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관절차를 마치고 승객 환송실로 나가자, 작은 팻말을 치켜든 잘생긴 동양청년이 금방 눈에 띠었다. 그런데 팻말에 한글로 적힌 내 이름이 ‘ㅕ’를 ‘ㅑ’로 잘 못 적혀있다. 한글을 처음 써본 사람 글씨처럼 글씨도 서툴렀다. 그래도 식별에는 지장이 없다. 나는 청년에게 다가가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그도 웃어 보이며 얼른 내가 끌고 있는 크지 않은 여행 가방을 내게서 받아갔다. 나는 그때에야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서울-모스크바 간 9시간 5분의 비행, 적지 않게 지루했다. 귀국 시 비행시간은 한 시간 이상 단축되는데 지구의 자전으로 비행 방향이 서로 엇갈려 그런 차이가 난다는 걸 뒤에 민박집 어느 손님에게서 들었다. 다섯 번째 방문인데 처음부터 모르는 민박집에 묵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체류일정을 짤 때 그것은 내가 원한 것이고 나는 초기 며칠 동안만 민박집에 묵기로 했다.
5일이 지나면 A가 나를 데리러 차를 몰고 민박집으로 찾아올 것이다. 그 뒤에는 A와 함께 A의 다차가 있는 랴잔의 가브리노로 가서 일 주일 가량 묵게 된다. 그곳에 니나가 잠들어있는 그녀의 유택도 있다. 가브리노 다차의 체류가 끝나면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와 근교의 페레델키노 작가촌으로 가서 거기 있는 A의 집에서 며칠 보내고 9월 6일부터 시작되는 러시아 작가 미팅에 참여하기 위해 A와 함께 야스나야 팔리아나로 떠난다. 3주 여행인데 대충 이런 일정이었다.
러시아 작가미팅-주최 측은 세계작가 미팅이란 걸개를 걸어놓고 있으나 참가자 대부분이 러시아인으로 실질적으로는 국내행사-은 2005년에도 러시아 여행 중에 우연찮게 참석했고 좋은 경험을 한 바 있으나 이번에는 나 개인으로는 반드시 참석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일정은 A의 희망이고 A가 미리 정한 것이다.
7년만의 러시아 방문이다. 감회도 새롭지만 낯설기는 초행이나 마찬가지다. 먼저 민박집을 찾은 것은 A와 어울리기 전에 거리를 어슬렁거리면서 이곳 공기와 분위기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지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혼자 낯 선 거리를 지향 없이 어슬렁거리는 것은 내가 아주 즐기는 취향이기도 했다.
그러나 첫 걸음부터 나는 암초에 부딪혔다. 공항 밖으로 나가자, 바깥은 완전 초겨울 날씨다. 쌩 ㅡ하고 칼날 같은 찬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반팔 셔츠를 입은 나는 몸을 잔뜩 움추린채 움직일줄 모르고 서있다. 서울의 여름은 얼마나 더웠는가.
<사진> 니나 아니스코바의 무덤. 1934년~2008년.
여름에서 겨울로 갑자기 이동한 셈이다. 경험상 러시아의 8월 하순이 이렇게 추울 수도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무거운 짐 휴대를 극도로 꺼리는 나는 가방 속에 겨우 봄 양복 한벌을 갖고 있을 뿐이다. 내복도 털외투 같은 것도 없다.
여행을 너무 서둘렀나? 좀 더 침착하게 현지 날씨를 확인하고 세심하게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마치 뭔가에 쫓기듯이 여행을 서두른 건 아닌가. 마중 나온 청년을 따라 차를 세워둔 곳까지 백여 미터 가는 중에도 나는 감기의 악신을 피하기 위해 잔뜩 몸을 움츠렸다. 차에 오르자, 그제야 깊은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노브이 체르무쉬끼' -지하철 황색선의 정거장 이름이다. 민박집은 그 부근에 있다. 차를 모는 청년은 별로 말이 없었다. 그는 중국 가요를 계속 듣고 있었다.
“유 차이니즈?“
“예스“
그래. 예감이 그렇더라니. 담배를 피워도 좋은가 하고 물었더니 중국 청년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다. 비행시간 9시간 내내 참던 흡연 욕구다. 그런데 라이터가 없다. 차오(중국 청년)가 도중에 차를 세우고 길가에 있는 끼오스끄로 가서 라이터를 사왔다. 차가 거리에 홍수처럼 밀려오고 밀려간다. 정체도 만만치 않았다. 한 시간 이상 달린 끝에 큰 아파트 촌에 있는 민박집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