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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오늘과 다른 구경을 시켜주지." 프랜시스 매코머가 말했다."부인은 오지 마십시오." 윌슨이 말했다.
"당신은 나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자가 말했다. "당신이 또 멋지게 해내는 것을 보고 싶다는 거에요. 오늘 아침 당신은 정말 기가 막혔어요. 짐승 대가리를 날려 버리는 게 멋있다고 할 수 있다면 말이에요..."
"점심이 왔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당신은 무척 즐거운 모양이군요."
"그럼요. 전 우울해지려고 일부러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죠. 지금까지는 지루하지는 않았죠." 윌슨은 말했다. 냇물 속에 잠겨 있는 돌멩이와 나무가 우거진 저쪽 높은 언덕을 바라보니 오늘 아침 일이 다시 떠올랐다.
"그럼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여자가 말했다.
"내일도 그럴 거에요. 제가 그걸 얼마나 학수고대하고 있는지 당신은 모르실 거에요."
"지금 드린 것은 큰사슴 고기입니다." 윌슨이 말했다.
"큰사슴은 저 산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는 소 비슷한 동물 아닌가요?"
"글쎄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윌슨이 대답했다.
"맛이 아주 좋군." 매코머가 말했다.
"프랜시스, 당신이 쏜 건가요?"
"그래."
"그 짐승은 별로 위험하지 않겠죠?"
"높은 곳에서 덤벼들지만 않으면 그렇죠." 윌슨이 대답했다.
"그렇담 전 참 기뻐요."
"마고트, 쓸데없는 소리 이제 작작해." 매코머가 나무랐다. 그도 큰사슴 고기 스테이크를 베어내고 그 고기 조각에 포크를 꽂았다. 그리고 그 포크를 뒤집어 매슈테이트와 소스를 치고 당근을 얹었다.
"네, 그만두기로 하지요." 여자가 말했다. "당신 말씨가 너무 고와서요."
"오늘 저녁은 사자를 기념해 샴페인이나 마실까요?" 윌슨이 말했다. "낮에는 좀 더우니까 말입니다."
"그래요, 참 그 사자가 있었지요." 마고트가 말했다. "전 그 사자가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이제 보니 이 여자는 남편을 놀리고 있었구나... 로버트 윌슨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잖으면 한바탕 쇼라도 벌일 속셈인가? 자기 남편이 지독한 겁쟁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 여자들은 도대체 어떤 태도를 보일까? 이 여자는 무섭게 잔인하다. 대체로 여자들은 모두 잔인하다. 이런 여자들은 남편을 쥐고 마구 흔들어대는 법이다. 마음대로 흔들려니 아무래도 잔인해질 수밖에 없겠지. 더구나 나 역시 이런 여자들의 소름 끼치는, 잔인한 행동을 실컷 맛보지 않았던가...
"큰사슴 고기를 더 드시지요." 그는 공손히 여자에게 말했다.
그날 오후 늦게 매코머는 윌슨과 토인 운전수, 그리고 두 명의 엽총 운반인을 데리고 자동차를 몰고 나갔다. 매코머 부인은 캠프에 남아 있었다. 너무 더워서 나갈 수는 없고, 내일 아침 일찍 동행하겠다는 얘기였다.
윌슨은 멀어져 가는 차 위에서 여자가 큰 나무 아래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여자는 장미빛이 섞인 카키복을 입고, 검은 머리카락을 앞이마에서 뒤로 넘겨 목덜미 아래로 땋아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아름답다기 보다는 오히려 사랑스러워 보였다. 마치 영국 땅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생기가 넘치는 얼굴이군... 그는 생각했다. 여자는 무성하게 높이 자란 풀을 헤치며 멀어져 가는 자동차에 손을 흔들었다. 차는 숲을 구불구불 헤치고 나가 과일나무 숲이 있는 언덕 가운데로 들어갔다.
과일나무 숲에서 그들은 사슴의 무리를 발견했다. 다들 거기에서 차를 내려 뿔이 길게 뻗은 늙은 사슴의 뒤를 살금살금 뒤쫓았다. 매코머는 이백 야드쯤 떨어진 거리에서 멋들어진 솜씨로 수사슴을 쏘아 맞추었다. 사슴 떼는 후다닥 뛰어오르더니 서로 들을 뛰어넘으며 도망쳤다. 다리를 오그리고 펄쩍 날으듯이 뛰어가는 모습이라니... 사름들이 때로 꿈에서 경험하는 것 같은, 믿기 어려울 정도의 장관이었다.
"아주 훌륭한 솜씨였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과녁으로 쏴 맞추기엔 작은 편이었는데..."
