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9 / 전체 29
16
"아하, 설날이 아니 오고, 또 어린애가 아니었더면
국금(國禁)을 파하고까지 남편을
이 한밤에 돈벌이로
강 건너 외땅으로 보내지 않았으련만
무지한 병정에게 들키면 그만이지.
가시던 대로나 돌아오시랴.
에그, 과부는 싫어, 상복 입고 산소에 가는 과부는 싫어"
빠지직빠지직 타오르는 심화에
앉아서 울고 서서 맴도는
시골 아낙네이 겨울밤은 지리도 하여라.
다시는 인적기조차 없는데
뒷산곡에는 곰 우는 소리 요란코.
17
이상한 청년은 그 집 문간까지 왔었다,
여러 사람의 악매(惡罵)하는 눈살에 쫓겨
뼉다귀 찾는 미친 개모양으로 우줄우줄 떨면서
모막살이집 문 앞까지 왔었다, 누가 보았던들
망명하여 혼 이방인이 보리(補吏)의 눈을 피하는 것이라 않았으랴.
그는 돌연
"여보, 주인!"
하고 굳어진 소리로 빽 지른다.
그 서슬에 지옥서 온 사자를 맞는 듯이
온 마을이 푸드득 떤다,
그는 이어서 백골을 도적하러 묘지에 온 자처럼
연해 눈살을 사방에 펼치면서 날카로운 말소리로
"여보세요 주인! 문을 열어주세요"
18
딸그막딸그막 울려나오는 그 소리,
만인의 가슴을 무찌를 때
모든 것은 기침 한 번 없이 고요하였다.
천지 창조 전의 대공간같이……
그는 다시 눈을 흘겨 삼킬 듯이 바라보더니
"여보, 주인! 주인! 주인?"
아, 그 소리는 불쌍하게도
맥이 풀어져 고요히 앉아 있는 아내의 혼을 약탈하고 말았다.
사내를 사지(死地)에 보내고 정황없어 하는 아내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