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회색선 정거장으로 툴스카야(Tulscaya)가 있다. 깔쪼에서 밖으로 두 번째 정거장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중심가와 가깝다는 얘기다.
깔쪼는 서울의 4대문 안 같은 시내 핵심지역을 둘러싼 지하철 환상선(環狀線)인데 모스크바 지하철 약도를 보면 이 환상선을 중심으로 사방 외곽지역으로 지하철이 뻗어나간 그림을 선명하게 볼 수가 있다. 툴스카야에서 지하철을 타면 불과 십분 만에 이르바트나 트베르스카야 같은 시내 중심지역에 도달할 수가 있다.
그러나 교통이 좋은데 비하면 툴스카야 역 부근 일대는 그다지 번화하지도 않고 후르시초프 시절에 날림으로 지었다는 저층의 낡은 소형 아파트들이 여기저기 두서없이 늘어서 있고 그럴듯한 상점 하나도 찾아보기 어렵다. 서민 주거난을 단숨에 해결하기 위해 날림으로 지었다는 이 상자 같은 소형 아파트에는 후르쇼프까란 불명예스런 별칭이 붙어있다.
2005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석 달 동안 나는 툴스카야의 후르쇼프까를 잠시 빌려 혼자 지냈던 경험이 있다. 그 아파트는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학생이 하기 휴가로 서울에 머무는 동안 내가 아주 싼 임대료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방에는 피아노와 오디오 컴포넌트, 그리고 그 학생이 닮고 싶다고 내게 말했던 바딤 레핀의 음반을 위시해서 하이페츠, 그루미오 등 많은 명인들의 CD 음반들이 그득 쌓여 있었다.
방도 비좁고 4층으로 오르는 구식 엘리베이터는 늘 덜커덩거려서 금방 추락할 것 같았지만 그곳에서 지낸 시간은 내가 정말 오랜만에 누려보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날마다 툴스카야 역 부근, 그리고 서민들의 아파트 촌 부근을 실컷 어슬렁거렸고 오랜만에 바이올린 연주도 실컷 들었다. 그날 이후 툴스카야의 기억들은 내게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툴스카야로 다시 찾아가보자. 7년 전 그 거리 모습이 그 사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고, 그 거리 사람들, 1층의 구둣가게 주인장인 젊은 여성, 옆집 할머니, 그리고 과일 노점상을 하던 대머리 아저씨 등 그들이 여전히 그 거리를 지키고 있는지 살펴보자. 무엇보다 유명한 툴스카야의 비둘기들과 만나는 일이 중요했다.
툴스카야에 비둘기가 많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지하철 역 부근 피자가게 앞마당에는 언제나 수십마리 비둘기들이 떼지어 몰려와서 손님들이 먹다 흘린 피자 조각, 빵조각 등을 부지런히 쪼아 먹는다. 비둘기들은 사람을 전혀 꺼리지 않는다. 인도에도 비둘기들이 사람과 뒤섞여 뒤뚱거리며 걷는 것을 자주 볼 수가 있다. 비둘기는 허공의 전선에도, 나뭇가지에도 진을 치고 앉아 있으며 가끔 나의 초라한 처소에 찾아들기도 했다.
아침에 조반을 마련하러 주방으로 가면 주방 창턱에 비둘기 한마리가 조용히 앉아 쉬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나는 이방인을 찾아준 비둘기에게 너무 고마워서 비둘기와 대화를 몇 차례 시도한 바도 있었다. 국적이 없는 비둘기는 한국말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엉뚱한 기대감을 품었었다.
그러나 대화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인기척을 느낀 비둘기가 허공으로 멀리 날아가 버리곤 했던 것이다.
여행계획을 세울 때 툴스카야 방문은 당연히 중요한 일정이 되었다. 남쪽의 노브이 체르므쉬끼 역 부근에 민박집을 잡은 것도 그곳이 툴스카야와 가깝다는 게 첫째 이유였다.
<사진> 5층 창에서 바라보는 아파트 주변 풍경. 맞은편 2층 건물은 종합미용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이십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 젊은 여성이 현관에서 나를 맞았다.
“저희 집에 오셨으니 이제부터 편히 모실게요.”
“당신이 이진 씨?”
“네. 제가 이진입니다.”
서울에서 통화할 때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민박집의 이 젊은 주인은 조선족 출신 여성이다. 조선족?
처음 그 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이진의 활달한 성격과 싹싹한 말투가 곧 그런 우려를 씻어주었다.
안내 받은 방으로 가서 나는 짐을 내려놓고 차를 마시기 위해 주방으로 나갔다. 주방에는 이미 세 사람의 남자 손님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가 나를 보자, 모두 일어나서 가볍게 인사를 했다. 연장자에 대한 한국식 예의였다. 이 사람들은 벌써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자기네끼리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는 참이었다. 초면의 낯선 사람끼리도 식탁에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식사도 하고 얘기도 나누는 게 민박집의 풍속이다.
“저희는 여기 르노 자동차 회사에 나가고 있습니다.”
셋 중 가운데 앉아있는 사십대 남자가 내게 자기들 직업을 소개했다.
“세 분이 같은가요?”
“네. 분야는 달라도 회사는 같답니다.”
“한국에 있는 르노 차가 여기에도 옵니까?”
“아니, 아직은 안 옵니다. 오더라도 완성차는 안 올 거에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부품을 여기로 보내면 여기서 조립과정을 거쳐 차를 출시하게 되겠지요. 저희는 지금 조립공정을 세우느라고 파견 나와 있는 겁니다.”
이 세 사람은 장기 숙박 손님들이다. 자연스럽게 사람들 시선이 새 손님인 나에게 쏠렸다. 주인 이 진도 조금 떨어진 자리에 의자를 놓고 앉아 나를 물끄러미 지켜봤다. 나이가 마흔은 훌쩍 넘어 보이는, 조금 깐깐한 인상을 주는 르노 차 직원이 내게 불쑥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무슨 일로 여기 러시아에 오셨는지요?”
“아, 저는...”
이런 질문을 예상 못한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적당히 꾸며 대답하면 그만인데 구태여 거짓말을 한다는 것도 우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