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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혼자 앉아 있었다. 윌슨에게, 혼자서 가서 사자를 해치우고 오라고 말할 만한 용기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는 지금 자기가 보이고 있는 태도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칠지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윌슨이 자기 아내에게 갈 때도 화가 난 상태였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조금 앉아 있자, 윌슨이 돌아왔다. "더 큰 총을 가져 왔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이걸 쓰세요. 이제 사자에겐 충분히 시간을 줬습니다. 자, 어서 일어나서 가봅시다."
매코머는 커다란 총을 손에 들었다. 윌슨이 말했다.
"제 뒤를 따라오세요. 오른쪽 뒤로 오 야드쯤 떨어져서 따라오는 겁니다. 뭐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윌슨은 울상을 하고 있는 두 명의 흑인 운반인에게 스와힐리 말로 뭐라고 지시했다.
"어서 갑시다." 그는 재촉했다.
"물 한 모금만 마시면 좋겠는데..." 매코머는 말했다. 윌슨은 허리에 물병을 차고 있는 나이 먹은 흑인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 흑인이 물병을 풀어 마개를 열고 매코머에게 주었다. 매코머는 물병이 무척 무거울 거라고 생각하면서 받았다. 그러나 펠트로 만든 커버가 생각보다 털이 무척 많고, 손에 쥔 촉감도 아주 좋았다.
매코머는 물을 마시려고 물병에 입을 댔으나 그 시선은 앞쪽의 무성한 수풀을 향하고 있었다. 수풀 뒤에 키가 고른 나무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와 수풀이 가볍게 물결치며 흔들렸다. 그는 엽총 운반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으로도 엽총 운반인들 역시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숲속 한 삼십 오 야드 가량 들어간 곳에 아까 그 사자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사자는 두 귀를 뒤로 젖히고, 길고 검은 털이 수북한 꼬리만 위아래로 약간씩 흔들 뿐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사자는 이 절대절명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바로 이 장소에 숨었던 것이다. 커다란 배는 총알에 맞아 격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허파 역시 총알이 꿰뚫어 기운도 거의 빠진 상태였다.
허파를 꿰뚫은 총알 때문에 숨을 내쉴 때마다 입에서 거품이 섞인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피에 젖은 양 옆구리는 뜨겁고, 또 아팠다. 총알 구멍이 뚫린 황갈색 가죽에는 벌써 파리 떼가 달라붙고 있었다. 노랗고 커다란 두 눈이 증오에 불타고 있었다. 사자는 그렇게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은 숨쉴 때마다 깜박거렸다. 고통 때문이었다.
사자의 날카로운 발톱은 햇빛에 달아오른 부드러운 흙을 힘껏 긁어대고 있었다. 사자의 모든 힘, 상처와 고통과 증오, 그리고 사자의 몸에 남아 있는 모든 힘이 한 곳에 모이고 있었다. 뛰어나가 돌격하는, 그 하나의 목표에 모여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수풀 속으로 들어오자 사자는 뛰쳐나갈 준비에 온 힘을 다 기울였다. 그리고 기다렸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사자는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수풀 끝에 이르자 사자는 기침하는 것 같은 신음 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돌진해 왔다.
나이 많은 엽총 운반인 콩고니는 핏자국을 따라가면서 앞장서고 윌슨은 큰 총을 겨누고 풀이 조금이라도 움직이지 않는지 살피고 있었다. 또 다른 운반인은 귀를 기울이며 똑바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매코머는 총을 겨누고 윌슨 곁에 붙어 있었다.
이렇게 그들이 수풀 속으로 막 들어서는 찰라, 매코머는 목구멍이 피에 꽉 찬 것 같은, 사자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사자는 벼락처럼 수풀 속을 돌진해오고 있었다. 앗! 하는 순간, 그는 벌써 미친 것처럼 도망치고 있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공포였다. 그는 넓은 풀밭, 그리고 냇물이 있는 쪽을 향하여 미치광이처럼 마구 달렸던 것이다.
그는 윌슨의 커다란 총이 꽝!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또 다시 꽈광! 하는 두 번째 총알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뒤를 돌아보니 사자의 무서운 모습이 보였다. 머리통이 거의 절반은 날라간 듯한 처참한 모습이었다. 사자는 그러면서도 무성한 수풀 사이를 기어 우뚝 서 있는 윌슨을 향해 오고 있었다. 또 다시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불이 뿜었다.
기어오던 사자의 누런 몸뚱이가 뻣뻣해지며 축 늘어졌다. 총알에 부숴진 커다란 머리통이 앞으로 푹 숙여졌다. 매코머는 사자가 죽는 것을 보았다. 그는 도망쳐 나온 빈 터에 혼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손에는 총알이 든 총을 아직 들고 있었다. 그를 뒤돌아보는 두 명의 흑인과 한 명의 백인... 그들의 눈에는 업신여기는, 경멸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윌슨에게 다가갔다. 키가 껑충한 그의 몸 전체가 노골적으로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자 윌슨이 그를 보고 물었다.
