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 때문에 며칠 동안 나는 민박집 근처에서 맴돌았다. 하루 한차례 외출이라고 했지만 고작해야 첫날 나갔던 지하철역까지 다녀오는 게 전부였다. 만나는 사람도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다. 구지 대화 상대라면 풀밭에서 풀씨를 쪼아 먹는 비둘기나 참새들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방의 새들과 이른바 '무언의 대화'를 나눈 셈이다.
하긴 서로 몇 마디 얘기를 나눈 유일한 인물이 있다. 조그만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마흔 안팎으로 뵈는 어떤 사내가 맞은편 벤치로 와서 앉아 나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나쁜 인상은 아닌데 옷차림이 허술하고 얼굴은 술기운으로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서툴지만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나는 그 남자와 날씨와 로스트로포비치에 관해 짧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왜 갑자기 로스트로포비치가 등장했느냐 하면 그 주정꾼은 나와 자꾸만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고 나는 별로 꺼낼 얘깃거리도 없어서 내가 갑자기 몇 해 전 작고한 첼리스트에 관해 아느냐고 그에게 뚱딴지처럼 물었던 것이다.
러시아 국민 첼리스트인 그 이름을 이 주정꾼도 물론 알고 있었다. 이어서 투르게네프와 체홉의 이름도 나왔고 그는 물론 그 이름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작품에 대해 그가 러시아 말로 뭐라고 한참 설명을 했는데 무슨 얘기인지 대충 추측만 할뿐이었다. 주정꾼과의 대화는 십 여 분에 그쳤고 나는 곧 공원을 떠났다.
민박집 방에는 책들이 몇 권 꽂힌 서가가 있다. 그 서가의 책을 통해 나는 방 안에 갇혀있는 무료한 시간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몇 해 전 국내에서 출간된 아나톨리 리바코프의 <아르바트 아이들>이란 소설은 이름만 들었지, 읽지는 않았다. 제목만 보면 러시아 젊은이들의 가벼운 연애담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사회주의 당시의 러시아 젊은 세대들의 수난사를 아주 정밀하게 그려낸 수작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로운 희망을 위하여>라는 에세이집도 그 방에서 읽었다. 이 책은 92년 그가 대선에 실패하고 영국 체류 기간에 정치에서 손을 뗀 입장에서 쓰인 책이란 특징이 있다. 근엄한 정객이라는 입장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소박하게 자기 삶을 성찰한 내용들이 흥미를 끌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도 이 방에서 읽었다. 평소에는 이런 책에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방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책을 세 권쯤 읽고 나자, A를 만날 시간이 다가왔다.
A는 모스크바 근교의 작가촌인 페레델키노에 머물고 있다. 그가 차를 가지고 내게 오기로 되어 있었다. 민박집 여주인 이진이 최신 스마트폰으로 내게서 건네받은 A의 연락처에 신호를 보냈다. A의 까칠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나보다 한살 많은 이른바 원로급 러시아 작가이다. 이진과 그가 러시아 말로 잠시 통화를 한 뒤 이진이 스마트폰을 내게 건넸다.
“반갑소.”
“네. 오랜만이군요. 반갑습니다.”
'내일 만납시다. 오늘은 못 가요.”
“?....”
“그럼, 내일.”
“알겠습니다. 내일 만나죠.”
통화는 간단하게 끝났다.
“왜 오늘 못 온다는 거죠?”
내가 이진에게 물었다.
“부인이 팔을 다쳐 병원에 있답니다. 형편이 썩 좋지 않은가 본데요.”
“엘레오노라가?”
카자흐 고려인 출신 부인을 나는 잘 알고 있다. 7년 전 가브리노 다차에 머물 때 그녀는 갖은 음식을 만들어 낯선 손님인 나를 융숭하게 대접했었다. 이후 그들 부부가 서울에 왔을 때 나는 그 보답으로 후배 사업체인 수입화장품 회사에서 독일제 유기농 화장품 세트를 가져다가 부인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A의 한국말은 다섯 살 혹은 여섯 살 정도 유아 수준이다. 그걸 감안해도 그의 싸늘한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이때부터 사실상 A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이 꿈틀대기 시작해서 내가 러시아를 떠나는 시간까지 줄곧 나를 괴롭혔다.
