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집 마당을 빠져나왔다. 뚱보 할매가 대문 밖까지 나와서 나를 전송했다.

 

김유생 씨는 생전에 대담을 즐겨하였다. 그 밖에도 끽연과 커피와 산책 따위를 즐겨했다. 산책을 할 때는 언제나 지팡이를 휴대했다. 그리고 그의 일과 중에서 이따금 내 방을 찾아오는 것도 그가 즐기는 일 중의 하나였다. 그는 늘 담배를 충분히 휴대하고 내 방을 찾아왔다. 내가 궐련에 매우 궁핍을 느끼고 있다는 걸 노인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 밖에서 노인은 으레 기침 소리를 한차례 들려 줬다. 그러면 나는 미리 알고서 문을 열고 그를 맞이했다.

 

노인은 방에 앉자마자 안주머니 속에서 담배갑을 꺼내어 내 앞에 던져 놓았다. 피우고 싶거든 마음대로 피우라는 뜻이다. 나는 무례하게도 담배 한 개비를 노인의 담배갑에서 거침없이 꺼내어서 피워 물었다. 노인은 구식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켜준다. 그리고 말했다.

 

“일 잘 되어가요?”

 

그는 질문과 동시에 방의 웃목에 놓여 있는 앉은뱅이 책상 위를 넌지시 바라본다. 나는 버릇처럼 대답 대신 피식 웃고 손바닥으로 목 언저리를 한번 어루만진다. 그래도 노인은 모든 걸 이해하겠다는 표정으로 더 묻지 않았다. 가난뱅이 식객, 식비가 두 달치나 밀려있는 인간에게 공짜 궐련을 제공하고 그의 방을 이따금씩 찾아와서 그에게 사람 대접을 하는 것도 모두 노인의 드높은 식견 때문이다.

 

또 하나 이유가 있었다. 김유생 씨 자신도 사실은 나와 비슷한 한때를 보냈고, 지금도 아내의 하숙업에 생활을 의탁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는 담배값, 커피값, 그리고 이따금 외출할 때 필요한 교통비와 기타 잡비 일체를 뚱보 할매로부터 타서 쓴다. 그래서 수입 없는 사람의 처지를 노인도 잘 알고 있다.

 

그날은 몹시 속상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노인 말을 들으니 성애가 아비에게 한 약속을 어기고 다시 돌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시월 십사일. 그녀는 건넌방을 비우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나타났는데 노인이 무단가출을 엄격히 견책하자 사흘 뒤에 귀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사흘만에 나타난 그녀는 불평만 잔뜩 늘어놓고 다시 나가버렸다. 아내는 단호하게 건넌방에도 손님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고, 이튿날 진짜로 직업 여성 하나로부터 계약금 을 받아서 노인에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방금 그 계약금 때문에 아내와 다툰 것이다.

 

“돈이 좋긴 하지만 방을 비워 두는 게 부모의 도리가 아닌가.”

 

노인이 아내의 소행에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따님이 돌아오리라고 믿나요?”

 

“돌아오긴, 나도 믿지 않아. 바라지도 않고. 그년은 내 자식이 아니야.”

 

“그럼 누구의 자식인가요?”

 

“아내가 데려왔지. 저게 내겐 후처란 말을 언제 내가 했던가?”

 

“아니오. 처음 듣는데요. 왜 후처를 맞아들였죠?”

 

“전처가 죽었다네. 십 년만에 재혼했지.”

 

“그래서 따님이 불평인가요?”

 

“그런 건 아니야. 난 제 친애비보다 제 에미보다 더 잘해줬어. 지금도 내 자식이 아니라곤 생각지 않고 있고.”

 

“따님이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몰라요. 알고 있다면 내가 내버려두겠소? 당장 쫓아가서 다리를 분질러 놓더라도 데려오고 말지. 지금은 내가 무능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걸 애가 알고 있지.”

 

며칠 뒤에 내가 개비 담배를 사러 큰길로 나갔을 때 나는 뜻밖에도 성애를 만났다. 골목길을 빠져나가 계단을 올라가면 큰길이 나오고 바로 라디오 수선가게 옆자리에 두 명의 아줌마가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앉아 있다. 그들이 나의 단골 거래처다.

 

한 사람은 군고구마 화덕을 안고 있고, 한 사람은 삶은 옥수수가 주된 업종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성냥, 개비 담배, 껌 따위를 부업으로 취급하고 있다. 나는 아줌마들로부터 외상거래도 할 수 있을 만큼 얼굴이 익은 처지지만 개비 담배는 언제나 있는 게 아니다. 두 번에 한번은 허탕치게 마련이다.

 

십 원짜리 동전 네 개를 내고 담배 다섯 개비를 받아 쥔 나는 우선 한 개비를 피워 물고 연기를 뿜어내며 큰길을 걸어갔다. 그때 십여 미터 전방에 있는 쌀가게 옆골목으로 웬 여자가 몸을 감췄다. 초록색 스웨터의 빚깔이 선명하게 시야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