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녀(妻女)
"그래도 싫어요 나는
당신 같은 이는 싫어요,
다른 계집을 알고 또 돈을 알구요,
더구나 일본말까지 아니
와보시구려, 오는 날부터 순사가 뒤따라다닐 터인데
그러니 더욱 싫어요 벌써 간첩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내가 미나리 캐러 다닐 때
당신은 뿌리도 안 털어줄 걸요,
백은(白銀) 길 같은 손길에 흙이 묻는다고
더구나 감자국 귀밀밥을 먹는다면 -"
"에그, 애닯아라.
당신은 역시 꿈에 볼 사람이랍니다, 어서 가세요."
- 청년
"그렇지 않다는데도,
에익 어찌 더러운 팔자를 가지고 났담!"
그러면서 그는 초조하여 손길을 마주 쥔다,
끝없는 새벽하늘에는
별싸락이 떴구요 -
그 별을 따라 꽂히는 곳에
북극이, 눈에 가리운 북극이 보이고요.
거기에 빙산을 마주쳐 두 손길 잡고, 고요히
저녁 기도를 드리는 고아의 모양이 보인다,
그 소리 마치
"하늘이시여 용서하소서 죄를,
저희들은 모르고 지었으니"하는 듯.
별빛이 꽂히는 곳, 마지막 벌판에는
이스라엘 건국하던 모세와 같이
인민을 잔혹한 압박에서 건져주려고
무리의 앞에 횃불을 들고 나아가는
초인의 모양이 보이고요,
오, 큰 바람이어,
혼의 수난이어, 교착이어!
"버린다면 나는 죽어요
죽을 자리도 없이 고향을 찾은 낙인(落人)이에요,
아, 보모여 젖먹이 어린애를
그대로 모른다 합니까"
그의 두 눈에선 눈물이 두루루 흘렀다.
- 처녀(妻女)
"가요, 가요, 인제는 첫닭 울기,
남편이 돌아올 때인데
나는 매인 몸, 옛날은 꿈이랍니다!"
그러며 발을 동동 구른다,
애처로운 옛날의 따스하던 애욕에 끌이면서,
그 서슬에 청년은 넘어지며
낯빛이 새파래진다 몹시 경련하면서,
"아, 잠깐만 잠깐만"
하며 닫아맨 문살을 뜯는다.
그러나 그것은 감옥소 철비(鐵扉)와 같이 굳어졌다,
옛날의 사랑을 태양을 전원을 잠가둔
성당을 좀처럼 열어놓지 않았다.
"아, 여보 순이! 재가승의 따님,
당신이 없다면 8년 후도 없구요,
세상도 없구요"
김동환 (시) - 국경의 밤 3부 (4)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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