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이 어딨어요? 천당을 가르쳐 줘요.”

 

“그래. 곧 가르쳐 주겠소. 걱정 말아요.”

 

나는 집을 떠나기 싫어하는 그녀에게 그 헤픈 농담을 정말 실행해버린 거나 다름 없었다. 그것이 성애에게 마지막 가출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몇 해 뒤의 일이다.

 

김유생 노인이 사무실로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처음 그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몇해 사이에 그만큼 쇠약해 있었다. 노인은 회색 두루마기를 입고 지팡이에 의지하며 사무실에 나타났는데, 콧물이 계속 흘러내려 잠깐 서 있는 사이에도 손수건으로 그걸 닦아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여길 어떻게 아시고 찾아 오셨습니까?”

 

의자를 권한 뒤 내가 묻자 그는 손수건을 꺼내어 흐르는 콧물을 다시 한번 닦아낸 뒤 천천히 대답했다.

 

“전에 당신의 건강이 회복되면 이 빌딩에서 일할 거라고 말한 일이 있었소. 빌딩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여기저기 여남은 군데 빌딩을 찾아 다녔더랬소. 오늘에야 이 앞을 지나가다 빌딩 이름이 생각났지 뭐요.”

 

“아, 그랬었군요. 그래서 빌딩에 들어오셔서 이 방 저 방을 찾아보셨나요?’,

 

“그런 셈이지. 하지만 쉽게 찾아냈지. 여긴 뭘 하는 곳이오?”

 

“집을 짓는 회삽니다. 큰 건물, 작은 건물 할 것 없이 청부를 맡아서 집을 지어 주죠. 커피 한 잔 드시겠습니까?”

 

“아니, 관두시오. 요즘 커피도 담배도 못하고 있다오. 의사가 말렸다니까.”

 

노인은 자신이 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은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당신은 건강이 참 좋아 보이네. 그래, 여기서 이씨가 하는 일은 뭐지?”

 

“설계 도면을 그리지요. 집을 짓는 데는 도면이 꼭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 그때 우리 집에 있을 때도 도면을 그리고 있었소? 난 전혀 몰랐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끝내 한 장도 완성하지 못했어요. 참 따님은 돌아왔겠죠?”

 

그제서야 나는 성애의 일을 물어 봤다. 그 순간 노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가 콧물을 다시 한 차례 닦아낸 뒤 아주 음산한 표정으로 천천히 말했다.

 

“실은 내가 당신을 만나려고 애쓴 이유가 그 애 때문이었소. 그 앤 돌아오지 않았소. 몇 해 될 거요. 이젠 내가 떠날 날이 가까워 오니까 그 애를 집에 찾아다 놓아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어떻소? 성애 있는 데를 이씨도 모르오?”

 

눈자위에 검은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무서운 눈초리로 노인이 나를 쏘아보았다. 그 눈빛은 혐의자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나는 몸이 오싹했다. 등시에 노인의 심중을 재빨리 간파했다. 이 노인은 나를 의심하고 있다.

 

내가 그 방에 있을 때 성애가 가출했고, 그런 뒤 불과 몇 달 뒤에 내가 그곳을 떠났기 때문에 그 두 개의 근접된 사건 사이의 시간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노인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유일한 젊은 남자가 나 한 사람뿐일 수도 있다. 설마 북소리가 들리던 그 야산 꼭대기의 정경을 노인이 알고야 있을라구. 어떤 경우나 노인의 착각이 빚어낸 혐의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 모든 걸 이해한 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저는 따님이 벌써 돌아왔을 줄만 알았지요. 따님 있는 곳을 만약 제가 알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만사 제쳐 두고 따님을 찾아다 드리고 싶군요.”

 

“그게 진심에서 하는 말이오?”

 

“진심이구말구요. 있는 곳만 알 수 있다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아버님께 데려다 드리죠.”

 

“이걸 어떡한다?”

 

노인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난 이씨만 만나 보면 그 애가 있는 곳을 알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더랬소. 이젠 믿을 거라곤 하나도 없다오.”

 

그는 지팡이에 의지하며 일어섰다. 바깥 행길에는 간밤에 내린 눈이 보료처럼 깔려 있었다. 나는 빌딩 현관까지 노인을 배웅했다. 그 때 내가 노인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을 한 마디나마 찾아낼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불행히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뚱보 할매와 헤어진 뒤 논골 거리를 한참 헤매고 걸어다녔다. 백조 다방으로 올라가서 커피도 시켜 마셨고, 개비 담배를 파는 아줌마들의 노점에도 들러서 담배 몇 개비를 사 피우기도 했다. 그리고 저녁 어스름이 되자 판잣집들이 밀집해 있는 야산의 비탈길을 기어 올라갔다.

 

꼭대기에 다다르자 웬일인지 북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부근은 진짜 무덤처럼 을씨년스럽고 적막하기만 했다. 그 사이 무당이 죽어 버렸을까? 정말 스스로 목숨이 다하기 전에는 좀처럼 북소리를 그쳐 주지 않을 것 같던 무당이 아니었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