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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 벌어진 몇 그루 아카시아나무 그늘에 캠프가 있었다. 그들은 그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아카시아나무 뒤에는 바위가 드러난 낭떠러지가 있었다. 그 앞으로는 풀밭이 돌멩이 투성이인 냇물 언덕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건너에 숲이 보였다.심부름꾼들이 점심 식탁을 차리는 동안 두 사나이는 마주 앉아 차가운 라임주를 마시면서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윌슨은 심부름꾼들도 그 사건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매코머의 시중을 드는 심부름꾼이 테이블에 접시를 늘어 놓으며 호기심에 찬 눈초리로 주인을 살폈다. 윌슨은 그걸 보고 스와힐리 말로 심부름꾼을 나무랐다. 심부름꾼은 무표정한 얼굴을 외면하고 가버렸다.
"뭐라고 그런 거요?" 매코머가 물었다.
"별 것 아니오.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열 몇 대 후려갈기겠다고 했지요."
"그게 무슨 말이지? 매질을 한다는 거요?"
"불법이지요." 윌슨이 말했다. "당신이라면 매를 드는 대신 토인들에게 벌금을 물리겠지만..."
"당신은 아직 토인들을 때린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토인들도 정 불만이면 온통 난리법석을 떨겠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녀석들은 벌금을 내느니 차라리 매를 맞는 걸 더 좋아하지요."
"거 참 이상하군." 매코머가 말했다.
"전혀 이상할 것 없어요." 윌슨이 말했다.
"당신 같으면 어느쪽을 고르겠소? 매를 맞겠소, 아님 돈을 덜 받겠소?"
그런 질문을 던져놓고도 어쩐지 기분이 거북했다. 그래서 그는 매코머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사실 어떤 점에서는 우리도 매일 못 볼 꼴을 보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이것도 역시 이상하다. '빌어먹을...' 그는 생각했다. '내가 무슨 중재자라고 나서는 꼴 아닌가.'
"그렇지, 우리도 실상 못 볼 꼴을 보는 셈이지." 매코머는 여전히 그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말했다.
"나는 그놈의 사자 사건 때문에 정말 미치겠어. 설마 소문이 더 이상 퍼지지는 않겠지? 누구 다른 사람 귀에 그 얘기가 들어가는 것 아닐까?"
"내가 마사이까 클럽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까 봐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요?" 윌슨은 쌀쌀하게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렇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이 작자는 굉장한 겁쟁이일 뿐만 아니라 또 체면치레도 대단한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사실 오늘까지도 나는 이 친구에게 오히려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 미국 친구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
"말도 안됩니다." 윌슨은 말을 이었다. "나는 직업 사냥꾼이오. 손님의 일을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소문을 퍼뜨리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훌륭한 태도는 못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터는 게 더 좋을 거라고 그는 판단했다. 그렇게 되면 혼자서 식사를 할 것이다. 식사하면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들은 그들끼리 따로 식사를 하겠지. 그리고 사냥 여행 동안 서로 매우 형식적인 격식을 차리며 대하게 될 것이다.
이런 형식적인 격식을 프랑스 사람들은 뭐라고 부르지? 품위 있는 배려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무튼 서로 그런 격식만을 차리게 될 것이고, 차라리 그 편이 이 따위 감정적인 헛소리를 꾹 참는 것보다는 뱃속 편할 것이다.이 친구에게 욕이나 퍼부어주고 깨끗이 헤어지는 거다.
그러면 식사를 하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고, 게다가 이 작자들의 위스키는 위스키대로 계속 마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사냥 여행이 뭔가 틀어졌을 때 사냥꾼들끼리 쓰는 표현이었다. 다른 백인 사냥꾼을 만났을 때 "어때요?" 하고 묻는다 치자. 상대방이 "아, 이 놈들의 위스키는 여전히 마시고 있지"하고 대답하면 그건 그 여행이 엉망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정말 미안하오." 매코머는 이렇게 말하면서 윌슨을 바라보았다. 중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그 얼굴에는 여전히 앳된 구석이 남아 있었다. 윌슨은 매코머를 다시 바라보았다. 매코머는 뱃사람처럼 머리를 올려 깎고 작은 눈은 뱃심은 없지만 영리해 보였다. 코 모양도 좋고, 입술이 얇고, 턱도 보기가 좋았다.
