크 기병대의 퇴직 대령이고 시베리아 소수민족 보호운동 단체의 리더였다. 부일로프는 시베리아 자연풍광을 찍은 사진들을 우리에게 선물하기도 했는데 그 솜씨가 만만치 않았다. A에 의하면 부일로프의 호랑이 소설은 수십만 권이 팔려나간 화제작이었다 한다. 한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능력과 재능을 주어도 되는 것인지, 부일로프란 인물을 보면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작가 미팅 참여자는 대부분 러시아 작가 시인들이지만 해외 참가자도 '세계대회'라는 걸개의 명칭에 그런대로 구색을 맞추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온 한 원로시인은 전문통역사까지 대동하고 있는데 그쪽에서 명성이 높은지 그 위세가 당당했다. 멀리 멕시코에서 건너온 평론가란 사람, 북경사범대학장이라는 러시아 문학 전공자, 이탈리아에서 온 작가 한사람, 그리고 까레이에서 온 B 교수와 나, 대충 이런 면면이 떠오른다.

 

몇 가지 행사가 있지만 핵심은 매일 오전 오후로 나뉘어 개최되는 세션이었다. 실내에서 거행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바깥 잔디밭에서 세션을 갖는데 참가자들 누구나 차례로 나와서 문학에 관해, 혹은 사회에 관해 자기 생각과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하는 시간이었다. 특별히 사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참여자 거의 대부분이 자기 차례를 활용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기에 시간이 제일 많이 소요되었다.

 

시간 제한 같은 것이 엄격하게 적용 되는 것 같지 않고 어떤 사람은 좀 지루할 정도로 혼자 오랜 시간 동안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신진이나 원로나 차별 없이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씩 계속되는 이 지루한 세션에 싫증을 내지 않고 끝까지 진지하고 열정적인 자세로 참여하는 모습도 내게 적지 않은 교훈을 주었다. 

 

친절한 B 교수가 중요한 의견이 나올 때마다 내게 간명한 통역을 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토론의 대강의 흐름 정도는 파악할 수가 있었다. 어떤 원로작가는 근래 러시아 서점가를 점령하다시피 한 일본 유행소설, 특히 판타지 소설 범람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현했고 어떤 신예작가는 최근 중견이나 원로급 작가들이 러시아 사회 정치현실을 외면하고 비판의 붓을 꺾어버린 바람에 러시아 문학의 오랜 전통을 배반하고 있다고 아주 신랄하게 선배들을 비판했다. 그 신예작가의 주장과 패기가 무척 인상이 깊었다. 원로들도 별다른 불쾌한 반응 없이 이 젊은 작가의 열띤 주장을 끝까지 주의 깊게 들었다.

 

세션이 끝나기 하루 전엔가, 거의 끝 무렵에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오후 두시쯤, 발표가 진행 중인데 A가 다가와서 곧 내 차례가 된다고 귀띔을 해줬다. 너무 오래 세션이 진행되었고 또 너무 지루했기 때문에 나는 내게까지 그런 기회가 올 거란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A가 잊지 않고 내 차례를 체크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도 내가 어떻게 대처할지 걱정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이때 내가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신체적 이상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패닉이란 걸 처음 경험한 것이다. 머리는 하얗게 비어버리고 가슴은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쿵쾅거리며 마구 뛰었다.

 

나는 까레이에서 온 촌뜨기이다. 까레이의 문학적 위상이야 모스크바의 몇 군데 주요서점에 가서 보면 단박에 알 수가 있다. 아예 존재감이란 게 없는 것이다. 처음 와서 시내 몇 군데 서점구경을 했는데 일본 작가들, 유행작가, 문제 작가 할 거 없이 그들의 번역 저서들이 러시아 작가들과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진열장을 장식하고 있는데 충격을 받았다.

 

까레이 책은 한 권도 발견하지 못했다. 미팅에 참여한 러시아 작가들과 해외 작가들 역시 까레이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을 것이다. 까레이의 문학은 국내에서야 분파도 있고 몇몇 유명작가들의 위세도 있지만 외국에서 보면 현재로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나는 또 까레이를 대표할 입장도 아니고 자격도 없다. 분파의 멤버로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어 본 경험도 없고 국내에서도 남 앞에서 자기 일가견을 피력해본 경험조차 전혀 없다. 나는 외톨이이고 어느 젊은 평가의 글을 보니 초기부터 낯선 작품으로 일관한, 주류 밖의 인물로 그려놓고 있다. 러시아까지 와서 엉뚱한 일로 자기의 초라한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이곳 작가들이 내게 보인 그간의 무관심도 나의 패닉을 조장하는 데 한몫 거들었다.

 

패닉에 시달리던 나는 어이없게도 도망갈 궁리를 했다. 잠시 현장을 피해버린다면 나를 찾다가 곧 다음 순서로 넘어갈 것이다. 초등학생 수준의 단순한 작문을 발표라고 해놓고 웃음꺼리가 되느니 차라리 현장을 피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잔디밭 아래쪽으로 한참 내려갔다. 가다가 생각해보니 서울에서 본문 번역을 해서 여기까지 가져온 B 교수와 그리고 내 차례를 확인해준 A, 그의 신부 엘레오노라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들 모두 세션 현장에서 기대와 호기심, 약간의 우려감을 갖고 나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B 교수에게 돌아와서 넌지시 말했다.

 

“B 교수. 이걸 생략하면 안 될까요? 처음 예정에 없던 것이고 별로 내키지도 않는데요.”

 

“무슨 말씀이세요? 하셔야죠. 주최측도 기대하고 있는데.”

 

B 교수는 단호했다. 

 

결국 나와 통역자인 B 교수는 호명을 받고 마이크가 있는 연단으로 나갔다. 나는 먼저 우리말로 '러시아 여행 중에 이 미팅에 참가하게 된 간단한 내역, 그리고 내가 발표할 내용은 친구인 프로페서가 러시아말로 여러분에게 전할 거란 사실 등을 인사말 대신 말했고 그 내용을 B 교수가 즉석 통역했다.

 

B교수는 미국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는데-당시 러시아는 아직 개방 전이고 우리와 교류가 없던 시절이었다-자기에게 러시아 말을 가르친 교수가 망명 러시아인으로 매우 고급스런 러시아 표준어를 구사하던 분이었고 그 바람에 아주 품질 좋은 러시아 말과 발음을 습득하게 되었노라고 내게 말했던 일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작문을 읽어 내려가는 B 교수의 러시아말이 옆에서 내가 듣기에도 아주 그럴싸하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