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리 하여서라도 뜰에 섰는 나무 세 포기는 파가지고 가야 하겠소.
오늘 비가 오면 파내려오. 한 포기는 자형화(紫刑花)라는 것인데, 이것은 봉선사 운허대사가 지난 청명날 철쭉, 진달래, 정향, 무궁화와 함께 위해 보내어 주신 것이오, 또 하나는 사철나무인데, 이것은 앞집 영감님(그는 벌써 사 년 전에 돌아가셨소)이 갖다가 심어 주신 것이오, 또 하나는 월계와 해당인데, 이것은 뒷집 숙희 할아버지가 갖다가 심어 주신 것이오. 돈 값을 말하면 등 네 포기, 목련 두 포기가 많겠지만, 이것은 새로 오는 이에게 선물로 드리고 가려오. 그렇지마는, 남이 정성으로 내게 준 기념물만은 아니 가지고 가는 것이 죄송한 듯하오.
또 가지고 가야만 할 것이 돌옷 입은 돌멩이 몇 갠데, 이것은 황이네 삼형제가 그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져다 준 것이오. 열 여덟, 열 다섯, 열 세 살 먹은 삼형제가. 그들을 다 가지고 가자면 세 마차는 될 것인데, 다는 못하여도 예닐곱 개는 가지고 가지 아니하면 그 세 소년에게 대하여서 미안할 것만 같소.
끝으로 크게 감사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집이 하나 있소. 그 집은 점숙이네 집인데 점숙이란, 그 집 여덟 살 먹은 계집애 이름이오. 지난 팔월에 내가 병원에서 이 집으로 나와서 지금까지 있는 동안에 두어 달을 빼고는 그 집에서 내 식절을 맡아 하여주셨소. 양식 값 반찬 값은 드렸지마는 하루 삼지 지성으로 나를 공궤(供饋)하여 주신 후의는 참으로 뼈에 새겨서 잊을 수가 없는 일이오. 무엇 한 가지라도 맛나게 먹어지라 하고 정성을 들인 것이 분명히 보이지 아니하오?
이것 저것 모두 생각하니 모두 고마운 일들이오.
응, 또 하나 춘네 집이라고 있소. 내 집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는 집인데, 내가 이 동네에 와서부터 춘이 아버지, 춘이 언니, 춘이 누나, 모두들 나를 일가같이 대접하여 주셨소. 어린애 돌남이라고 떡도 가져오고, 과일 철이면 과일도 가져오고, 내가 병원에서 나왔다고 모두들 와서 위문하고.
나는 이 동네에서 많은 신세를 지고 떠나오.
내가 지팡이를 끌고 어디 나가는 것을 보면,
"면이 아버지. 어디 가셔요?"
하고 불러주고 싱그레 웃어 주고 따라와 주던 경히, 정히, 대복이, 명순이, 이러한 모든 어린아이들.
"진지 잡수셔겝시오?"
이 모양으로 만나면 읍하고 인사하여 주던 이름도 잘 모르는 동네 젊은이들.
그네들은 모두 나를 위해 주고 기쁘게 하여 주었소. 나는 그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여 드린 것이 없는데. 허기야 모두 형제들이 아니오? 자매들이 아니오? 한 등불 밑에 한 집에 한 젖을 먹는 식구들이 아니오. 한 등불이란 해 말요. 한 집이란 이 지구 말요. 한 젖이란 땅에서 나오는 물과 모든 곡식 말요. 내 코에서 나온 공기가 그대 코로 들어가고, 그대의 살 냄새가 내 코에 들어오지 않소?
지구라야 조그마한 티끌 하나 아니오? 이를테면 이 무궁한 우주라는 큰 집의 조그마한 방 한 간 아니오? 우리 지구상에 사는 인류란 이 단간방에 모여 사는 한 식구야. 그러니 얼마나 정답겠소? 얼마나 서로 불쌍히 여기고 서로 도와야 하겠소.
짐승도 그렇지요. 새도, 벌레도, 나무, 풀도 그렇소. 다 마찬가지야. 나와 한 집 식구야.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소, 기뻐하고 슬퍼하고, 나고 죽고. 그의 살이던 것이 내 살 되고, 내 살이던 것이 그의 살 되고. 이것은 범망경(梵網經)까지 아니 보더라도 얼른 알아지는 것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