"사진이라도 찍겠습니까?"
"아니오..."
매코머의 아내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도 아내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뒷좌석 아내 옆에 나란히 앉았고, 윌슨이 앞 자리에 앉았다. 그는 아내의 옆으로 다가 앉았다. 아내를 쳐다보지 않고, 아내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아내는 슬그머니 손을 빼냈다.
냇물 저편에서 엽총 운반인들이 사자의 가죽을 벗기는 것이 훤히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내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장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차를 타고 오는 도중에 아내는 앞으로 다가 앉더니 윌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가 뒤돌아보자 아내는 낮은 의자 너머로 몸을 굽히더니 그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어어, 이거 참..." 윌슨은 놀라서 얼굴을 붉혔다. 그 얼굴이 햇볕에 그을린 그의 보통 때 얼굴보다 훨씬 더 붉어졌다.
"로버트 윌슨 씨." 그녀가 말했다. "얼굴이 붉은 우리 미남자, 로버트 윌슨 씨."
여자는 그러고 나서 다시 매코머 옆에 앉아 개울 건너 사자가 놓여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사자는 거기 앞다리를 쳐들고 누워 있었다. 흑인들이 가죽을 벗겨 사자의 커다란 배가 하얗게 드러나고 있었다. 마침내 흑인들이 축축하게 젖은, 무거운 가죽을 둘둘 말아 가져와 자동차 뒤에 탔다. 캠프에 돌아올 때까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이상이 바로 사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매코머는 그 사자가 맹렬하게 달려올 때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또 505구경 총알의 초속 2톤의 충격을 받은 정통으로 얻어맞은 기분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뿐 아니라 허리 근처에 두 번째 충격을 받고도 자기를 파멸시킨 그 무서운 물건을 향해 기어오게 만든 그 힘이 무엇인지도 전혀 알 바 아니었다.
윌슨은 그런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만 그러한 것을 "대단한 사자입니다"라는 말로 표현할 뿐이었다. 그러나 매코머는 윌슨이 이런 일에 대해서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만 아내가 자기를 무척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그밖에는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실망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전에는 그런 것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는 굉장한 부자였고, 앞으로는 더욱 큰 부자가 될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아내가 이번에도 자기를 버리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만이... 그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몇 가지 사실 중의 하나였다.
그밖에도 그는 우선 오토바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동차와 오리 사냥과 숭어나 연어 또는 바다의 커다란 물고기 낚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책에 나와 있는 섹스에 대해서도 그는 알고 있었다. 많은 책... 너무나 많은 책에서 그는 섹스에 관한 지식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 테니스에 대해서도, 개에 관해서, 말에 대해서도 약간, 돈 버는 일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의 세계와 관련된 기타 여러 가지 일들... 그리고 아내가 자기를 아주 버리지는 않으리라는 것, 대충 이런 것들에 대해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아내는 한때 굉장한 미인이었고, 지금도 아프리카 같은 데서 보면 굉장한 미인이었다. 그러나 본국에 돌아가면, 그를 버리고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미인은 아니었다. 그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그를 떠나 버릴 기회를 놓쳐 버렸던 것이다. 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여자를 다루는 솜씨가 좀더 능숙했다면, 그녀는 아마 그에게 무척 앙탈을 부렸을 것이다. 그가 혹시라도 보다 아름다운 여자를 손에 넣지나 않을까, 두려워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 대해서 구석구석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언제나 관대한 편이었다. 만약 그에게 그처럼 추악한 점이 없었다면 아마 그의 성격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장점으로 무척 돋보였을, 그런 특징이었다.
그들 부부는 금슬이 좋은 것으로, 대체로 행복하게 지내는 것으로 주위에 알려져 있었다. 물론 가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헤어지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는 했다. 그렇다고 그런 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신문의 사교계 담당 기자가 기사로 쓴 것처럼 그들은 암흑의 아프리카의 사냥 여행을 떠나는, 남들의 선망의 대상인 셈이었다.
이것은 그들의 계속되는 로맨스에 흔해빠진 모험의 분위기 이상의 것을 불어넣고 있었다. 마틴 존슨 부부의 사냥 여행은 많은 영화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그들은 '심바(사자)' '물소' '뎁보(코끼리)' 등을 쫓아 다녔으며, 그리고 그러한 수집품들은 나중에 박물관의 표본으로 전시되어 세상에서 더욱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들의 사냥 여행은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동떨어진 오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매코머 부부의 사냥 여행에 대해서 기사를 쓴 기자는 이들 부부가 과거에 적어도 세 번 이상 헤어질 뻔했으며, 이번에도 역시 그런 상태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그런 위기를 벗어났다. 그들은 반드시 함께 결합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매코머가 이혼을 하기에는 마고트는 너무 아름다웠다. 마고트가 매코머를 영영 차버리기에는 매코머는 너무 부자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