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자고나서 이 편지를 계속하오.

 

날이 밝고 바람도 없소.

 

'찌배, 찌배, 찌배, 찌배'

 

솔새 소리가 나오. 두 뺨이 하얀 새요. 솔밭에 산다고 솔새라 하고 두 볼이 희다고 하는 놈이오. 아침 저녁 솔새가 내 창 앞에 와서 우오.

 

어제는 비가 올 것 같더니, 제법 오기 시작까지 하더니, 무슨 생각이 났는지 씻은듯 부신 듯이 희오. 뜰에 심은 화초 포기도 축축 늘어졌소. 며칠 지나면 나는 이 집을 떠난다 하면 화초에 물을 주자는 정성도 떨어지오.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래서 억지로 제 마음에 채찍질을 하여서 물을 주지마는, 워낙 가무니까 이로 당할 나위가 없소. 감들도 모처럼 많이 열린 것이 수분이 부족해서 떨어지기를 시작하오. 삼남 지방에는 기우제를 드린다는데, 어제가 단오, 오늘이 하지건마는, 모들을 못 내었으니 큰일 나지 않았소? 만주서 온 편지에도 가물어서 금년 농사가 걱정이란 말이 있소. 어떤 수리조합에는 저수지까지 말랐다니, 큰 걱정 아니오?

 

"공전은 안 오르는데 쌀값만 껑충껑충 뛰니, 이런 제길."

 

하고 돌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게두덜거리오. 그렇지만 하느님이 다 알아서 작히나 잘 하시겠소?

 

하지만 내가 지은 이 집에 결점이 많아서 늘 불만하던 모양으로, 또 내 몸이 늘 병이 있고 아름답지를 못하고 또 내 마음이 지저분하고 의지력이 약하고 도무지 마땅치 아니한 모양으로 이 사바 세계란 것이 약하고 도무지 마땅치 아니한 모양으로 이 사바 세계란 것이 결코 최상 최성(Best Possible)은 아닌 모양이오.

 

그래서 예로부터 이 세상은 안전한 이데아의 세계의 그림자라고 한 이(플라톤)도 있고, 이 세상은 본디는 완전 무결하였지마는 사람이 죄를 짓기 때문에 이렇게 껄렁껄렁이 되었다는 이(예수)도 있고, 애초부터 하늘 나라보다 못하게 만들어진 것이라(희랍 신화)고 한 데도 있고, 또 이 세상이란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되어 먹은 것이라고 한 이도(쇼펜하우어)도 있고, 또 이 세상은 점점 완전을 향하고 걸어가는 생성(Becoming)의 도중에 있다는 이(진화론적 우주관을 가진 이들)도 있고, 또 이 우주 간에는 우리 세상같이 껄렁이도 있지마는, 이보다 좀 나은 세상, 더 나은 세상, 좀 더 나은 세상, 더 더 나은 세상, 더 더 더 나은 세상, 그러다가 마침내는 고작 나은 세상이 있고, 또 그와 반대로는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더 껄렁이, 더 더 껄렁이, 이 모양으로 수 없는 계단을 내려가서 말할 수 없이 흉악한 껄렁이 세상이 있으니, 그것은 다 그 속에 사는 중생의 인연업보와, 원력과 불, 보살의 원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니라, 이렇게 가르치는 이(불교)도 있지 아니하오?

 

그러기도 할 게요.지금 이 편지를 쓰고 앉았는 이 동네로 보더라도, 불과 오륙십 호 되지마는 집마다 다르거든, 이 중에서는 고작 나은 집, 좀 못한 집, 움집. 나라들로 보아도 그렇고 그런데, 이러한 집들이 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업보인 것이야 틀림없지 아니하오? 다시 말하면 다 제가 들어 있을 만한 집에 들어 사는 거야. 그러다가 나 모양으로 그만한 집도 지닐 형편이 못되면 남의 손에 넘기고, 또 지금보다 형편이 펴이면 지금보다 나은 집을 옮아갈 수 있고.

 

아무러나 이 세상이 그렇게 가장 좋은 세상이 못 된다고 보셨기 때문에, 법장비구(아미타불 전신)가 괴로움 없는 가장 좋은 세계를 건설할 원을 세우고 조재 영겁에 수행을 하신 결과로 우리 사바 세계에서 십만억 세계를 지난 서쪽에 서방정토 극락 세계를 이룩하신 것이 아니겠소. 거기는 악이란 하나도 없고,

 

'諸上善人具會一處([제상선 인구회 일처).'

- 착한 사람뿐이요, 악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극락정토의 최고 이상 -

 

하여서 오직 즐거움만을 누리게 되었다 하오. 우리 사바중생들도 아미타불 부처님의 이름을 부를, 그 세계에 나기만 원하면 반드시 다음 생에 거기 태어날 수가 있다고 하오. 거기는 꽃도 좋은 꽃이 많이 피고, 앓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고, 얼굴들은 다 잘나고, 마음들은 다 착하여서 오직 사랑만이 있을 뿐이라 하오. 거기는 내 집을 사는 분이 걱정하시는 뱀이나 지네도 없고, 내가 제일 좋아 않는 파리나 모기나 송충이도 없고, 또 집을 팔 것도 없고, 집이 없어서 걱정도 없고, 무론 남편을 불안히 여겨서 다른 남자를 탐내는 여자도 없고, 아내가 싫어져서 다른 여자를 가지고 싶어 하는 남자도 없고, 아무러나 현재에 이 우주 간에 있는 세계 중에는 가장 잘 된 세계라고 하오.

 

인도에 용수(龍樹)라고 대단히 큰 학자로서 또 대단히 큰 불교의 중흥자가 되어서, 보살이라는 칭호까지 받은 어른이 일생에 생각다 생각다 못하여서 마침내,

 

'世尊我一心(세존아일심) 歸命盡十方(귀명진십방) 無礙光如來(무애광 여래래) 願生安樂國(원생안락국).'

- 세존이시여, 내 한마음으로 盡十方無碍光如來(티끌 세계에 거리낌없는 지혜의 빛을 비치고 있는 부처. 색도 모양도 없고 無明의 암흑을 거두고 惡業에 장애받지 아니한다)께 목숨을 바꿔, 편안하고 즐거운 나라에 태어나고자 원하옵니다 - 

 

이라고 부르짖었소. 무애광여래란 아미타불이시오, 안락국이란 극락 세계란 말요.

 

그러므로 적어도 법장비구의 사십 팔 본원 속에 안겨서 극락 세계에 나가기 전에는 괴로움 않는 인생이란 없는 것이오.

 

그러면 어찌 할까? 제게 태운 집에 만족하는 것이야. 쓰러져 가는 초갓집 한 간이라도 내 집이라고 있는 것만 고맙게 생각하는 거야. 빈 땅이 있거든 꽃포기나 심읍시다그려. 아침 저녁 물 뿌리고 깨끗이 소제나 합시다그려.

 

종잇장도 바르고, 그림장도 걸고, 내 힘에 미치는 데까지 깨끗하게 아름답게 꾸밉시다그려.

 

"아이고,이런 집에 어떻게 살아."

 

하고 낯을 찡기고 앙탈하는 것은 손복할 일야. 내가 과거에 한 일이나 현재에 먹는 생각을 살펴보면 이런 집도 황송해. 이렇게 생각하여야 옳지 않소?

 

그러다가 내 값이 높아지면 저절로 나은 집에 가게 되는 거 아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