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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반인이 그러는데, 처음 물소가 바로 저기로 들어갔답니다. 그 친구가 처음 차에서 떨어졌을 때에는 물소가 쓰러져 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차를 몰고 갈 때 그 친구는 물소 두 마리가 뛰어서 달아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그 처음 물소가 일어나서 노려보고 있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그 녀석은 죽어라고 도망친 거죠. 그리고 물소는 저 수풀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 버린 겁니다.""지금 당장 뒤쫓아가면 안될까요?" 매코머는 열심히 물었다.
윌슨은 살피는 듯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신기한 일 아닌가...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제는 그렇게 겁을 집어먹고 있더니, 오늘은 또 이렇게 용기 충천하다니...
"아니, 조금 더 기다리는 게 좋겠습니다."
"제발, 우선 좀 그늘 밑으로 들어가요." 마고트가 말했다. 그녀는 얼굴이 창백하고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세 사람은 자동차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자동차는 멀리 떨어진, 가지가 사방으로 널찍하게 퍼진 나무 아래에 세워져 있었다. 그들은 차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어쩌면 그 놈이 저 안에서 죽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윌슨이 말했다. "조금 더 있다 보러 갑시다."
매코머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걷잡을 수 없는 행복감이 복받쳐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거야말로 진짜 사냥인 것 같소." 그는 말했다. "여태까지 이런 기분은 정말 처음이오. 마고트, 신나지 않소?"
"전 싫어요."
"왜?"
"전 싫어요." 그녀는 내뱉듯이 말했다. "전 소름이 끼쳐요."
"난 이제 두 번 다시, 어떤 상대고 두렵지 않을 것 같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매코머는 윌슨에게 말했다. "처음 물소를 보고 쫓아간 그 순간부터 뭔가 내게 변화가 일어났소. 마치 둑이 무너져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아. 순수한 흥분이라고나 할까... 그런 기분이오."
"그게 당신의 그 겁쟁이 담보를 깨끗이 씻어버린 모양입니다." 윌슨이 말했다. "인간에겐 여러 가지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 법이지요."
매코머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아." 그는 말했다. "나는 이제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된 것 같소."
그의 아내는 아무 말없이 이상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뒷자리 깊숙이 파묻혀 있고, 매코머는 앞으로 몸을 내밀고 몸을 비스듬히 뒤로 돌려 바라보는 윌슨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한 번 더 그놈의 사자와 부딪혔으면 좋겠어." 매코머는 말했다. "이제 사자 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아. 놈들이 뭘 어떻게 하겠어."
"바로 그겁니다." 윌슨이 말했다. "기껏해야 죽이기 밖에 더하겠어요? 그 다음엔 뭘 하겠습니까? 세익스피어가 뭐라고 한 말이 있는데... 참 그럴싸한 말이 있지요. 뭐라고 그랬더라? 그래 정말 멋있는 말이었는데, 한때는 곧잘 인용도 하고 그랬는데, 가만 있자...
'결코 걱정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죽은 것은 오직 한 번뿐, 죽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 두자. 올해 죽는 놈이 내년에 또다시 죽을 리는 없으니까...' 정말 멋있는 말 아닙니까?"
그는 자신의 좌우명처럼 삼고 있던 이 말을 하고 나서 속으로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전에도 사람이 갑자기 자기 나이 값을 하는 것을 보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늘 깊은 감동을 받곤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물 한 번째 생일 잔치를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인 것이다.
매코머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사냥 때문이었다. 미처 이것저것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갑자기 행동에 들어가야 하는 이 기묘한 행위... 사냥 때문에 이런 우연한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왜 일어났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런 변화가 틀림없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저 거지 같은 자식의 꼬락서니 좀 보라구... 윌슨은 생각했다. 저런 녀석들 중에는 오랫동안 계속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놈들도 있다. 잘못하면 죽을 때까지도 어린애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저 위대한 미국인, 어른의 가면을 쓴 어린애들 말이야... 정말 묘한 녀석들이지... 그러나 어쨌든 난 지금 이 매코머라는 작자가 마음에 드는 것 같단 말이야...
정말 이상한 친구야. 아마 이제 저 마누라도 더 이상 서방질을 하지는 못할 거야. 맞아, 그럴 거야. 그건 정말 좋은 일이지, 정말 좋은 일이야. 이 거지 같은 녀석은 평생 겁만 내면서 살아왔을 거라구.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이제 그것도 끝난 것 같아. 물소 따위를 상대로 겁을 먹을 시간 여유가 없었던 거야... 또 화를 낼 시간도 없었고...
자동차 덕분일지도 몰라. 차가 있었기에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주 기세 당당하군. 나는 전쟁터에서도 똑 같은 모습을 본 적이 있었지... 처녀성을 잃는 것보다 더 큰 변화인 셈이야. 마치 수술해서 제거한 것처럼 공포란 것이 사라져버리는 거지. 그리고 그 자리에 뭔가 다른 것이 자라나는 것이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어떤 것 말이다. 사람을 어른으로 만드는 것. 여자들도 이런 것을 알고 있다. 겁먹을 건더기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맨 구석 자리에서 마가레트 매코머는 두 사나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윌슨에게는 아무 변화도 없다. 그 전날, 그녀가 그의 위대한 재주가 어떤 것인지 처음 알아차렸을 때와 전혀 다름이 없다. 그러나 프랜시스 매코머에게는 지금 뭔가 변화가 엿보였다.
"지금부터 벌어질 일, 그 일이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소?" 매코머는 새로 얻은 풍성함을 여전히 흐뭇하게 느끼고, 탐구하면서 윌슨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렇게 이야기할 줄은 몰랐습니다." 윌슨은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히려 두려움으로 떨린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 아닐까요? 지금부터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 얼마든지 생길 테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틀림없이 이 다음에 생길 일이 행복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윌슨이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일에 대해서는 너무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말이 많으면 일을 다 망쳐버리기 쉽습니다. 무슨 일이건 너무 말이 많으면 신통치 않는 결과가 되는 법입니다."
"두 분 다 쓸데없는 소리만 하시는군요." 마고트가 말했다. "저 불쌍한 짐승을 자동차로 쫓으면서, 마치 무슨 영웅이나 된 것처럼 얘기하시는군요."
"죄송합니다." 윌슨이 말했다. "너무 허풍을 떤 모양이군요." 이 여자는 이렇게 말해놓고도 금방 후회하고 있구나...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들이 하는 얘기를 이해할 수 없으면 잠자코 있는 게 낫지 않겠소?" 매코머는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 무척 용감해졌군요, 그것도 느닷없이 말이에요." 그의 아내는 경멸하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 경멸의 느낌은 뭔가 석연치 않았다. 뭔가 무척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매코머는 껄걸 웃었다. 그것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무척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확실히 그런 느낌이야." 그는 말했다. "정말 그런 느낌이 들어."
"너무 늦은 것 아닌가요?" 그녀는 입맛이 쓴 듯이 말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과거 두 사람이 지낸 오랜 세월 동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왔던 것이다. 지금 그들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은 결코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너무 늦은 게 아니야." 매코머는 말했다.
마고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 한구석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제 시간은 충분히 준 것 같은데." 매코머는 쾌활하게 윌슨에게 말했다.
"이제 보러 갈까요?" 윌슨이 말했다. "총알은 아직 남아 있지요?"
"운반인이 좀 가지고 있을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