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쉬고 생명을 유지해도 믿음이 없는 존재는 돌멩이와 같다.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구원 받은 영혼.
강아지는 영혼이 없다고, 전에 어느 친구가 하던 말이 떠오른다. 영화감독인 그 친구는 열렬한 기독신자로 마주칠 때마다 내게 신앙을 권했다. 내가 농담으로 ‘우리 집 강아지와 함께 교회당에 가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그가 그 말을 했었다. 신앙인들이 보통 드러내는 불신자에 대한 강한 배타적 태도는 상대방을 영혼 없는 돌멩이로 보기 때문이 아닌가.
강아지와 함께 오래 살아온 나는 강아지와 인간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아지도 생각하고 맛이 좋은 먹을거리를 탐하고 즐거운 놀이를 시시때때로 시도한다.
나무나 풀은 어떤가? 그들도 숨을 쉬는? 생명이다. 다만 움직임이 없을 뿐.
가브리노의 다차 뒤뜰에서 자생하고 있던 러시아 민들레, 파클론 아드반치쿠와 거기 머무는 동안 나는 친구처럼 지냈다.
따로 일정이 없을 때 나는 그 옆에 앉아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대화가 없어도 친밀감을 느끼는 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하긴 그때 한국말이 서투른 A와 나 사이에도 대화는 거의 없었다. 다차에서 떠날 때가 되어 뒤뜰의 파클론 아드반치쿠에게 달려가 작별인사를 할 때 그 한그루 식물이 정말 그동안 나의 다정한 친구였다는 걸 절감했다. 그 작별이 그만큼 아쉬웠던 것이다.
A는 많이 변해버렸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다. 나를 대하는 그의 표정과 말씨는 나를 자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그의 더욱 독실해진 신앙과 관련 있지 않을까? 그는 나를 먼 조상의 땅에서 힘들게 찾아온 친구라기보다 단순히 영혼 없는 한 개 돌멩이로 보는 건 아닌가. 조상의 땅이니 친구니 하는 건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별다른 의미 없는 현세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내게 친절과 예의를 베풀어야 할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이런 생각이 나의 아둔한 망상이길 나는 바란다.
병원에서 나온 우리는 시내 변두리에 있는 일본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건장한 젊은이가 요란한 일본식 기모노를 입고 호텔의 도어맨처럼 요란한 제스처를 하면서 입구에서 손님을 맞았다.
그가 키르기스스탄 출신이란 건 A가 일부러 다가가서 그와 몇 마디 얘길 주고받은 뒤 내게 알려줘서 알게 되었다. 일본 식당은 러시아 시민들 구미에 맞게 음식을 기름지고 달콤하게 만들어 손님을 끌고 있었다. 초밥과 몇 가지 생선요리로 그런대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A는 우리가 먹은 음식 1인분을 따로 포장해달라고 종업원에게 부탁했다.
“엘레오노라가 이 집 음식 좋아하오. 우리 이 집에 자주 왔었지.”
맛있는 음식을 보고 아내를 잊지 않는 걸 보면 A는 자상하고 충실한 보통 남편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들러 그 음식을 전했다.
이른 저녁을 먹은 탓으로 그날 저녁 늦은 시간에 주방에서 가벼운 간식 시간을 가졌는데 보드카를 한잔 마신 A가 내게 불쑥 물었다.
“서울에 친구 몇 명 있소? 친구가 누구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친구라면...”
나는 질문의 의도를 몰라 뒷말을 잇지 못했다.
“아, 그냥 만나는 친구 말이오.”
“아, 저는 친구 없어요. 친구 서울에 한 사람도 없어요.”
나는 그 질문이 거슬려서 민감하게 반응했다. 왜 갑자기 A는 나를 만난 지 7년 만에 이런 엉뚱한 질문을 던진 걸까?
‘넌 친구도 없는 외톨이 아니냐. 그래서 여기까지 나를 찾아온 것 아닌가.’
A가 이런 생각을 했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친구는 사방에 널려 있다. 그러나 근래에는 거의 혼자 외톨이로 지낸다. A는 혹시 유명인 작가 친구를 말한 것인가? 그런 친구들도 한 둘은 아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친교가 거의 없다.
작가들 사이의 우정이란 부질없는 것이다. 상대방에 관대하지 못한 내 성격에도 문제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A 당신은 친구 있소? 정말로 가까운 친구 말입니다.”
