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동무들은 다 가고

범나비 저녁바람 쏘이려 나왔을 때,



하늘이 부르는 저녁 노래가 고요히 떠돌아

향기로운 땅의 냄새에 아울려

순이를 때릴 때, 그는 저절로 가슴이 뛰었다 -

성장한 처녀의 가슴에 인생의 노래가 떠돌아 못 견디게 기쁘었다,

그때 어디서 갈잎이 째지며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새알 만한 돌멩이 발충에 와 떨어진다.



41

순이는 무엇을 깨달았는지 모로 돌아섰다.

귓볼이 빨개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소년은 뛰어나왔다. 갈 밖으로 벙글벙글 웃으면서

"응, 순이로구나!" 하면서 앞에 와 마주섰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콩쌀금'을 내어 슬며시 쥐어준다.

순이는 오늘따라 부끄러워

낯을 들지 못하였다 늘 하던 해죽 웃기를 잊고 -

"너 멀구밭으로 갔던? 어째 혼자 갔나?"

"나허구 같이 가자구 하지 않았나? 누가 꼬이든?"

"……"

"어째 너 나를 싫어하나? 응"

순이는 그러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소년은 빨개진 소녀의 귓볼을 들여다보며

"왜 울었니? 누구에게 맞았니?"

"누가 맞았다니!"

"그럼 어째 말을 아니 하니?"

그래도 순이는 잠잠하다.

소년은 손뼉을 치며 하하하 웃으면서

"옳지 알았다 너 부끄러워 우니? 우리 아버지 너 집으로 혼사말 갔다더니 옳지 그게 부끄럽구 우냐!"

"……"

"얘 너는 우리 집에 시집온단다, 권마성(勸馬聲) 소리에 가마에 앉아서 응"

순이는 한 걸음 물러서며

"듣기 싫다 나는 그런 소리 듣기 싫다!"

그리고는 물동이 앞에 와 선다.

아무 말도 없이 고요히 - 수정(水精)같이

소년은 웃다가 이 눈치를 차리고 얼른 달려들어

물동이를 이워주었다.

그리고는 뒷맵시와 불그레한 뺨빛을

또 한 가지 여왕같이 걸어가는 거룩한 그 자태를 탐내보면서

마치 원광 두른 성녀를 보내는 듯이 한껏 아까워서 -


42

조선의 시골에는

백일에 짓는 사랑의 궁전은 없으랴.

종이 무서워 무서워 상전을 바라보듯

거지가 금덩이 안아보듯

두려움과 경이가 큐-피트의 화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