"정말 미안하고. 미처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소. 세상에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일이 워낙 많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친구가 잘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윌슨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 친구와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는 다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거지 같은 작자는 나를 방금 모욕해 놓고서도 금방 또 이러니저러니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그는 부러 또 한번 건드려 보았다. "내가 소문을 낼까 봐 걱정하지는 마시오."
그는 덧붙여 말했다. "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여자도 사자를 보면 놓치지 않습니다. 게다가 백인 남자라면 절대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셔야 할 겁니다."
"그래, 나는 토끼 새끼마냥 도망쳤지." 매코머가 말했다.
글쎄 이따위로 대꾸하는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취급해야 한다는 말인가... 윌슨은 속으로 궁리를 해봤다.
윌슨은 매코머를 쳐다보았다. 그 파란 눈은 기관총 사수처럼 생기가 없었다. 그러자 상대는 그에게 미소를 보냈다. 기분이 나빴을 때의 그 눈초리를 보지 못한 사람은 그 웃음이 기분 좋은, 빙그레 웃는 미소로만 여겨질 것이다.
"아마 물소라면 나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텐데." 그는 말했다. "이 다음엔 어디 한번 물소를 잡는 게 어떨까요, 응?"
"원하신다면 내일 아침이라도 좋죠." 윌슨이 대답했다. 아마 내가 잘못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해나가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이 미국인에 대해서 또 이러니 저리니 욕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또다시 나는 매코머 이 작자 편이 되는 거다. 만약 오늘 아침 일만 잊을 수 있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물론 그 일을 잊을 수는 없다. 오늘 아침의 사건은 이 사람들이 이곳에 온 것 자체만큼이나 꼴불견이었다.
"부인이 오시는군요." 그는 말했다. 여자는 원기를 회복했다. 쾌활하고 아주 어여쁜 모습으로, 자기 텐트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계란형 얼굴이었다. 너무 둥글고 반반해서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 여자는 바보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바보이기는커녕... 윌슨은 생각했다.
"붉은 얼굴의 미남자, 윌슨 씨 안녕하세요? 여보, 프랜시스... 나의 진주...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
"그럼, 많이 좋아졌소." 매코머가 대답했다.
"저도 이전 일은 다 잊어버렸어요." 여자는 테이블에 앉으면서 말했다. "프랜시스의 사자 잡는 솜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그건 이 사람 직업이 아니걸랑요. 그건 윌슨 씨의 직업이지요. 윌슨 씨는 무엇이든지 잡는 데 명수란 말이지요. 당신은 무슨 짐승이든 다 잡을 수 있겠죠?"
"그렇죠. 무엇이든지 잡을 수 있어요." 윌슨이 말했다. "무엇이건, 종류를 가리지 않지요." 이 여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상대다... 냉정한데다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가장 사나운 약탈자면서 매혹적이다. 이런 여자들이 냉정해지면 상대 남자들은 노근노근해지거나 신경이 완전히 조각나 버리고 만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여자들은 아마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남자를 골라 남편으로 삼는 것일 게다. 이 여자들이 결혼할 때의 나이로는 경험상 그런 것까지는 알 수가 없을 텐데... 그는 생각했다. 그는 지금까지 대충이나마 미국 여자들에 대해 경험을 쌓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번의 이 여자는 매우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엔 물소를 잡으러 갈 겁니다." 그는 여자에게 말했다.
"저도 함께 가겠어요." 여자가 말했다.
"아니 당신은 안됩니다."
"아니 저도 갈 거에요. 프랜시스, 제가 가면 안되나요?"
"왜? 캠프에 남아있지 않겠단 말이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여자는 말했다. "오늘 같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칠 수 없으니까요."
윌슨은 마음 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아까 이 여자가 자리를 떴을 때는, 울려고 밖으로 나갔을 때만 해도 이 여자는 무척 얌전하고 우아해 보였다. 이해심도 있고, 눈치가 빠르다. 남편이나 자신의 일로 마음이 상했지만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십 분쯤 자리를 떠났다가 돌아온 것을 보니 저 미국 여자다운 냉정함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 아닌가. 정말 형편없는 여자들이다. 정말 형편없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