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봐, 이놈아, 누굴 속이려고 그래? 네놈은 적게 잡아도 징역 일 년이야. 따귀라도 한대 맞고 싶지 않거든 잔말 말고 그 의자 위에 앉아 있어.”

 

경관이 긴 나무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이번엔 경관에게 애원했다.

 

“나를 좀 보세요. 내가 누구와 싸움질을 할 수 있을 것 같소? 난 걸어다닐 힘도 없는 환자예요.”

 

그러나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경관이 경멸하는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저놈 말하는 거 보니깐 상당한 악질이군. 남을 실컷 때려 놓고 저런 소릴 하다니. 이봐, 김순경, 저 자식 신원 좀 샅샅이 조사해 보라구. 전과가 있나 없나.”

 

“그러죠. 일단 오늘밤 지내고 난 뒤 내일 본서로 넘길 테니까 내일 아침에 조사하기로 하죠.”

 

나를 끌고 왔던 경관이 대답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긴 나무 의자에 걸터앉았다. 무릎이 시려오고 상반신이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했다. 왜 저 바보 자식은 자기를 구타한 놈들의 얼굴을 구별해내지 못할까? 저놈은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것일까? 본래 구타당한 놈은 구경꾼에 대해서도 피해 의식을 품게 마련이다. 더구나 논골의 구경꾼들은 그가 맞는 걸 말리지도 않았으니까.

 

나무의자 위에 앉아서 나는 꼬박 밤을 새웠다. 피의자를 이런 식으로 잠재워도 무방한지 알 수 없었지만 다행히 나는 별탈은 없었다. 새벽 공기는 어디서나 맑고 신선했다. 조금 있자, 논골에서 아침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과 일터로 나가는 일당 노동자들의 행렬이 파출소 앞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모두 표정들이 밝고 걸음걸이에 활기가 넘쳤으며 특히 여학생들의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칼라의 청결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논골에 부자라곤 하나도 없어요. 처음부터 가난한 사람들만 들어와서 살거든요.”

 

성애는 이런 말을 했지만 적어도 아침 일찍 이 길을 지나가는 행렬을 보노라면 그런 생각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경관이 숙직실에서 하품을 하며 나타났다. 그는 수건을 목에 걸고 세면장으로 나가더니 세수를 하고 돌아와서 나에게도 생각이 있으면 세면장을 사용해도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자네 연고자가 있나? 있으면 연락을 취해 주지.”

 

경관이 말쑥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아서 내게 첫 질문을 했다.

 

“없어요.”

 

“한 사람도 없어?”

 

“네, 없어요.”

 

“그럼 거주지는 어디야?”

 

“없어요.”

 

“자네 묵비권을 행사할 건가? 내가 어젯밤에 끌고 왔다는 게 그렇게도 화가 나나? 그렇다면 처음부터 나쁜 일을 하지 말았어야지. 자네 연고자도 거주지도 없는걸 보니까 여태 어디 있었는지 그 점이 아주 수상하군. 본서에 연락해 보면 지난달의 출감자 명단을 금방 알아낼 수 있어. 그러니까 언제 출감했는지 사실대로 말해 봐.”

 

“사람을 모욕하지 마쇼. 흑백은 곧 가려질 테니까. 거듭 말하지만 난 구경꾼이었소.”

 

“하하하, 이 친구가 배가 고픈 모양이군. 헛소리를 하게. 뭐 먹을 걸 좀 시켜다 주랴?”

 

“난 먹지 못하오.”

 

“왜 먹지 못해? 언제까지 먹지 않고 버틸 수 있어?”

 

“버틸 수 있어요.”

 
“단식 항의로군. 이봐, 그러지 말고 서로 사이좋게 일을 해결하자구. 본서로 넘어가면 더욱 가혹해져. 여기서 서류를 끝내놓는 게 좋아. 피의자에게 유리해.”

 

그때 간밤에 내게 악질이라고 욕하던 경관이 나타났다. 그가 자리를 지키고 있던 동료에게 물었다.

 

“이 친구 뭐 좀 알아냈소?”

 

“아뇨. 묵비권에다 단식까지 할 모양인데요. 연고자도 없다, 주거도 없다, 식사도 안 하겠다, 그런 식예요.”

 

“왜 식사를 안 하지? 식사는 하고 봐야 될 게 아닌가? 이봐, 친구, 단식 경험이 있어? 공연히 도사님들 흉내 냈다간 큰 코 다친다구. 먹으라고 할 때 먹는 게 몸에 좋을 텐데.”

 

“고맙지만 난 먹을 수가 없어요. 몇 달 동안 위장 장애 때문에 먹지 못해요. 거짓말 아니오.”

 

나는 고참 경찰관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은 둘이서 서로 눈짓하더니 어깨를 으쓱 추켜올렸다. 먹지 않겠다면 관두라는 태도였다.

 

“민주 국가에선 음식을 먹을 자유도 있지만 먹지 않을 자유도 있다네. 굶고 버티겠다면 우린들 뾰족한 수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