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할매는 딸의 방에서 가방이 없어졌던 사실을 발견하고 노발대발했다. 그녀는 매일 딸의 빈 방을 점검했기 때문에 그 사실은 다음날 즉각 발견되었다.

 

“이씨, 그년이 혹시 나 없는 사이에 다녀가는 걸 봤수? 당신은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니까다 알 것 아니우?”

 

“따님이 다녀갔다구요? 난 그런 사실은 전혀 모르는데요”

 

시치미를 떼고 나는 할매로부터 외면했다.

 

“이상하다. 이년이 날개가 있어 날아다녔을 턱도 없는데 말이지. 어느 사이에 다녀갔을까?”

 

“그 가방 속에 무슨 귀중품이라도 들었나요?”

 

“귀중품? 그런 건 없소. 하지만 쓸 만한 겨울옷 몇 가지가 들어있다우. 그대로 있다면 나도 꺼내어 입을 옷이 그 속에 들어 있어. 하긴 그까짓 옷가지보다도 딸년이 그걸 가지러 나타날 테니까 그땐 꼭 붙잡아 두려고 했는데 이젠 영 나타나지 않을 것 아니우?”

 

나를 바라보는 할매의 눈초리가 왠지 매섭다. 설마 나를 의심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몹시 속이 거북했다. 고백해 버릴까? 커피 한 잔에 매수되어 노인 내외를 배신했다고 고백해 버릴까? 그렇게 되면 할매는 나를 당장 쫓아낼 것이다. 식비도 몇 달치씩 밀린 주제에 그런 배신 행위까지 저지른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김유생 노인이라면 어떨까? 그 노인 역시 딸에 관한 일이라면 매우 완강하다. 안 됐지만 나가달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래서 입을 꼭 닫기로 했다.

 

내가 성애와 좀더 친하게 된 것은 나의 위장병이 더욱 악화된 뒤의 일이다. 말하자면 그때 내 위장은 결정적으로 악화되어 있었다. 이건 물론 엑스레이 전문의사의 결론이지 내 결론은 아니다. 나는 한 달 가까이 거의 음식을 먹지 못하고 물이나 우유만 마시고 지내다가 어느 날 엑스레이 전문의를 찾아갔다.

 

음식을 먹지 못하는 생활에도 편리한 점은 있었다. 식비를 몇 달치씩 밀린 뚱보 할매에 대한 죄의식에서 약간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달 동안 거의 그 집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에 뚱보 할매는 식비 재촉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녀가 그 무렵에 기껏 내게 하는 얘기란

 

“어때, 간밤에 먹은 약효험이 좀 있수?”

 

라든가

 

“속이 어지간하면 계란죽이라도 좀 쑤어 드릴까?”

 

기껏해야 이런 정도였다. 뼈다귀만 남은 등신으로 힘겹게 마당을 어슬렁 어슬렁거리는 사내에게 어떻게 식비 재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튼 나는 결단을 내리고 병원으로 찾아가서 의사의 지시대로 상반신을 온통 벗어젖히고 엑스선 촬영기 위에 납짝 엎드렸다. 기계는 비정하고 딱딱했다. 나는 그 기계 위에서 의사의 지시에 따라 여러 가지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거의 삼십 분이나 기계와 씨름한 끝에 촬영기 위에서 내려왔다. 이틀 뒤 내가 병원에 나라났을 때 의사는 부재중이었고, 담당 간호원이 내게 엑스레이 필름과 촬영 기록부가 담긴 큰 봉투를 주었다.

 

“술을 많이 하셨군요? 그렇지요?”

 

나이 지긋한 늙은 간호원이 매우 동정어린 눈초리로 환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뇨. 술 같은 거 많이 마신 일이 없는데요.”

 

“아무튼 위장을 지독히 혹사시킨 것만은 분명해요.”

 

그녀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뭔가 이상한 위험 신호를 직감하고 내가 물었다.

 

“아니, 결과가 아주 나쁜가요?”

 

“난 자세히는 몰라요. 선생님이 거기 써놓았을 거예요. 참, 이것, 선생님이 외과의사에게 소개장을 써 놓았군요. 찾아가 보시래요.”

 

그녀가 명함 한 장을 내게 준다.

 

“찾아가서 뭘 합니까?”

 

명함을 손에 받아들고 엉거주춤 서서 내가 반문했다.

 

“수술 받아야죠.”

 

“수술? 어떤 수술인데요?”

 

“위장 제거, 그 비슷한 수술이겠죠. 빠를수록 좋아요. 거기 보시면 알겠지만 손님은 위장, 십이지장, 모두 최악예요. 그러니 빠를수록 좋지요.”

 

“그럴 리가 없어요. 이 기계가 엉터리든가 다른 사람과 착오를 하셨든가.”

 

“이거 봐요. 기계는 거짓말을 할 줄 몰라요. 착오도 일으키지 않구요. 괜히 망설이구 의심하다 더 큰 걸 잃을 수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