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내가 이 은혜는 틀림없이 갚을께요.”

 

그녀의 말이 뭘 뜻하는지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잠자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여기 커피 한 잔 쥐요.”

 

그녀가 큰소리로 마담에게 말했다.

 

“용케 들키지 않고 다녀오셨네요. 아저씨를 만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허탕칠 뻔했지 뭐예요. 자, 커피 드세요.”

 

실내의 조명에 점점 익숙해지자 내 앞에 앉아 있는 여자의 얼굴 윤곽이 처음으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미인은 아니지만 어딘지 백치의 청결함 같은 것이 엿보여서 누구나 쉽게 탐낼 것 같은 여자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성애의 옷차림은 이 동네에서 공장에 출근하는 여자들의 의상과 그저 비슷비슷하였다. 커피를 맛있게 마신 뒤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영감님이 몹시 화내고 있어요. 왜 집을 나가려고 하는 게죠?”

 

“왜냐구요? 참 답답한 질문을 하시네요. 집이 싫으니까 나가죠. 집도 싫고 영감 할매 모두 싫다구요?”

 

“영감님은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옛날엔 글씨도 쓰시고 그림도 그리셨다죠?”

 

“그런 게 나와 무슨 상관예요? 내가 바라는 건 하루 빨리 영감이 죽어버리는 거예요. 영감이 죽고 나면 집을 팔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나도 가게 하나 차리겠어요. 지금은 영감 때문에 집을 못 팔아요.”

 

“할머니도 반대하실 걸”

 

“할머니는 내가 구워삶을 수 있어요.”

 

“아버지를 증오하나?”

 

“증오라구요? 난 그런 건 몰라요.”

 

“그렇다면 아버님 생각이 옳다는 것도 알 수 있을 텐데, 아버님은 따님이 옳게 살기를 바랄 뿐 뭐 다른 생각이 있겠어요?”

 

“옳게 사는 게 뭔데요? 참 딱한 말씀만 하시네. 영감님은 그게 뭐 옳게 사는 건가요. 그 양반은 평생 한 푼도 벌지 않았다오. 난 엄마한테서 들었어요.”

 

“설마, 그럼 이 집은 어떻게 생겼소?”

 

“사실예요. 엄마가 뭐 거짓말을 했을까봐. 집은 모르겠어요. 아마 물려받은 유산 찌꺼기, 그쯤 되겠죠. 아니, 엄마가 손님 밥 해주고 모은 돈으로 마련했을지도 몰라요. 영감은 한푼도 가져오는 걸 못 봤으니까. 나 바빠서 갈래요. 그럼 또 봐요.”

 

성애는 갑자기 일어나서 가방을 들고 다방을 나가 버렸다. 변변하게 작별 인사도 나눌 겨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