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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날을 두고 울던 소년은 열흘이 되자
모든 바람이 다 끊어지고 할 때
산새들도 깃든 야밤중에,
보꾸러미 하나 둘러메고 이 마을을 떠났다
마지막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는 이 땅을 안 디딜 작정으로 -
구름은 빌까 험하게 분주히 내왕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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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떠난 뒤
하늘은 잊은 듯이
해마다 해마다 풍년을 주었다
때맞춰 기름진 비를, 자갈 돌밭에
출가한 순이의 맘에도 안개비를
농부들은 여전히 호미를 쥐고 밭에 나갔다.
마을 소녀들은 멀리 따러 다니구요
언문 아는 선비 일은 차츰차츰 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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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안 가서
무산령상(茂山嶺上)엔 화차통
검은 문명의 손이 이 마을을 다닥쳐왔다,
그래서 여러 사람을 전토를 팔아가지고
차츰 떠났다.
혹은 간도로 혹은 서간도로
그리고 아침나절 짐승 우는 소리 외에도
쇠 찌적 가는 소리 돌 깨는 소리,
차츰 요란하여갔다,
옷 다른 이의 그림자도 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