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창밖에 와서 울고 간 새가 어느 생에 내 아버지였는가 내 어머니였는가?

 

밥상에 파리가 덤비면 나는 날리오. 날리다가 화가 나면 파리채로 때려 죽이오. 얻어 맞은 파리는 바르르 떨다가 죽어버리고 마오. 나는 파리하고 같은 음식을 다툰 것이오. 내가 먹으려는 것을 파리도 먹으려는 것이오. 같은 것을 먹고 사는구려. 한 어머니 젖을 먹고 사는구려 ─ 파리와 나와.

 

내 밥상에 놓인 푸성귀는 벌레들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오? 오이 호박은 두더지가 좋아하는 것이오. 하필 송아지 젖을 얻어 먹는 것만 가리켜 말할 것 없지요. 내가 먹는 물, 내가 받는 햇빛을 받아서 저 한련과 백합이 피지 아 니하였소? 그런데도 한련은 한련이오, 백합은 백합이오, 나는 나란 말요.

 

같은 살로 되고 같은 것을 먹고 살지마는, 네요, 내요 가른 것이 있단 말야. 이것이 하나 속에 여럿이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다는 것이오. 무차별 속에 차별이 있고, 차별 속에 무차별이 있단 말요.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色即是空 空即是色 色不異空 空不異色)이라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이렇게 차별 세계에서 생각하면 파리나 모기는 하나 죽일 수 없단 말요. 내 나라를 침범하는 적국과는 아니 싸울 수가 없단 말요. 신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 군사가 적군의 시체를 향하여서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른다는 것이 차별 세계에서 무차별 세계에 올라간 경지야. 차별 세계에서 적이오, 내 편이어서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지마는, 한 번 마음을 무차별 세계에 달릴 때에 우리는 오직 동포감으로 연민을 느끼는 것이오.

 

싸울 때에는 죽여야지, 그러나 죽이고 난 뒤에는 불쌍히 여기는 거야. 이것이 모순이지, 모순이지마는 오늘날 사바 세계의 생활로는 면할 수 없는 일이란 말요. 전쟁이 없기를 바라지마는, 동시에 전쟁을 아니할 수 없단 말요. 만물이 다 내 살이지마는, 인류를 더 사랑하게 되고, 인류가 다 내 형제요, 자매이지마는 내 국민을 더 사랑하게 되니, 더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서 인연이 먼 이를 희생할 경우도 없지 아니하단 말요. 그것이 불완전 사바 세계의 슬픔이겠지마는 실로 숙명적이오. 다만 무차별 세계를 잊지 아니하고 가끔 그것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그 속에 들어가면서 이 차별의 아픔을 줄이려고 힘쓰는 것이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이겠지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 무척 마음이 괴롭소. 이 세계가 왜 극락 세계가 못될까 하고 한탄이 나오. 그러나 검은 흙만인 듯한 땅도 자세히 찾아보면, 금 가루 없는 데가 없는 모양으로, 얼른 보기에 생존 경쟁만 하고 있는 듯한 중생 세계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샅샅이 따뜻한 사람의 불똥이 숨어 있어.

 

이 지구가 온통 금덩이가 될 수가 없는 줄 아시오? 금이나 흙이나 다 같은 피요 같은 살야. 이 중생세계가 온통 사랑의 세계가 못될 줄 아시오? 일순간에 변화할 수 있는 것이오.

 

나는 이것을 믿소. 이 중생세계가 사람의 세계가 될 날을 믿소. 내가 법화경을 날마다 읽는 동안 이 날이 올 것을 믿소. 이 지구가 온통 금으로 변하고 지구상의 모든 중생들이 온통 사랑으로 변할 날이 올 것을 믿소. 그러니 기쁘지 않소?

 

내가 이 집을 팔고 떠나는 따위, 그대가 여러 가지 괴로움이 있다는 따위, 그까진 것이 다 무엇이오? 이 몸과 이 나라와 이 사바 세계와 이 온 우주를(온 우주는 사바 세계 따위를 수억 억만 헤아릴 수 없이 가지고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오) 사랑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그대나 내나가 할 일이 아니오? 저 뱀과 모기와 파리와 송충이, 지네, 그리마, 거미, 참새, 물, 나무, 결핵균, 이런 것들이 모두 상극이 되지 말고, 총친화(總親和)가 될 날을 위하여서 준비하는 것이 우리 일이 아니오? 이 성전(聖戰)에 참예하는 용사가 되지 못하면 생명을 가지고 났던 보람이 없지 아니하오?

 

오정이 지났는데 아직도 비가 오지 않소. 흐르기는 흐렸는데 바람만 부오.

 

그러나 올 때가 되면 비가 오겠지요. 성화하지 마시오. 이 천지는 사랑의 천지요, 공평한 법적의 천지가 아니오?

 

우물 앞 그 화단에 봉숭아가 두 송이가 피었소. 불그스레한 것이 갓난이 모양으로 잎사귀 겨드랑에 안겨서 피었소. 봉숭아는 조선 가정 꽃의 대표가 아닐까요? 뒤꼍 장독대에 핀 봉숭아는 계집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꽃이오.

 

그 순박하고도 어리석한 모양이 좋은 게지요. 그 꽃이 처음 필 때에는 너무도 반갑고 소중하여서 감히 손도 대지 아니하지마는, 가지마다 축축 피어서 늘어진 때에는 계집애들은 그중 빨간 것을 골라서 고양이 밥이라는 신 풀잎사귀와 섞어서 으깨어서 새끼손가락과 무명지의 손톱에 싸매고, 하얀 헝겊으로 감고 밤을 자고 나서 아침에 끌러보면 손톱이 빨갛게 물이 들지 않았소? 그것이 금강석이나 홍옥보다도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소? 그렇게 빨갛게 물든 손톱을 보며,

 

'구름 간다, 구름 간다 구름 속에 선녀간다

 

선녀 적삼 안고름에 울금대 정향을 찾다

 

꽃밭에서 말을 타니 말발굽에 향내난다'

 

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소? 그 고름에 향을 찬 것은 처녀 자신이겠지요.

 

꽃밭에서 말을 타는 이는 그의 짝이 될 남자겠지요.

 

시편 백 편을 적어서 이 편지를 끝냅시다 ─

 

'모든 나라들아, 기쁜 소리로 임을 찬송하라

 

기쁨으로 임을 섬기고 노래하며 임의 앞에 나올지어다

 

임은 하느님이시니, 임 아니시면 뉘 우리를 지으셨으리

 

우리는 임의 백성이오, 그의 목장에 길 되는 양이로다

 

감사하면서 임의 문에 들고, 찬양하면서 임의 뜰에 들어갈지어다. 임을 고맙게 생각하고, 그 이름을 칭송할지어다

 

대개 임은 자비하시고, 임의 은혜는 영원하며, 임의 진리는 만대에 변함이 없으실새라'

 

그대여, 인생을 이렇게 볼 때에 기쁨과 노래밖에 또 무엇이 있겠소? 무슨 근심, 걱정이 있겠소?

 

나는 기쁨으로 이삿짐을 싸려 하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