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12 / 전체 29
25
어유(漁油)불이 삿!하고 두 사이를 흐른다,
모든 발음(撥音)이 죽은 듯 하품을 친다.
"누구세요, 당신은 네?"
청년은 한 걸음 다가서며
"내요, 내요 내라니까 - "
그리고는 서로 물끄러미 치어다본다,
아주 대담하게, 아주 심정(沈精)하게.
26
그것도 순간이었다
"앗! 당신이 에그머니!"하고 처녀는 놀라 쓰러진다.
청년도
"역시 오랫던가 아, 순이여"
하고 문지방에 쓰러진다.
로단이 조각하여논 유명한 조상같이 둘은 가만히 서 있다,
달빛에 파래져 신비하게, 거루하게.
27
아하 그리운 한 옛날의 추억이어.
두 소상(塑像)에 덮이는 한 옛날의 따스한 기억이어!
8년 후 이날에 다시 불탈 줄 누가 알았으리.
아, 처녀와 총각이어,
꿈나라를 건설하던 처녀와 총각이어!
둘은 고요히 바람소리를 들으며
지나간 따스한 늘을 들춘다 -
국경의 겨울밤은 모든 것을 싸안고 달아난다.
거의 10년 동안을 울며불며 모든 것을 괴멸시키면서 달아난다.
집도 헐기고, 물방앗간도 갈리고, 산도 변하고, 하늘의 백랑성 위치조차 조금 서남으로 비틀리고
그러나 이 청춘남녀의
가슴속 깊이 파묻혀둔 기억만은 잊히지 못하였다,
봄꽃이 져도 가을 열매 떨어져도
8년은 말고 80년을 가보렴 하듯이 고이고이 깃들었다
아, 처음 사랑하던 때!
처음 가슴을 마주칠 때!
8년 전의 아름다운 그 기억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