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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이 났다.

앞마을에 고구려 군사가 쳐들어왔다고 떠들 때,

천막에다 여러 곳에서 나많은 장정들이 모조리

석부를 차고 활을 메고

여러 대 누려 먹은 제 땅을 안 뺏기려,

싸움터로 나갔다.

나갈 때면 울며불며 매여달는 아내를 물리치면서

처음으로 대의를 위한 눈물을 흘려보면서.

남은 식구들은 떠난 날부터

냇가에 칠성단을 묻고 밤마다 빌었다, 하늘에

무사히 살아오라고! 싸움에 이기라고!

그러나 그 이듬해 가을엔 슬픈 기별이 왔었다,

싸움에 나갔던 군사는 모조리 패해서 모두는 죽고

더러는 강을 건너 오랑캐령으로 달아나고,

- 사랑하던 여자와 말과 서부와, 석퉁소를 내 버리고서.

즉시 고구려 관원들이 왔었다 이 천막촌에

그래서 죽이리 살리리 공론하다가

종으로 쓰기로 하고 그대로 육진에 살게 하였다,

모두 머리를 깎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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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백 년이 지났는지 모른다.

고구려 관원들도 갈리고

그 일족도 이리저리 흩어져

어떻게 두루 복잡하여질 때,

그네는 혹 둘도, 모여서 일정한 부락을 짓고 살았다.

머리를 깎고 동무를 표하느라고 남들은

집중이라 부르든 말든 -

재가승(在家僧)이란 그 여진의 유족.



그래서 백정들이 인간 예찬하듯이

이 일족은 세상을 그리워하며 원망하며 지냈다.



순이란 함경도의 변경에 뿌리운 재가승의 따님.

불쌍하게 피어난 운명의 꽃,

놀아도 집중과 시집가도 집중이라는 정칙받은 자!

그러나 누구나 이 중을 모른다, 집중이란 뜻을

그저 집중 집중 하고 욕하는 말로 나뭇꾼들이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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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색시들은

해 지기까지 하여서 물터에 물 길러 나섰다,

국사당 있는 조그마한 샘터에로,

그곳에는 수양버들 아래,

오래 묵은 돌부처 구월 볕에 땀을 씻으면서

육감을 외우고 앉아 있었다.

지나던 길손이 낮잠 자는 터전도 되고 -

그 아래는 바로 우물, 바가지로 풀 수 있는 우물,

여러 길에 쓰는 샘물터가 있었다.

또 그 곁에는 치재(致齋) 붙이던 베 조각이 드리웠고,

나무꾼이 원두 씨름아여 먹고 간 꺼-먼 자취가 남았고

샘물 우엔 벌레 먹은 버들잎 두어 개 띄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