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하고 의논 따위 해서 뭘해요. 나 들어가고 싶은 맘 싹 없어졌어요. 어차피 며칠 신세지려고 했더랬는데, 방마저 없다면 가야죠.”
“할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나를 가만 두지 않을 거요. 끌고 오지 않았다고 화내실 거라구요. 당장 들어가기 싫으면 나하고 산보나 하다가 들어가죠.”
“어디루요?”
“답답할 때 내가 가는 곳이 있어요. 난 한 달째 음식을 못 먹었답니다. 말할 힘도 없지만 산보는 할 수 있어요.”
“저런! 뭣 땜에 그렇게 아픈가요? 고민이 많은가요?”
“그런 건 없어요. 신경성인 것 같은데 의사는 그게 아니라고 해요.”
“의사가 뭐라고 했는데요?”
“성애 씨가 알 필요 없어요. 자, 갑시다.”
우리는 논골의 중심지에 있는 큰 길을 따라가다가 마을 한쪽에 있는 거대한 야산의 비탈길 입구까지 다다랐다. 야산에도 가옥들은 있었다. 비탈길이 야산을 기어 올라갔으며, 그 비탈길로부터 수많은 골목들이 뻗어있어 야산 위의 가옥들과 연결되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빛, 그 야산 위의 가옥들을 논골의 큰길에서 올려다보면 틀림없이 그런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그만큼 야산의 가옥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어디까지 가실 건데요?”
비탈 입구에서 성애가 약간 두려운 듯 말했다.
“천당으로.”
“천당이라구요? 천당이 어디 있는데요?”
“저 꼭대기에 있어요. 나만 따라가면 알 수 있어요.”
“거기도 교회당이 있나 보죠? 그런 데로 가실 거예요?”
“교회당 같은 건 없어요. 천당이란 뭐 꼭 하늘에만 있는 건 아니잖소? 지상에도 있을 수 있다구요?”
“배가 고프니까 헛소리가 나오시는가본데, 뭘 좀 먹는 게 좋잖아요?”
“난 먹을 수가 없어요.”
“그럼 우유라도 마시세요. 내게 우유값은 있어요.”
“싫소.”
나는 먼저 비탈길로 올라갔다. 보따리를 옆구리에 끼고 있는 성애가 멈칫거리며 따라 올라왔다. 비탈길 좌우에는 싸전, 잡화점, 라디오 가게, 세탁소 따위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대개 날씨가 차기 때문에 일찍부터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올라갈수록 점점 경사는 심해지고 바람은 기세가 등등했다.
산의 중턱에 다다라서 성애는 숨을 몹시 헐떡거렸다. 거기서 우리는 잠깐 쉬기로 했다. 지나가는 산의 주민들이 우리를 흘끔흘끔 바라보곤 했다. 아마 그들은 젊은 내외 한 쌍이 가까스로 얻은 꼭대기의 방, 자기네의 새 보금자리를 향해 올라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몰랐다.
사실 나도 그런 상상을 해봤다. 만약 저 꼭대기 어느 곳에 우리들의 방이 있고 그리고 성애와 내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 그런 운명도 별로 싫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보았다. 찬바람이 나의 그런 생각을 씻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