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애에게 방을 얻어 주겠다고 장담한 사실이 있다. 그렇지만 성애는 그 일을 추궁하지 않았다. 나는 결코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닌데, 처음부터 그녀는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내 바지 호주머니에는 현금 삼천 원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지만, 이건 성애와의 약속을 이행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돈이었다. 나는 그 돈을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줘 버릴까하다가 그녀가 필경 거절할 것 같아서 그냥 다방을 나와버렸다.

 

하루가 재빨리 지나갔다. 나는 성애가 언제 대문을 몰래 빠져 나갈지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저녁 어스름이 다가올 때까지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김씨라는 사내가 두렵다고 내게 말한 건 그녀의 속임수였을까. 아니면 차마 노인 내외 옆을 떠나기가 괴로워서 작별의 시간을 자꾸만 유예하고 있을까? 나는 그녀의 속셈을 몰랐다.

 

밤이 다가오자 공연히 내 마음이 불안하고 조바심쳤다. 그래서 나는 문 밖으로 뛰쳐나와 논골의 큰길을 천천히 오락가락하였다. 이맘때면 일당 노동자들이 드문드문 이 길을 지나가곤 했다. 어떤 때는 만취해서 큰소리로 가요를 열창하며 걸어갔고 어떤 자는 집에서 기다리는 아녀자에게 가져다 줄 선물을 흥정하려고 과일 가게, 빵가게 그리고 노점 따위를 기웃거리며 거리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거리는 여전히 어둑어둑해서 다가오는 사람의 얼굴을 분간하는 건 전혀 불가능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어두운 길목에서 나는 어떤 사내의 얼굴을 알아봤던 것이다. 아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판단이고 사실은 내가 허깨비를 봤거나 엉뚱한 사람을 그 사내로 오해했을지도 몰랐다. 그 사내는 쌀가게 앞에 서서 담뱃불을 붙이고 난 뒤 곧장 내 앞으로 걸어왔는데, 공교롭게도 쌀가게의 불빛이 잠깐 그의 얼굴을 비쳤던 것이다.

 

“바로 그 자다!”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외치고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짧은 고수머리, 검붉은 피부빛깔, 뭔가 증오하고 있는 듯한 고약한 눈초리, 내가 기억하고 보았던 건 그런 몇 가지 특징이었지만 나는 그가 바로 성애가 말하는 김씨라고 단정해 버렸다. 그 사내는 무심히 나와 엇갈려 지나갔다.

 

하루 먼저 이 거리에 그가 나타났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성애도 하루 먼저 행동하는 걸 생각해냈기 때문이다. 나는 곧장 집으로 달려왔다. 성애가 때마침 마루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내가 손짓으로 부르자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 녀석이 나타났어.”

 

나는 숨올 죽이고 재빨리 속삭였다.

 

“그 녀석이 누구예요?”

 

“그 녀석, 김씨 말이오.”

 

“어디 있어요?”

 

“길거리에 있어.”

 

“틀림없어요? 그 녀석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죠?”

 

나는 답변이 궁했다. 내가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는 건 내 생각이라기보다 내 육감에 더 많이 의존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그렇게 말할 겨를이 없었다.

 

“틀림없소. 다방에서 봤지 않소?”

 

“그렇군요. 알았어요.”

 

성애는 내 말에 재빨리 승복하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녀가 그다지 쉽게 승복한 건 두려움 탓이었을 것이다. 불과 사오 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성애가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손에 조그만 보따리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지난번 고개를 넘어올 때 들고 왔던 그 보따리였다.

 

“부모님은 알고 계시오?”

 

“몰래 나왔어요. 영감은 자고 있고 할매는 부엌에 있어요. 그런데 어떡하죠? 그 녀석이 행길에 버티고 있다면 어디로 빠져나가죠?”

 

“내가 길을 알고 있소. 감쪽같이 빠지는 길을 알고 있다구요. 나를 따라와요.”

 

나는 벌써 문 밖으로 나섰다.

 

“어느 쪽이에요?”

 

뒤따라 나오며 성애가 겁먹은 소리로 물었다.

 

“저 쪽이오.”

 

나는 판자집들이 밀집해 있는 야산 꼭대기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 곳은 내가 천당이 있노라고 그녀에게 거짓말했던 바로 그 방향이었다. 나는 앞장서서 두더지처럼 상반신을 엎드리고 골목을 기어가다가 계단이 있는 지점에서 바로 왼편으로 꺾어서 다시 기어갔다.

 

다른 때 같으면 계단을 올라가서 큰길로 나가겠지만 지금 큰길에는 성애가 지상에서 가장 기피하는 인간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그 길로 갈 수가 없었다. 골목으로 한참 기어가던 우리는 이윽고 야산의 발 목 근처까지 와서 행길을 훌쩍 건너뛰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그 녀석이 우리를 발견한다는 건 그야말로 천우신조가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 이제부턴 산이니까 맘을 폭 놓아요. 악마라도 이 코스는 알아내지 못할 거요.”

 

비탈을 천천히 올라가며 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천당으로 가는군요.”

 

성애도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꼭대기로 올라가서 다음에는 어디로 빠지죠? 다시 내려와야 한다면 공연히 헛수고하는 거 아니에요?”