오후에 다시 A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전의 약속을 바꾸어 오늘 내가 자기 처소로 찾아와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는 이진이 받았다. 페레델키노 작가촌이라면 90년대 초 러시아 첫 여행 때 빠스테르나크 기념관을 찾느라고 일단의 동료작가들과 함께 그곳에 갔던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그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그곳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내가 알 길이 없다. 손님인 내가, 더구나 말도 통하지 않는 내가 그곳으로 찾아와야 한다는 요청은 친구의 예의가 아니지 않나.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진을 바라봤다.
“다섯 시까지 모시고 오랍니다. 걱정 마세요. 차오하고 제가 모시고 갈 테니.”
이진에게 그런 의무 같은 건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여전히 친절하고 싹싹했다.
“러시아 오시면 꼭 페레델키노로 오세요. 제가 며칠이고 편히 묵으시도록 해드릴게요.”
서울에서 엘레오노라가 내게 들려줬던 말이다. 그들이 서울을 다녀간 게 삼년 쯤 전인가? 기억이 분명치 않았다. 본래 계획에는 민박집 체류가 끝나는 즉시 리아잔의 가브리노로 떠나야 한다. 페레델키노는 가브리노 이후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순서를 바꿔버린 A의 처사가 미심쩍었지만 그가 하자는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즉시 방으로 가서 꺼내 놓은 몇 가지 의복들을 작은 여행가방 속에 꾸겨 넣고 책상 위에 펼쳐놓은 메모지들을 정리했다. 다시 이 방으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며칠 묵었던 방과의 작별! 이런 때는 언제나 그곳에 자기의 지극히 작은 일부나마 남겨두는 것처럼 허전하다.
“그 할머니의 무덤에 가면 뭐가 있나요?”
“있긴 뭐가 있어요. 아무 것도 없지요.”
“그렇다면 왜 거기까지... 구태여, 거기 유족이 있다면 그냥 여기서 전화나 한통 해주시면 될 걸.”
그 당돌한 청년은 거침없이 내게 자기 생각을 제시했다.
차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후 세시쯤 페레델키노로 가는 동안에 문득 회현동 지하상가 <크림트>에서 만났던 자칭 도서 수집가인 청년의 말이 떠올랐다. <크림트>는 본래 LP 전문점인데 최근 경기가 좋지 않은지 주인이 자기가 그동안 모아두었던 책들을 집에서 가져다가 가게 한쪽에 늘어놓고 묵은 희귀본(稀貴本)을 찾는 손님을 끌고 있었다. 이 가게 주인 김 씨야말로 숨은 도서수집가이다. 나는 전에 한번 동대문 밖 회기동 그의 집에 들렀다가 그의 집 거실과 그가 기거하는 방이 온통 책으로 가득 차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는 또 엄청난 독서광이기도 했다.
“아, 이 선생님 생각은 우리가 알 수가 없죠. 사람마다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니까요.”
내가 고객인 청년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자, 가게 주인이 적당한 말로 그 장면을 얼버무렸다.
“그런가요...? 그렇군요.”
내 반응을 기다리던 호기심 많은 도서수집가가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페레델키노는 생각보다 시내에서 멀지 않았다. 페레델키노란 푯말이 여기저기서 눈에 띠기 시작했다. 그런데 구역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도시 외곽지대는 어디나 숲으로 덮여있는데 페레텔키노는 특히 구역 자체가 거대한 숲이었다.
차오는 네비게이션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종이에 적힌 주소지를 찾느라고 애를 먹었다. 차가 숲속으로 들어온 지 이십여 분이 되었지만 그 주소지를 찾지 못했다. 한 중년남자가 울타리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진이 차를 세우게 하고 그 남자에게 A의 집이 어딘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길을 두 번 돌아가면 바로 지척에 A의 집이 있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A의 집 둘레를 한참동안 빙빙 돌고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