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송영의 대표작 중 하나로, 묘하게 연극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주인공과 여주인공 성애의 만남은 러브라인이라고 부르기도 쑥스러울 정도로 밋밋한 줄거리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의외로 연극 <환타스틱>이 보여주는 것 같은 몽환적인 색깔이 풍겨난다. 이 작품은 또한 한국 문학에서 언제부터인가 자취를 감춘, 개인의 자아와 외부 세계의 해소 불가능한 갈등과 모순 때문에 고민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그린 실존주의적 분위기도 풍긴다.
하지만 연극적 분위기와 실존주의적 흐름 어느 것도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도적인 힘은 아니다.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뒤쳐져 살아가는 인간들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가 있고, 그 시대의 흐름과 거기에서 소외된 인간군상의 불화를 신음하는 듯한 북소리가 있다. 예배당과 목사는 그러한 불화의 해소를 위해 어떠한 역할을 하지도 못하고 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가난뱅이"라는 성애의 단정이 의외로 현실과 괴리된 진단일 수 있다는 것을 엉뚱하게 끌려간 파출소에서 맞은 신선한 아침, 길거리를 가득 메운 여고생들의 교복 칼라의 눈부신 하얀색에서 발견한다.
인공이 과연 진정으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논골의 소외와 낙후였을까? 주인공이 결국 발견한 것은 이제 북소리조차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다. 논골이나 거기 사는 인간들의 처절한 목소리 따위는 손가락 하나 정도로 짓눌러버리는 근대화의 물결이 과연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는지, 이 작품은 미해결의 질문으로 남겨두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