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원은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할 수 없이 계단을 내려왔다. 명함에는 모 대학병원 외과 의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가 배를 갈라내고 창자를 도려내는 명수인 모양이었다. 나는 명함을 찢어서 길바닥에 버렸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논골로 돌아왔다.

 

“병원에서 뭐라고 합디까?”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화초에 물을 뿌리고 있던 김유생 노인이 달려와서 물었다. 그도 내가 엑스레이를 찍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답니다. 그저 음식만 조심하면 곧 나을 거래요.”

 

“그럼 그렇겠지. 그건 신경성이야. 당신 병은 위장에 있지 않고 머리에 있어.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오.”

 

노인은 다시 화초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노인은 아주 건강체였다. 사실은 이미 그때 암을 자신의 배 속에 기르고 있었던 게 틀림없지만 그는 끽연과 커피를 제한 없이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나절이 되자 논골 특유의 정적이 나는 갑자기 무서웠다. 지형상 이 마을은 하나의 독립된 분지였다. 높은 고개를 넘어야만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으며, 좀처럼 자동차는 여기까지 넘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저녁 무렵의 논골은 마치 시골의 산골처럼 적막하다. 나는 의사의 선고나 충고를 묵살했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 자체가 지워지는 건 아니었다. 사실을 표면으로 나타내지 않을수록 나 자신 속에서 더욱 그것이 명료하게 살아 있었다.

 

논골의 교회당은 고개마루 턱에 있었다. 블럭으로 세운 이 엉터리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늘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을 연상했다. 그곳은 언제나 사람이 별로 없었다. 드나드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논골의 주민들은 생계유지에 너무 바빠서 신을 찾아갈 짬도 없을 것이다.

 

비어 있는 집에는 동시에 신이 머물지도 않을 것이다. 그 집이 내 눈에 비어 있는 폐가처럼 보인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고개로 올라가서 그 을씨년스런 교회당의 마당으로 들어갔다. 병든 자가 신을 찾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정한 이치다.

 

나는 당돌하게도 그 교회당의 마룻바닥에 앉아서 그날 의사로부터 받은 촬영 기록부에 관해서 얘기할 생각이었다. 마룻바닥은 냉돌처럼 차가왔고, 실내에는 난방 기구 하나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겨우 여남은 명의 교인들이 띄엄띄엄 앉아서 소리 내어 성경을 읽고 있거나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었다.

 

저녁 예배는 예상보다 단조롭고 싱거웠다. 목사인 듯한 중년 여자가 강단 위에서 오랫동안 이 교회당의 부흥에 관해서 설교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교회당에 신도들이 모이지 않는 첫째 이유가 거기 모인 사람들의 믿음이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공박했다. 여남은 명의 신도들이 마치 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그녀의 질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진짜 신의 노여움은 나중에 나타났다. 예배가 다 끝났을 때 나는 어슬렁거리며 바깥으로 나왔다. 그때 내 구두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신발장을 아무리 뒤져봐도 내 구두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교회와 마당을 맨발로 한 바퀴 돌아보았다. 신도들은 모두 떠나고 신발의 행방은 막연하였다. 내가 거기서 그렇게 서성거리고 있을 때 여자 목사가 천천히 현관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로 그러세요?”

 

하얀 안경을 쓰고 있는 목사의 얼굴이 내 눈앞에 가까이 있었다.

 

“구두가 없어졌소.”

 

“뭐라구요? 신발장을 다 찾아봤나요?”

 

“찾아봤어요.”

 

“그럴 이유가 없지. 여기서 도난사고 같은 건 일어난 일이 없는데 마당을 한번 샅샅이 찾아봐요.”

 

“마당에도 없어요.”

 

“그거 이상하군. 다른 신발도 보이지 않소?”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여기 있어요. 이 사람이 교회당에 남아 있는가 알아봐 주세요.”

 

“모두 나갔소. 이 신발 임자는 없어요. 이게 당신 신발 아니오?”

 

“아니오. 내 신발은 검정색 구둡니다. 이 친구가 자기 신발 대신 내 구두를 신고 갔군요. 어떡하죠?”

 

“안됐소. 오늘 여기 처음 나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