 

“다시 내려오지 않아도 돼요. 이 길로는 말이오.”

 

“그럼 어느 길로?”

 

“꼭대기로 올라가서 내가 가르쳐줄 거요.”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야산 중턱을 지나자 길이 더욱 좁아지고 비탈의 경사가 심해갔다. 중턱을 지나면서부터는 가게의 불빛도 사라졌기 때문에 눈앞이 완전히 캄캄했다. 그래도 우리가 방향을 잃지 않은 건 이 길을 자주 지나갔던 나의 육감 덕분이었다.

 

고지로 오를수록 바람이 더욱 심해졌고 숨이 가빠 걸음을 빨리 옮길 수가 없었다. 성애는 거의 필사적으로 내 뒤에 바싹 붙어서 따라왔다. 우리는 거의 산의 정상에 다가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가 예상했듯이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 오를 때마다 북소리를 듣지 않은 때가 없고 보면, 그 무당은 밤낮없이 이십사 시간 동안 북을 두드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북소리는 일정하고 빠른 박자로 맹렬하게 울렸으며, 우리가 산꼭대기에 접근할수록 점점 가까이서 크게 들렸다.

 

“지독한 무당이네. 이렇게 추운 밤에 무슨 청승일까? 귀신 부르느라고 저러는 걸까요? 그렇지 않아도 여긴 귀신 나오게 생겼는데.”

 

성애가 옆으로 바싹 다가서며 투덜거렸다.

 

“종일 북을 치나 보죠? 저 소리가 그칠 때는 언젤까요?”

 

“무당이 죽을 때겠죠. 살아있는 동안은 북치는 게 자기 사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지 몰라요.”

 

“무당은 잠도 안 자나? 미친 사람이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뭣보다 이 논골에는 저 북소리만큼 어울리는 소리가 없어요. 예배당 종소리나 술꾼들의 노래 소리보다 백 곱절 더 어울려요. 왜냐구요?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봐요. 뭔가 독에 빠진 인간들의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반대로 진짜 미친 사람들의 혼을 달래는 소리 같기도 하죠. 그렇게 들리지 않아요?”

 

“아저씨도 미친 거로군요. 난 무섭기만 해요. 캄캄한 데서 들으니 까 더욱 무섭네요. 북소리가 저렇게 겁주는 소린 줄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거 봐요. 아가씨도 북소리에 떨고 있는 걸 좀 보라구. 내 말이 맞았나 틀렸나.”

 

“그보다 난 어디로 갈까요? 우리가 왔던 길로는 다시 내려가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내가 깜박 길을 가르쳐 준다는 걸 잊었군. 이쪽으로 와 봐요.”

 

나는 성애를 우리가 올라왔던 반대쪽으로 데리고 갔다. 눈앞은 어두웠지만 멀리 발 아래 불빛이 보였다.

 

“여기 길이 있어요. 전에 내가 두어 차례 내려가 본 일이 있다구요. 이쪽으로 곧장 내려가면 큰길이 나올 거요. 알겠소?”

 

“아이, 캄캄해라. 여기서 돌아가시겠어요?”

 

“난 돌아가야죠. 그까짓 김가 녀석 마주쳐도 난 겁날 것 없으니까요. 혼자 갈 수 있겠소?”

 

“걱정 없어요. 그럼 빨리 건강을 회복하세요. 그리고 논골에서도 떠나시구.”

 

“고맙소. 잘 가요.”

 

그러나 나는 돌아서다 말고 다시 그녀 쪽으로 다가섰다. 성애에게 주기 위해 마련했던 돈이 아직 고스란히 내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다는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거 받아요. 삼천 원일 거요.”

 

성애는 내 손을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이게 무슨 돈이에요? 내가 아저씨께 꾸어준 돈이 있나요?”

 

“그날 파출소에 끌려갔던 날 전당포에 맡겼던 시계를 아주 팔아넘겼소. 내 딴엔 약속을 지키려고 말이오. 몇 푼 안 되는 돈이지만 받아 두시오.”

 

“싫어요. 나 비상금은 있다구요. 빚을 지면 두고두고 괴로와요. 아저씨 약값이나 하세요.”

 

“받지 않으면 여기다 버리겠소. 내가 아가씨 빚을 썼다고 생각하면 그만 아니오?”

 

나는 돈을 그녀의 손아귀에 억지로 쥐어주고 재빨리 그녀로부터 달아났다. 정신없이 비탈길을 나는 달려 내려왔다. 북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았다. 물론 성애는 하는 수 없이 돈을 받아들고 나와는 반대로 비탈을 내려갔을 것이었다.

 

성애가 떠난 뒤 이튿날부터 나는 예기치 못했던 고민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날 김씨라는 작자는 거리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논골에 나타났다면 성애네 집 대문을 두드리지 않았을 까닭이 없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놈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일단 논골에 와서 녀석이 이 집을 찾아낼 생각만 있다면 그건 시간 문제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가란 놈은 종일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성애가 떠난 날 내가 행길에서 목격한 인간이 가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 가 허깨비를 보았거나 가짜를 보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나의 작은 실수 때문에 성애는 가출을 서둘러 단행했다는 얘기가 된다. 나야말로 그녀 말마따나 미친 녀석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