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부
28
멀구 광주리 이고 산기슭을 다니는
마을 처녀떼 속에,
순이라는 금년 열여섯 살 먹은 재가승(在家僧)의 따님이 있었다.
멀구알같이 까만 눈과 노루 눈썹 같은 빛나는 눈초리,
게다가 웃울 때마다 방싯 열리는 입술,
백두산 천지 속의 선녀같이 몹시도 어여뻤다.
마을 나무꾼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마음을 썼다.
될 수 있으면 장가까지라도! 하고
총각들은 산에 가서 '콩쌀금'하여서는 남몰래 색시를 갖다주었다.
노인들은 보리가 설 때 새알이 밭고랑에 있으면 고이고이 갖다주었다.
마을서는 귀여운 색시라고 누구나 칭찬하였다.
29
가을이 다 가는 어느 날 순이는
멀구 광주리 맥없이 내려놓으며 아버지더러,
"아버지, 우리를 중놈이라고 해요, 중놈이란 무엇인데"
"중? 중은 웬 중! 장삼입고 고깔 쓰고 목탁 두다리면서 나무아미타불 불러야 중이지, 너 안 보았디? 일전에 왔던 동냥벌이 중을"
그러나 어쩐지 그 말소리는 비었다.
"그래도 남들이 중놈이라던데"하고,
아까 산에서 나뭇꾼들에게 몰리우던 일을 생각하였다.
노인은 분한 듯이 낫자루를 휙 집어 뿌리며,
"중이면 어때? - 중은 사람이 아니라든? 다른 백성하고 혼사도 못하고 마음대로 옮겨 살지도 못하고"
하며, 입을 다물었다가
"잘들 한다. 어디 봐! 내 딸에야 손가락 하나 대게 하는가고"
하면서 말없이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낯에는 눈물이 두루루 어울리고,
순이도 그저 슬픈 것 같아서 함께 울었다, 얼마를.
30
재가승(在家僧)이란 - 그 유래는
함경도 윤관이 들어오기 전,
북관의 육진 벌을 유목(遊牧)하고 다니던 일족이었다.
갑옷 입고 풀투구 쓰고 돌로 깎은 도끼를 메고,
해 잘 드는 양지볕을 따라 노루와 사슴잡이하면서
동으로 서로 푸른 하늘 아래를
수초를 따라 아무데나 다녔다, 이리저리.
부인들은
해 뜨면 천막밖에 기어나와,
산 과일을 따 먹으며 노래를 부르다가
저녁이면 고기를 끓이며 술을 만들어,
사내와 같이 먹으며 입맞추며 놀며 지냈다.
그러다가 청산을 두고 구름만 가는 아침이면
산령에 올라 꽃도 따고, 풀도 꺾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