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가 말하는 천당이란 뭔데요?”
못내 궁금한 듯 성애가 내게 다시 물었다.
“북소리를 들어 봤소?”
나는 그녀에게 엉뚱한 질문을 했다.
“물론 들어 봤어요. 북소리가 어디서 들린단 말예요?”
“아니, 내 귀에 자꾸 들리는 것 같아 묻는 거요. 난 잠자다가도, 우두커니 방 안에 앉아 있다가도 문득 북소리를 듣거든. 어디 먼 데서 들려오는 것 같았소. 지금도 북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서 물어본 거요.”
“그게 천당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천당이란 뭐예요?”
“그건 가서 봅시다. 난 이 마을로 와서 아프기만 하고 돈벌이도 안되고 그래서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죠. 말하자면 이 마을로 들어오면 누구나 무기력해지고 가난에 젖어 버린다고. 그래서 나도 곧 여길 떠나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아요.”
“그건 처음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살기 때문이죠. 사방을 둘러봐요. 부자는 하나도 없어요. 한 푼도 벌지 않는 우리 집 영감도 이 동네에서는 가난뱅이가 아니에요. 논골을 나가 보면 세상은 만판이에요.”
“성애 씨도 그래서 집을 나갔었소? 아니면 애인을 사귀었나요?”
“애인? 호호호, 애인 있는 년이 밤길에 이렇게 돌아오겠어요? 그런 말은 하지도 마세요.”
“영감님이나 할머니도 그런 의심을 하더구먼. 나도 그렇게 믿어왔고 젊은 여자가 집을 나가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지 않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는.”
“나더러 증거를 보이라는 거예요?”
“아니, 내게 보일 필요는 없소. 난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하지만 부모님에겐 안심시켜 드리는 게 도리일 거요.”
“난 그럴 수는 없어요. 그치들이 안심하건 말건 내겐 상관없으니까. 그래서 나가라면 하루도 신세지고 싶지 않아요.’,
“여긴 아가씨 집이오. 결국 아가씨의 집이 될 곳인데 신세지다니, 신세는 내가 지고 있지요.”
“내가 어디 있다 왔는지 그게 궁금하지요?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렇게 자랑할 만한 곳이 아니니까. 올라가지 않을래요? 더 가기 싫다면 그만 내려가죠.”
“아니오, 갑시다.”
나는 얼른 걷기 시작했다. 중턱에서부터 길은 아주 좁아지고 비탈은 더욱 가파로왔다. 골목 양쪽 날림 가옥들의 벽이 우리 몸을 가둘 듯이 가깝게 다가왔다. 성애는 보따리를 꼭 끼고 헐레벌떡 따라왔다.
높은 지점으로 갈수록 지상의 소리는 멀어졌다. 그 대신 시야는 점점 넓어졌다. 나는 이 길을 비교적 자주 다녔지만 올 때마다 항상 처음 밟는 땅 같았다. 골목에 바짝 붙어 있는 가옥들로부터는 거주인들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바람 때문이었다. 거센 고지대의 바람이 모든 소리를 삼켜 버리고 휩쓸어 가 버렸다.
“천당에 다 왔나요?”
성애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물었다.
“네, 이제 다 왔어요. 너무 서둘지 말고 천천히 올라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