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밥을 지어 주는 집에서 닭을 서너 마리 쳤소. 숫놈 한 놈, 암놈 세 마리. 그놈들이 풀숲으로 돌아다니고 울고 하는 것도 재미있으려니와, 하루에 두세 알씩 알을 낳는 거요. 이게 재미야. 그런데 이놈들이 부엌이나 마루에 똥질을 하고 화초와 채마를 녹이고 한다고 그 집에서 성화를 하더니, 그놈들이 이가 끓어서 그것이 방에까지 들어와서 견디다 못하여서 다 잡아 없애고 말았는데, 그 닭이 깔고 잇던 섬거적에도 이가 있다고, 이 이는 삼년이 가도 아니 없어진다고 하여서 솥에다가 물 한 솥을 끓여서 그 섬거적에 붓고도 그래도 끓는 물에도 아니 죽는 놈이 있을까 보아서,마치 염병 앓다가 죽은 사람의 이부자리 모양으로 그 섬거적들을 길가 풀숲에 내어버렸는데, 올적 갈적 그 섬거적을 보면, 번번이 마음에 섬뜩한 것이 생긴단 말요. 한 중생세계가 그 모든 욕심과 기쁨과 괴로움 속에서 살다가 망해 나간 폐허를 보는 것 같아서.
닭 주인은 다시는 닭은 아니 친다는 거요. 차차 닭 백 마리나 쳐서 양계를 해 보려고 희망이 가득하더니, 아주 닭의 이 통에 진절머리가 난 모양이오.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 두곤 어려워라 이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갈기나 하리라.'
하는 옛 노래가 있지 않소? 그러나, 밭갈기는 쉬운가?
그 사람이 만일 말을 팔아서 밭을 샀다면,
'밭 갈아 기음 매기 풀 뽑기와 벌레잡기,
가물면 가물어서, 비 오면은 물이 날까, 가을 밤 우뢰 번개에 잠 못 이뤄.'
할 것이오.
꽃 한 송이를 보자면 벌레 백 마리를 죽여야 하오.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삼철이라는 영등포 방직공장에 다니는 이웃집 계집애가 찾아왔소.
"너 어째 왔니? 공일도 아닌데."
"몸이 고단해서 하루 말미를 얻었어요."
"어디가 아프냐?"
"그저 몸이 나른해요. 팔다리가 쑤시고."
하며 그는 눈을 뜨기도 힘이 드는 듯이 나를 쳐다보오.
이 애는 열 여섯 살에 공장에를 들어가서 금년이 열 아홉 살이오. 지금은 감독이 되었노라고. 그래서 일은 좀 헐하지마는, 그 대신 다른 아이들한테 미움을 받노라고.
"여섯 시부터 여섯 시까지 줄창 섰는 걸요. 피가 모두 다리로만 내려가서 발등이 소복소복 부어요."
"노는 시간이면 모두들 잔디밭에 모여 앉아서 눈물을 떨구기가 일이죠."
"그래도 소박데기나 과부나 그런 이들은 우리 같은 계집애를 부러워들 해요 ─ 우리도 처녀 같으면 한 번 다시 시집 가서 재미있게 살아 보련만 ─ 이러구요."
삼철이는 뽀얗게 화장을 하고, 하얀 모시 적삼에 누르스름한 교직 치마를 입고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 빈들을 여기저기 꽂았소.
"그럼 무엇해요? 암만 있으니 여기 월급이 몇 푼 돼요? 옷 해 입고 화장품 사고, 먹고 싶은 것 잘 사먹지도 못하지요."
"모두들 화장들 하니?"
"그럼요. 자고나면 모두들 화장들 하지요. 화장하는 게나 재미지, 또 무슨 재미있어요?"
나도 한숨을 지었소. 보아줄 남자들도 없는 여자만의 나라에서들 화장들을 하는 과년한 계집애들의 모양이 눈에 뜨이오. 그들은 화장하고 작업복 입고 공장으로 들어가는 것이오.
"잘 때에는 모두들 곯아 떨어져서 이를 갈아요, 잠꼬대도 하고. 이를 가는 것이 참 못 견디겠어요. 그리고 다리들을 남의 배 위에 척척 올려놓지요. 열 두 시간이나 내려서니깐 다리가 저리거든요. 좀 올려놓으면 참 편안해요. 그래도 남의 다리가 내 위에 와 얹히면 참 싫어요. 그래서들 싸우지요."
"회사에서는 돈이 막 남는대요. 그래도 월금은 영 안 올라요. 먹을 거나 좀 낫게 해주어도 좋으련만."
"아버지도 인제는 늙으셨어요. 오늘도 허리가 아프시다고 누워 계셔요. 어머니도 늙으시고요. 통 눈이 안보인대요."
"오라버니는 마음은 착하건만 술 때문에 걱정야요. 언니는 병으로 그저 그 모양이고요."
삼철이는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갔소. 소학교에도 못 다녀 본 그연마는, 공장에 가 있는 동안에 지식이랑 말이랑 늘었소. 그의 말은 모두 한 번 들으면 아니 잊히는 말이오. 그것은 인생의 시가 아니오? 슬픈 시가 아니오?
삼철이도 제 장래를 그리고 있겠지요. 그대나 내가 수 십 년 전에 그리하였던 것같이 그는 지금의 가난한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좋은 남편과 깨끗한 집과 이러한 모든 좋은 것을 상상할 것이오. 그러길래 그가,
"집이나 하나 깨끗하게 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 초가집을요."
한 것이오.
이제는 시집도 가고 싶을 때 아니오? 아이도 낳고 싶을 때 아니오? 그러나 그렇게 알맞게 술 안 먹고 노름 안 하고, 일 잘 하고, 또 될 수 있으면 돈도 좀 있고, 또 될 수 있으면 얼굴도 잘나고, 또 될 수 있으면 마음도 착해서 처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첩을 얻는다든지 도박을 한다든지 그러지 아니하고, 그러한 안성마춤 신랑이 나서 줄는지. 그리고 그가 그렇게도 소원하는 깨끗한 초가집 한 채가 그의 몫이 되어 줄는지. 이것은 물론 이 아이의 몫에 오는 제비를 펴 보아야 알겠지요. 그러나 한가지만은 확실하지 아니하오? 괴로움 없는 생활은 없다는 것은. 그러니까 이 아이도 사바 세계의 뜻을 알아서 참는 공부를 하여야 할 것이겠지요.
"어려서 좀 고생을 해 보아야 해요."
삼철이는 어른스럽게 이러한 말을 하였소. 그것은 대단히 기특한 말이지마는,
"사람이란 일생에 고생할 것을 깨달아야 해요."
하는 말은 아직 이 애 입에서는 나올 때가 아니겠지요.
왜 그런고 하면, 열 아홉 살 난 처녀의 생각으로는 필시,
"내가 고생할 날도 며칠 안 남았다. 며칠만 더 지나면 나는 고생을 떠나서 재미만 쏟아지는 살림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