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마을 서는, 그때

굵은 칡베 장삼에 묶인 송장 하나가

여러 사람의 어깨에 메이어 나갔다.

눈에 싸인 산곡으로 첫눈을 뒤지면서.



65

송장은 어느 남녘진 양지쪽에 내려놓았다,

빤들빤들 눈에 다진 곳이 그의 묘지이었다.

"내가 이 사람 묘지를 팔 줄 몰랐어!"

하고 노인이 괭이를 멈추며 땀을 씻는다,

"이 사람이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네!"하고

젊은 차부가 뒤대어 말한다.



66

곡괭이와 삽날이 달가닥거리는 속에

거-먼 흙은 흰 눈 우에 무덤을 일궜다,

그때사 구장도 오구, 다른 차꾼들도, 청년도

여럿은 묵묵히 서서 서글픈 이 일을 시작하였다.



67

삼동에 묻히운 '병남(丙南)'의 송장은

쫓겨가는 자의 마지막을 보여주었다,

아내는, 순이는 수건으로 눈물을 씻으며

'밤마다 춥다고 통나무를 지피우라더니

추운 곳으로도 가시네

이런 곳 가시길래 구장의 말도 안 듣고 -"



68

여러 사람은 여기에는 아무 말도 아니 하고 속으로

"흥! 언제 우리도 이 꼴이 된담!"

애처롭게 앞서가는 동무를 조상할 뿐.



69

얼마를 상여꾼들이

땀을 흘리며 흙을 뒤지더니,

삽날소리 딸까닥 날 때

노루잡이 함정만한 장방형 구덩 하나가 생겼다.



70

여러 사람들은 고요히

동무의 시체를 갖다 묻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듯이.



71

거의 묻힐 때 죽은 병남이 글 배우던 서당집 노훈장이,

"그래도 조선땅에 묻힌다!"하고 한숨을 휘-쉰다.

여러 사람은 또 맹자나 통감을 읽는가고 멍멍하였다.

청년은 골을 돌리며

"연기를 피하여 간다!" 하였다.



72

강 저쪽으로 점심 때라고

중국 군영에서 나팔소리 또따따 하고 울려 들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