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는 치마폭으로 눈을 훔친다. 내 앞에서 처음으로 슬픔을 보인 셈인데, 나는 웬일인지 그녀가 한번 슬픈 척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유생 노인이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이곳으로 찾아오면서 이미 그 가능성을 십분 예감했던 것 이다. 그렇다곤 하지만 막상 그의 자취마저 이 집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하자 집안이 더욱 적막하고 텅 비어 버린 것 같았다.

 

“저 건너편 방은 누가 쓰고 있죠?”

 

나는 담장 옆에 바짝 붙어있는 방을 손으로 가리켰다. 담벽에서 흘러내린 담장이 덩굴이 그 방문 앞까지 뻗어나와 이마를 맞대고 있다. 이십여 가지 화초를 가꾼 것도 담벽의 담장이 덩굴을 무성하게 살린 것도 모두 김유생 노인의 꼼꼼한 성품이었다.

 

“건넌방엔 여학생이 묵고 있다오. 대학생이라는데, 학교에 나가는 날이 며칠 안 되니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애랍니다.”

 

할매는 금방 하숙집 아줌마의 냉랭한 표정으로 돌아가 그 방을 흘겨봤다.

 

“따님은 여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나요?”

 

“아니, 성애를 어떻게 알지? 이씨가 우리 딸자식을 만나봤던가?”

 

“알고 있죠. 그때도 집을 나가 있었지만 가끔씩 나타나곤 했죠. 하지만 이젠 어머님을 혼자 사시게 버려둘 수는 없을 텐데, 왜 돌아오지 않을까요?”

 

“아이구, 그년 얘길랑 하지도 마슈. 내 오장육부까지 다 뒤집어지고 쓰리고 아프기만 하니깐 말이우.”

 

“가끔 집에는 나타납니까?”

 

“오긴 와요. 그런데 내 말은 듣지 않아요. 돌아와서 이젠 에미하고 함께 살자고 해도 막무가내예요. 이걸 어떡하면 좋수?”

 

“따님이 어디 사는지 아십니까?”

 

“왜, 한번 만나 보실래유? 내가 집 주소를 가르쳐 드릴까?”

 

“가르쳐 주세요.”

 

“만나서 무슨 얘길 하려구?”

 

“어머님 옆으로 돌아와서 살라고 말하죠.”

 

“아이구, 이씨가 그렇게만 해 준다면 이런 고마울 데가 또 어디 있겠수. 자, 내가 들어가서 쪽지를 가져 오리다.”

 

할매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제안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할매가 곧 나타나서 종이쪽지 하나를 내 앞에서 펴 보였는데, 거기엔 연필로 몇 개의 숫자와 동네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염리동 439의 245, 장봉래 씨 방 그뿐이다. 그밖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따님이 이걸 적어 드렸나요?”

 

“아니오. 내가 훔쳤소. 그년이 잠깐 자릴 비운 사이에 가방 속에서 내가 빼돌렸지. 에미에겐 절대로 저 있는 곳을 가리켜 주지 않으니깐.”

 

“그럼, 이게 따님 주소가 아닐 수도 있지요. 어떤 친구나 물건을 맡긴 가게 주소일지도 몰라요.”

 

“그게 그년 주소일 거요. 거기 가면 틀림없이 그년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믿는데.”

 

“알았습니다. 그럼 제가 한번 찾아보도록 하죠. 참고로 알고 싶은데 따님은 지금 무얼 합니까?”

 

“내가 무얼 하는지 알고 있다면 이러고 있겠소? 난 그 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벌써 나타나지 않은 지가 반년이 넘었소. 그러니 난들 그 애가 무얼하는지 알 택이 없지.”

 

“반년씩이나?”

 

“그래요, 반년. 이 늙은이가 뭘 해먹고 사는지 그 애는 관심도 없다오.”

 

“알았어요. 그럼 다시 찾아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