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나는 법화경을 읽는 자가 된 것이오.

 

이 집에 온 후로 육 년간 날마다 법화경을 읽은 자가 된 것이오.

 

그러면 지나간 육년 동안에 얼마나 마음이 깨끗하여졌느냐、 그대는 그렇게 물으시겠지요. 지금 너는 전보다 얼마나 나은 네가 되었느냐、 이렇게 물으실 때에、 그대는 아마 내게 대하여 일종의 경멸과 비웃음을 느끼시리라.

 

글쎄、별것 없지요. 별로 달라진 것 없지요. 나는 육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더러운 중생이겠지요. 예와 같은 탐욕과 예와 같은 질투와.

 

그러나 사랑하는 그대여! 하나 달라진 것은 있소、지금 나는 부처를 향하고 걸어 가느니라 하는 믿음 말이오. 못나고 추악한 범부이기는 육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마는、전에는 나는 언제까지나 이런 사람이고 마느니라 하던 것이 지금에는、나는 장차 완전한 성인이 되느니라 하고 스스로 꽉 믿게 된 것이오.

 

"네가 어떻게 성인이 되느냐? 너 같은 것이 어떻게 부처님이 되느냐?"

 

하고 그대가 물으시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소 - 부처님 말씀이 나도

 

"성인이 된다고 하셨다. 법화경을 읽노라면 언제 한 번은 성인이 된다 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믿고 그저 법화경을 읽을란다."

 

그러나 그대가,

 

"나 보기에는 네가 육년 전보다 성인에 가까와진 것 같지 않다."

 

그러시겠지.

 

내가 보아도 그러하긴 그렇소. 그러나 나는 믿소. 나는 이렇게 평생에 법화경을 읽는 동안에 얼굴과 음성도 아름다워지고, 몸에 빛이 나서 '衆生樂見 如慕賢聖(중생낙견 여모현성, 중생들이 즐겨 보되 어진 성인 보듯 하며)'하게 되고, 몸에 병도 없어지고, 마침내는 나고 살고 죽고 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여서 삼십이응신(三十三應身), 백천만억 하신을 나토아 중생을 건지는 대보살이 되고, 마침내는 십호구족(十號具足)한 부처님이 되어서 삼계 사생의 모든 중생의 자부(慈父)가 되느니라고.

 

그 날이 언제냐고? 오늘부터지요. 또는 무량겁 되겠지요.

 

집 값을 다 받았소. 닷새 뒤면 내가 이 집을 아주 떠나기로 되었소. 동네 사람들이 왜 이 집을 팔았는냐고, 아깝지 아니하냐고 그러오. 그렇게 애를 써서 지은 집을 왜 팔았느냐고, 그렇게도 사랑하던 집을 왜 팔았느냐고. 게다가 너무 값을 적게 받았다고, 또 서로 정이 들었는데, 또 떠나게 되니 섭섭하다고 그러오. 다들 고마운 사람들이오.

 

"집보다 더한 몸뚱이도 때가 되면 버리고 가는 걸요."

 

나는 웃고 이렇게 대답하였소.

 

실상 한 집에 한평생 사는 사람은 심히 팔자가 좋은 사람이오. 한 번 이사하는 것이 한 번 화재 당하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그것은 다만 경제적 손해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마음이 설렁하게 들뜨는 것이 큰 타격인가 하오.

 

더구나 떠나갈 데를 미리 장만해 놓지 아니하고, 있던 집을 먼저 팔아버린 때에 마음이 괴로움은 여간이 아니오. 게다가 제 집 한 간 없이 셋집 세방으로 돌아다녀서 여기서 쫓겨나고, 저기서 쫓겨나고 하는 심사는 실로 비길 데 없이 괴로울 것이오. 한층 더 떨어져서 세방을 얻을 힘이 없어서 남의 집 행랑, 곁방으로 식구들과 누더기 보퉁이를 끌고 다니지 아니하면 아니 될 신세야 말해서 무엇 하겠소? 그것은 차라리 천지로 집을 삼고 홀몸으로 돌아다니는 거지 신세보다도 애터질 노릇일 것이오.

 

한 곳에 떡 자리를 잡고 일평생 사는 것이 어떻게나 상팔자이겠소? 게다가 그 자리가 대단히 좋은 자리일 때에 그것은 인생에 최고 행복일 것이오. 대대로 한 집에 사는 집을 명당이라고 하는 것이 이 때문이겠지요.