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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식사를 마치시는 대로 곧 떠나도록 하지요." 윌슨이 대답했다. "기분은 좀 어떠세요?"
"아주 좋아요." 여자가 말했다. "신바람이 나는 걸요."
"준비가 다 됐는지 좀 나가 보겠습니다." 윌슨은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갈 때 사자가 다시 울부짖었다.
"그 자식 더럽게 시끄럽게 구는군." 윌슨이 소리를 질렀다.
"당장 아가리를 못 놀리게 만들어 놓구 말겠어."
"갑자기 왜 그래요, 프랜시스?" 아내가 그에게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매코머가 대답했다.
"아니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여자가 말했다. "어쩐지 기분이 언짢은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라니깐." 그는 말했다.
"자, 말 좀 해 봐요." 여자는 그를 쳐다보았다. "기분이 언짢은 거죠?"
"저 망할 놈의 사자 울음 소리 때문에 그래." 그는 말했다.
"저 자식은 밤새 저렇게 으르렁대더군."
"저를 깨우시지 그랬어요?" 여자가 말했다. "전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구요."
"난 저 망할 놈의 사자를 잡아야 해." 매코머는 금방 풀이 죽어서 대답했다.
"그럼요. 당신이 일부러 여기까지 온 것도 그것 때문이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어쩐지 초조해. 저 놈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단 말이야."
"그렇다면 윌슨이 말한 것처럼 그 놈을 죽여버리면 돼요. 그래서 울음 소리도 내지 못하도록 하는 거에요."
"그럼, 그렇게 해야지." 프랜시스 매코머는 말했다.
"말로야 뭘 못하겠어, 안 그래?"
"당신 설마 지금 무서운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있나. 하지만 밤새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니까 어쩐지 신경이 날카로워진 거야."
"당신은 그 놈의 사자를 잘 잡을 수 있을 거에요."
여자가 말했다. "당신은 꼭 제대로 쏴 맞힐 거에요. 전 그 모습이 너무나 보고 싶어요."
"우선 아침 식사를 해요... 그리고 같이 떠나도록 하자구."
"아직 날이 밝지도 않았어요." 여자가 말했다. "이 시간이면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 들곤 해요."
바로 그때 사자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듯한 소리로 다시 울부짖었다. 갑자기 목구멍을 울리는 그 소리, 점점 높아지며 공기를 뒤흔드는 그 소리는 어느덧 한숨 소리 비슷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가슴에서 솟아나는 묵직한 한숨 소리로 바뀌어 사라졌다.
"바로 옆에 와 있는 것 같아요." 매코머의 아내가 말했다.
"저 소리!" 매코머가 말했다. "저 지긋지긋한 소리가 정말 듣기 싫어."
"인상적이지 않아요?"
"인상적이지. 몸서리쳐질 정도로..."
그때 로버트 윌슨이 505 구경의 기브스 라이플을 들고 싱글싱글 웃으며 돌아왔다. 총신이 짧고, 구경이 보기 흉할 정도로 큰 라이플이었다.
"자, 이제 갑시다." 그가 말했다. "엽총 운반인이 당신의 스프링필드 라이플과 대구경 라이플을 가지고 갈 겁니다. 준비는 차 안에 다 갖춰 놓았어요. 총탄은 챙겼겠죠?"
"물론이죠."
"저는 다 준비 됐어요." 매코머 부인이 말했다.
"저 놈의 시끄러운 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어야죠." 윌슨이 말했다.
"당신이 앞에 타십시오. 저는 부인과 함께 뒤에 탈 겁니다."
그들은 차에 올라타서 잿빛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나무 숲을 지나 상류쪽으로 올라갔다. 매코머는 총 개머리판을 열어 총알이 클립 속에 들어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곤 쇠마개를 닫아 안전 장치를 걸었다. 그는 자기 손이 와들와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나머지 탄약통이 제대로 들어있는지 만져봤다. 또 손가락을 움직여 윗도리 가죽 허리띠에 걸린 탄약통도 만져보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지붕이 없는 박스형 자동차 뒷자리에는 윌슨이 아내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두 남녀는 상기된 표정으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윌슨이 앞으로 몸을 숙여 귓속말로 소근댔다.
"자, 보세요. 새들이 땅으로 내려오지 않습니까? 그놈이 잡은 짐승을 버려두고 가버린 모양입니다."
냇물 건너편 언덕 근처에 독수리 한 마리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나무 숲 위를 날고 있었다. 독수리는 빙빙 돌다가 수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놈이 물을 마시러 이쪽으로 올 것 같군요." 윌슨이 속삭였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리 올 겁니다. 잘 봐야 합니다."
그들은 언덕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았다. 이 근방은 냇물이 거의 말라붙어 저 아래 바닥에 있는 돌멩이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들은 수풀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가며 차를 몰았다. 매코머는 건너편 언덕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때 윌슨이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차가 멈춰섰다.
"저기 있습니다." 윌슨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른 쪽, 조금 앞으로, 이제 어서 내려서 쏘세요. 굉장히 큰 놈입니다."
그제서야 매코머도 사자를 발견했다. 사자는 옆구리를 거의 다 드러낸 채 서 있었다. 그놈은 커다란 머리를 쳐들더니 그들 쪽을 돌아보았다. 이른 아침의 부드러운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그 바람에 날려 사자의 검은 갈기털이 보기 좋게 곤두섰다. 묵직한 두 어깨와 굵은 몸뚱이가 매끄러운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잿빛 아침 햇살을 받으며 검은 영상으로 서 있는 그 모습이 무척 크게 느껴졌다.
"거리는 얼마나 될까?" 총을 들어 올리며 매코머가 물었다.
"칠십 오쯤 됩니다. 차에서 내려서 쏴야 합니다."
"여기서 쏘면 안될까?"
"차에서 쏘면 안 됩니다." 윌슨이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빨리 내려요. 저놈이 하루종일 저기서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오."
매코머는 앞 자리의 문을 나와 땅으로 뛰어내렸다. 발에 풀들이 밟혔다.
사자는 아직도 그 자리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냉정한 눈초리로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사자의 눈에는 이쪽의 물체가 그저 희미한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 냄새는 그쪽까지 풍겨가지 않는다. 그래서 사자는 이쪽을 유심히 바라보면서도 여유 있게 그 큼직한 머리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사자가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은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 자기 앞에 버티고 있으니까 물 마시러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잠시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윤곽이 그 물체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 눈에 비치자 사자는 그 큼직한 머리를 돌려 나무 숲 아래로 숨을 듯이 크게 움직였다. 그 순간, 피융! 하는 소리와 함께 30-06의 220 그레인 라이플의 단단한 총알이 사자의 옆구리를 맞혔다.
총알은 사자의 창자를 뚫고 지나갔다. 사자는 뜨겁게 지지는 듯한 느낌과 토할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사자는 총알에 맞은 커다란 배를 출렁거리며 큼직하고 묵직한 발을 질질 끌며 우거진 수풀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뭄을 감출 수 있는 우거진 덤불을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 다시 요란한 총 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또 다른 총알 한 발이 몸통을 꿰뚫었다. 그리고 또 한 방이 울렸다. 이 총알은 늑골의 아래 부분을 뚫고 들어갔다. 사자의 입에 뜨거운 피와 피거품이 솟구쳐 올랐다.
사자는 무성한 수풀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 웅크리고 앉아 몸을 숨겼다. 터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는 그 물건을 가까이 유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와락 덤벼들어 그 물건을 쥐고 오는 인간을 잡아먹으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