"머리를 겨눴는데... 괜찮았나요?" 매코머가 물었다.
"아주 훌륭했어요." 윌슨이 대답했다. "그렇게만 쏘면 아무 걱정도 없습니다."
"내일 물소를 찾을 수 있을까?"
"아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놈들은 아침 일찍 물을 먹으러 오거든요. 재수가 좋으면 넓은 들판에서 쏴 잡을 수도 있을 겁니다."
"난 사자 사냥의 실패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싶어." 매코머가 말했다. "그런 실수를 저지르는 장면을 아내가 본다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테니 말이야."
나 같으면 아내가 있거나 말거나, 또는 지나간 일이 소문으로 퍼지거나 말거나,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 자체가 훨씬 더 불쾌할 텐데... 윌슨은 생각했다. 그러나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 일은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누구나 처음 사자를 만나면 당황하는 법이지요. 이제 다 지나간 일입니다."
그러나 프랜시스 매코머에게는 그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매코머는 모닥불 옆에서 위스키 소다를 마시고 잠자리로 갔다. 모기장을 친 침대에 누워 밤에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던 그에게는 그 일이 끝난 것도 아니었고, 이제부터 시작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일은 일어났던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 더구나 그 어떤 부분은 도저히 씻어낼 수 없을 만큼 다시 강조되고 있었다.
그는 비참한 심정으로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러워 하고 있었다. 아니 부끄럽다기 보다 그는 온몸으로 싸늘하고 텅 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한때 자신만만했던 그 지점을 두려움이 채우고 있었다. 차디차고 불쾌하게, 마치 폐허와도 같은 공허가 그 지점에 남아 있어 그는 견딜 수 없는 묘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아직도 그와 함께 거기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건은 사실상 그 전날 밤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매코머는 잠에서 깨어, 상류 어디선가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로 시작한 그 울부짖음은 곧 기침 소리 같은 신음으로 바뀌었다. 마치 사자가 텐트 바로 밖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밤중에 깨어 그 소리를 듣고 프랜시스 매코머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내가 잠을 자는 가벼운 숨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무서움을 나눌 사람도 없이, 그는 혼자 누워 있어야 했다. 아무리 용감한 사나이라도 사자에게 세 번은 놀란다고 한다. 즉 처음 발자국을 보았을 때, 처음 그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고 처음 마주쳤을 때라는 것이다. 이것은 소마리 사람들의 속담이었다.
하지만 매코머는 그런 속담을 모르고 있었다. 아침 해가 뜨기 전, 식당 텐트에서 램프를 켜놓고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다시 사자가 울부짖었다. 프랜시스는 사자가 바로 캠프 가까이에 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늙은이 울음 소리 같군요." 말린 연어와 커피를 먹고 있던 로버트 윌슨이 얼굴을 들고 말했다. "자식이 기침하는 소리 좀 들어 보시오."
"바로 가까이에 와 있는 거요?"
"상류 쪽으로 일 마일 가량 될 겁니다."
"지금 볼 수 있을까요?"
"나가 봅시다."
"이렇게 멀리까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다니! 마치 캠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군."
"굉장히 멀리까지 들립니다." 로버트 윌슨이 대답했다.
"사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멀리까지 들리는지 신기할 지경이지요. 괜찮은 놈이라면 좋겠는데. 이 근처에 매우 큰 놈이 돌아다닌다고 애들이 그러더군요."
"어디를 쏴야 좋을까요?"
매코머가 물었다. "한 방에 쓰러뜨리자면 어디를 쏘는 게 좋겠소?"
"글쎄요, 어깨쪽이 낫겠죠." 윌슨이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목이 제일 좋습니다. 뼈다귀를 으스러뜨리는 거지요."
"제발 잘 겨눌 수 있어야 할텐데..."
"당신이야 솜씨가 좋지 않습니까?" 윌슨이 대답했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목표를 잘 겨누어 틀림없는 곳을 쏘아야 합니다. 첫발만 제대로 맞으면 그대로 끝장낼 수 있어요."
"거리는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할까요?"
"그건 알 수 없지요. 그건 사자에게 달려 있다고 해야 할 겁니다. 확실하게 하려면 충분히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백 걸음 정도?" 매코머가 물었다. 윌슨은 얼른 그를 쳐다보았다.
"그렇죠. 백 정도면 괜찮을 겁니다. 좀더 가까이 오기를 기다린다면 더 좋겠지만. 그 이상 떨어지면 아예 쏘지 마세요. 백 정도면 알맞습니다. 그 거리라면 어디든 잘 맞출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부인께서 오시는군요."
"잘들 주무셨어요?" 그녀가 인사를 했다.
"우리, 이제 저 사자를 잡으러 가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