“아, 나도 친구 없소. 친구 갖기가 어렵지. 별 뜻 없이 물은 거요.”
친구 논쟁은 여기서 싱겁게 끝났지만 서로 얼굴을 붉힌 건 처음이었다. A가 엉뚱한 질문을 던진 진짜 의도는 여전히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오늘 가브리노 못 가오. 내가 너무 아파서.”
넷째 날 아침 조금 늦게 침실에서 나온 A의 첫마디였다. 그는 가슴이 몹시 아픈 듯 손으로 옆 가슴을 어루만지며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그의 얼굴 표정에서 그가 나를 지금은 몹시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 나를 가브리노로 데려갈 책임 같은 건 조금도 없다. 그런데 내가 마치 빚쟁이처럼 그에게 굴고 있다고 그는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저, 가브리노 가지 않을 겁니다.”
나는 빨리 생각을 정리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니나도 내 마음은 알아주겠지요. 체르무쉬끼 민박집으로 일단 가겠어요.”
A가 흠칫 놀라 나를 흘깃 한번 쳐다보고 말없이 자기 침실로 들어갔다. 그도 자기 생각을 정리하려는 것 같았다.
잠시 후 A가 나와서 말했다.
“그럼, 아침 식사 하고 내가 체르무쉬끼까지 차로 데려다주겠소.”
결론은 빨리 나왔다. A의 표정은 담담했다. A 입장에서는 차라리 후련했을지 모른다. A가 나를 극구 만류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환자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A는 내가 왜 니나를 찾아왔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에게 그 문제에 관해 한마디도 해명하지 않았다. 사실 해명할 내용도 자신도 없었다. 적어도 거기 머물던 시간에는 나 자신도 자기에게 명확하게 해명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만사 젖혀놓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그렇게 하고 싶었고 해야겠다는 필연의 욕구는 자제하기 어려울 만큼 강했다. 그러나 무슨 비즈니스처럼 뚜렷한 명목은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정신의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나도 알고 있소. A가 수차례 이런 말을 했으나 그건 겉치레 인사말에 불과했다. 그가 그런 말을 하면 나는 수긍하는 듯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나의 성묘 여행에 정말 심각한 동기가 있고 거기에 두 사람의 합의가 있었다면 가브리노 행을 이렇게 가볍게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A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내게 책임이 더 있다. 충분한 소통이 어려운 언어문제도 있었다.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서 잠시 휴식을 가진 뒤 A와 나는 차를 타고 체르무쉬끼로 향했다. 페레델키노에서는 사흘을 묵은 셈인데 다시 그곳에 돌아가지는 않았다. 작가의 기념관을 보겠다던 계획도 없던 일이 되었다. 작가촌을 떠나기 전 A가 내게 물었다.
“야스나야 팔리아나는 어찌 하오?
며칠 뒤 개막한다는 작기미팅 참여를 묻는 말이었다. 나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짧게 대답했고 그 문제는 그걸로 끝이었다. 7년전 야스나야 팔리아나 작가 미팅의 기억은 유쾌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머리 속이 가브리노의 니나로만 가득 찼다.
민박집의 주인 이진과 주방 아줌마는 되돌아온 나를 가까운 친척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주방 아줌마는 새로 김치를 맛있게 담갔다면서 서둘러 점심 식탁을 마련했다. 그 식탁에 A도 자리를 함께 했다. A는 민박집 여인들과 아주 쾌활하게 얘기를 나누고 표정도 둘이 있을 때보다 훨씬 밝았다.
“아, 이 맛있는 김치. A선생에게 조금 드릴 수 있을까요?”
A가 김치를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내가 주방아줌마에게 말했다. 주방 아줌마가 내 제안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그녀는 비닐봉지에 따로 김치를 재빨리 포장했다. A가 만족스런 얼굴로 말했다.
“엘레오노라가 아주 좋아하겠어.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이오.”
식사를 마치고 나는 A를 배웅하기 위해 그와 함께 아래층 현관으로 내려왔다. 현관문을 막 열려고 하는데 A가 돌연 팔 하나로 내 허리를 감싸안으며-한 손에 김치 포장을 들고 있었다-마치 톨스토이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처럼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용서하오...”
얼떨결에 나도 그의 허리를 팔로 감싸안고 더듬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난 A 당신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일단 이렇게 헤어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