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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이 지나도 순이는 그림자도 안 보였다
그래서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이시여! 이게 무슨 짓입니까
팔목에 안기어 풀싸움하던
단순한 옛날의 기억을 이렇게 깨뜨려좋습니까?"
"아, 순아, 어디 갔니 옛날의 애인을 버리고 어디 갔니?
너는 참새처럼 아버지 품안에서 날아오겠다더니,
너는 참새처럼 내 품안에서 날아오겠다더니,
순아, 너는 물동이 이어줄 때,
언문 아는 집 각시 된다고 자랑하더니만
언문도 내보리고 선비도 없는 어디로 갔니?"
"멀구알 따다 팔아 열녀전을 쌓겠다더니
순아, 열녀전을 버리고 어디 갔니?
귀여운 말하던 네가 어디 갔니?
귀여운 말하던 네가 어디 갔니?
부엉이 운다 부엉새가 운다 뒷산곡에서
물레젓기 타령하던 때에 듣던 부엉새가 운다 아, 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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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너무도 기막혀
새벽에 칠두성을 향하여
"하늘이시여, 칼을 주소서, 세상을 무찌를
순이가 살고 옛날의 샘터가 놓인 이 세상을 무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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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 나 보아라!
자유인에 탈이 없는 것이다,
"가헌(家憲)'이라거나 '율법'이라거나,
모두 짓밟아라
뜯어고쳐라 추장이란 녀석이 제 맘대로 꾸며논 타성의 도덕률을
집중을 사람을 만들자,
순이는 아버지의 따님을 만들자,
초인아, 절대한 힘을 빌려라.
이것을 고치게, 아름답게 만들 게
불쌍한 눈물을 흘리지 말 게.
큐피트의 지나간 뒤는 꿈이 쓰러지고,
박카스의 노래 뒤는 피가 흐르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