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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벽 세 시 경이었다. 프랜시스 매코머는 사자 생각을 하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고, 그러다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나 머리가 피로 범벅이 된 사자가 그의 가슴을 짓누르는 악몽에 소스라쳐 잠을 깨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심장 고동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텐트 저쪽 침대에 아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깨닫자 두 시간 동안이나 눈을 뜬 채 누워 있었다.두 시간쯤 지나자 아내가 텐트로 돌아왔다. 모기장을 들추고 기분 좋은 듯 침대에 기어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디 갔다 오는 거야?" 매코머는 어둠 속에서 물었다.
"여보..." 그녀가 말했다. "자지 않고 있었어요?"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잠깐 밖에서 바람 좀 쐬었어요."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알 게 뭐야?"
"그럼 어떻게 말해 줄까요, 여보?"
"어딜 갔다 왔느냐 그 말이야."
"바람 좀 쏘이고 왔다니까요."
"흥, 그런 것도 핑계라고 대는 거야? 개 같은 년!"
"흥, 그런 당신은 겁쟁이 아닌가요?"
"좋아." 그는 말했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내가 알 게 뭐에요... 이제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맙시다. 난 지금 졸려 죽겠어요."
"그래 무슨 짓을 해도 내가 가만 있을 줄 알았나?"
"그럼요."
"천만에, 어림도 없어."
"제발 부탁이에요. 이제 그만 해요. 난 지금 너무 졸립다니까요."
"그런 짓은 두 번 다시 안 한다고 했잖아. 다시는 그러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요." 여자는 어리광을 부리듯 말했다.
"너는 이번 여행에서 그 따위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지 않았나?"
"그래요, 약속했죠. 나도 처음엔 그러려고 마음 먹었어요. 하지만 어제 일로 이번 여행은 완전히 망쳐버린 거에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 이제 별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지 않겠어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자기에게 유리하게, 생각나면 얼른얼른 해치운단 말이야?"
"제발 부탁이에요. 그만둬요. 난 지금 졸려 죽겠어요."
"아냐, 난 계속 말해야겠어."
"그럼 혼자서 떠들든지 말든지... 아무튼 난 자야겠어요."
그리고 그녀는 잠에 빠져들었다.
해 뜨기 전 아침 식사에 그들 세 사람은 모두 식탁에 같이 둘러 앉았다. 그때 프랜시스 매코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싫은 인간도 많았지만, 로버트 윌슨처럼 끔찍하게 싫은 인간은 없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잘 주무셨습니까?" 윌슨은 파이프에 담배를 채우면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아주 푸욱 잘 잤지요." 백인 사냥꾼 윌슨은 대답했다.
이 때려 죽일 자식 같으니... 매코머는 뱃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개 같은 후레 자식 같으니...
이제 보니 여자가 텐트에 돌아갔을 때 이 자식이 잠에서 깬 모양이군... 윌슨은 무표정한 냉랭한 눈초리로 두 사람을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이 자식은 그래 제 여편네도 제 옆에 꼭 붙들어 두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이 자식이 지금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덜 여문 허수아비 같은 자식아, 네가 남편이라면 마누라 하나쯤 제대로 꽉 붙잡아야지. 이건 전부 네 잘못이란 말이야...
"물소를 찾을 수 있을까요?" 마고트가 앵두 접시를 밀어내면서 물었다.
"글쎄요, 과연 어떨지..." 윌슨은 말하면서 그녀에게 미소를 던졌다. "그냥 캠프에 남아 계시지 그러세요."
"특별한 까닭은 없지만..." 그녀는 말했다.
"부인이 캠프에 남아 계시도록 당신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윌슨이 매코머에게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명령하면 될 텐데..." 매코머는 쌀쌀하게 말했다.
"명령이라니, 그 따위 말이 어디 있어요?" 마코트는 매코머를 향해 유쾌하게 말했다. "그 따위 어리석은 말은 집어치워요, 프랜시스."
"출발 준비는 다 된 거요?" 매코머가 물었다.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습니다." 윌슨이 대답했다. "부인이 같이 가시도록 할 겁니까?"
"내가 그렇게 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소?"
빌어먹을, 될 대로 되려므나... 로버트 윌슨은 생각했다. 그래, 될 대로 되겠지. 그렇지, 그러면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거야.
"글쎄 별로 상관은 없겠죠." 윌슨은 말했다.
"설마 당신은 내 아내와 함께 캠프에 남아 있고, 나 혼자 나가서 물소를 잡아오라는 얘기는 아니겠죠?" 매코머는 물었다.
"그럴 리야 있습니까?" 윌슨은 말했다. "내가 당신이라면 그런 잠꼬대 같은 얘기는 꺼내지 않을 겁니다."
"잠꼬대가 아니야, 나는 이제 진절머리가 나!"
"진절머리가 나다니, 말투가 좀 심하시군요."
"프랜시스, 말을 좀 더 조심할 수 없어요?" 그의 아내가 말했다.
"나는 지금 너무 지나치게 말을 조심하고 있는 거야." 매코머는 말했다. "세상에 이렇게 더러운 것을 먹어본 일이 있나?"
"글쎄, 음식이 잘못되기라도 했나요?" 윌슨이 조용히 물었다.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아."
"좀 진정하시지요." 윌슨이 극히 냉정하게 말했다. "심부름꾼 가운데는 영어를 약간 아는 놈들도 있으니 말입니다."
"심부름꾼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윌슨은 일어나서 파이프를 빨면서 그를 기다리고 서 있던 흑인 운반인에게 천천히 걸어가서 스와힐리 말로 무어라고 말했다. 매코머와 그의 아내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커피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시끄럽게 소동을 피운다면 전 당신하고 헤어질 거에요." 마고트가 조용히 말했다.
"흥, 넌 그렇게도 하지 못해."
"어디 한 번 시험해 보시죠."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걸."
"그래요." 그녀는 말했다. "저는 헤어지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 당신도 좀 더 신사답게 행동을 해 보시란 말이에요."
"신사답게 행동하라구? 지금 말 다 했어? 신사답게 굴라구?"
"그래요, 신사답게 좀 똑똑하게 행동하시란 말이에요."
"그럼, 넌 왜 숙녀답게 행동하지 못하는 거야?"
"전 오랫동안 숙녀답게 행동해 왔어요. 정말 무척 오랫동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