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58
- 청년
너무도 기뻐서
처녀를 웃음으로 보며
"오호, 나를 모르세요. 나를요?"
꿈을 깨고 난 듯이 손길을 들어,
"아아, 국사당 물방앗간에서 갈잎으로 머리 얹고
종일 풀싸움하던 그 일을-
또 산밭에서 멀구 광주리 이고 다니던
당신을 그리워 그리워하던
언문 아는 선비야요!"
"재가승이 가지는 박해와 모욕을 같이하자던
그러면서 소 몰기 목동으로 지내자던
한때는 봄이 온다고 기다리던 내야요"
- 처녀(妻女)
"언문 아는 선비? 언문 하는 선비!
이게 꿈인가! 에그, 아!, 에그! 이게 꿈인가,
이 추운 밤에, 당신이 어떻게 오셨소,
봄이 와도 가을이 와도 몇 가을 봄 가고와도
가신 뒤 자취조차 없던 당신이
이 한밤에, 어떻게 어디로 오셨소?
시집간 뒤 열흘 만에 떠나더라더니만."
- 청년
"그렇다오, 나는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에 못 이겨 열흘 만에 떠났소,
언문도 쓸데없고 밭 두렁도 소용없는 것 보고
가만히 혼자 떠났소.
8년 동안 -
서울 가서 학교에 다녔소 머리 깎고,
그래서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것을 알고
페스탈로치와 루소와 노자와 장자와
모든 것을 알고 언문 아는 선비가 더 훌륭하게 되었소,
그러다가 고향이 그립고 당신을 못 잊오 술을 마셨더니,
어느새 나는 인육을 탐하는 자가 되었소,
- 네로같이 밤낮 -
매독, 임질, 주정, 노래, 춤,-깽깽이-
내가 눈 깨일 때는
옛날이 육체가 없고 옛날의 정신이 없고 아 옛날의 지위까지.
나는 산송장!
오고갈 데도 없는 산송장.
아, 옛날이 그리워 옛날이 그리워서 이렇게 찾아왔소,
다시 아니 오려던 땅을 이렇게 찾아왔소,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
아하, 어떻게 있소, 처녀 그대로 있소? 남의 처로 있소! 흥,
역시 베를 짜고 있소? 아, 그립던 순이여!
나와 같이 가오! 어서 가오!
멀리 멀리 옛날의 꿈을 둘추면서 지내요.
아하, 순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