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정상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꼭대기에는 주민들의 물탱크가 있다. 백색의 거대한 물탱크가 정상의 표지였다. 그것은 밑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그 주변에는 철조망이 가설되어 있고 약간의 공지도 있었다.
빈터를 나는 오락가락 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때 북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바람결에 휩쓸려서 그 소리는 매우 약했지만 점점 박자가 빨라지면서 소리도 크게 들렸다. 그것은 근처의 어느 무당집에서 들려오는 북소리였다. 그 무당은 언제나 북을 두드렸다. 그녀는 잠시도 쉬지 않고 겨울이나 봄이나 낮이나 밤이나 아주 끈기 있게 맹렬하게 북을 두드렸다.
“이 쪽으로 와 봐요. 북소리가 들려요.”
성애는 내 옆으로 뛰어왔다.
“어마나! 정말 들리네요. 이것이 아까 아저씨가 말했던 북소리군요. 하지만 이상해. 여기서 치는 북소리가 어떻게 그곳까지 들릴까요? 아저씨는 방금 아저씨 방에서도 북소릴 들었다고 했지 않아요. 그게 참말예요?”
“정말이오. 멀리서도 들리는 것 같았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건 거짓말이에요. 그럴 수가 없어요.”
“아니오. 북소리는 멀리까지 울려요, 때때로.”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울린다? 그건 그럴 듯해요. 이씨는 여기 자주 왔었나 보군요. 그래서 북소리를 자주 들었지요?”
“맞아요.”
“왜 이런 곳에 자주 왔나요?”
“나도 모르겠어요.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먹을 수 없으면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어요. 그리고 저 북소리, 저걸 듣고 싶기도 하구요.”
북소리는 맹렬하게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다.
“북소리를 들으면 힘이 나곤 해요. 뭔가 미지의 세계로 달려가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죠. 미지의 세계, 멋진 세계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여길 올라오면 그걸 느끼죠. 난 언젠가 여길 떠나서 멋진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어머나, 이씨는 어린애 같은 말도 곧잘 하네요. 저건 무당의 북소린데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는 거예요? 난 무섭기만 한 걸요. 깜깜한 데서 저 소릴 들으니까 갑자기 무서워요. 빨리 내려가요, 우리.”
“집으로 들어갈 거죠?”
“할 수 없죠 뭐.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그러니까 천당은 가짜로군요.”
“아니오. 여기서 추위를 참고 오래 기다릴 수 있어야만 천당을 보게 됩니다.”
“호호호, 당신 거짓말장이, 대단한 사기꾼이로군요. 어째서 이씨가 돈벌이도 못하고 여기서 썩고 있는지 그 이유를 이체야 알겠어요. 이제부터 이씨를 상대하지 않기로 했어요. 지독한 거짓말쟁이.”
“좋아요. 날 사기꾼 취급해도 좋아요. 나도 곧 당신네 집에서 나갈 거니까.”
우리는 비탈길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도중에 성애는 화가 났는지 한마디도 지껄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기분이 약간 밝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의사의 기록부 따위는 이제 머릿속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하나님의 냉대조차 나는 까마득히 잊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